과학기술이 인류를 구원할까... 하늘에 뜬 섬이 가진 비밀
[김성호 평론가]
▲ 천공의 성 라퓨타 스틸컷 |
ⓒ 대원미디어 |
도대체 무슨 영화이길래 함께 영화를 보겠다고 모인다는 말인가. OTT 서비스로 언제든 편히 제 안 방에 누워 영화를 볼 수 있는 이 시대에 말이다.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려는 열망, 그를 자극하는 좋은 영화라는 뜻이겠다. <천공의 성 라퓨타>,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명한 애니메이션이 우리가 함께 본 바로 그 영화가 되겠다.
전 세계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이름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얘기다. 그가 세운 지브리 스튜디오도 꼭 그만한 명성을 가졌다. 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월트 디즈니 픽처스의 디즈니 스튜디오, 또 디즈니가 인수한 픽사 스튜디오가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석권한 지 오래다. 그러나 지브리 만큼은 변방을 중심처럼 일구고, 중심에서 다시 변방처럼 일어나서 저만의 색채를 간직한 작품을 꾸준히 낳아왔다.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미야자키의 색채
<천공의 성 라퓨타>는 미야자키의 초기 작품이자 대표작으로 분류된다. 지금까지 그가 내어 놓은 십 수 편의 작품군, 그 가운데 반복돼 온 취향이며 선호가 날 것 그대로 흩뿌려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전쟁과 폭력, 특히 국가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에 반대한다는 것, 세련되지 못한 전 시대 사람들과 그들이 일궈온 산업이며 노동에 존중을 표한다는 것, 현대 과학의 오만을 경계하고 불신한다는 것, 나아가 그로부터 끝끝내 살아남는 자연의 힘에 나름의 경외심을 드러낸다는 것 등이 그렇다.
이야기는 어느 비행선이 해적의 습격을 받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말 그대로 비행선, 하늘 위를 날아가는 기체를 일군의 해적들이 습격한다. 총을 쏘고 독가스탄을 터뜨리고 어지럽게 침입하는 해적들의 기세가 매섭다. 그 와중에 어느 선실에선 안경 낀 남자가 웬 돌을 가지고 어떤 작업을 하려고 든다. 그 돌이 대단한 보물인 듯, 해적들 또한 그를 노리고 달려든다.
바로 그때, 남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돌을 낚아채는 이가 있으니 그 곁에 있던 소녀 쉬타가 되겠다. 쉬타는 돌이 달린 목걸이를 제 목에 묶고서는 비행선 바깥으로 나가 숨으려다, 그만, 추락하고 만다.
쉬타의 추락, 그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돌과 함께 추락하는 듯했던 쉬타는, 그러나 살아남는다. 쉬타가 목에 맨 돌에는 기이한 힘이 있는 듯하다. 그녀는 떨어지는 대신 둥둥 떠서 천천히 내려선다. 돌이 내는 빛을 보고 달려온 땅 아래 마을의 소년 파즈가 쉬타를 받아든다. 파즈와 쉬타의 만남은 그토록 우연적이다. 우연적이란 말은 곧 운명적이란 말이기도 하다.
좌충우돌 모험이 주는 박진감
영화는 쉬타와 파즈를 쫓는 두 무리, 즉 비행선을 습격한 해적들과 그들의 습격을 받은 안경 낀 남자의 일당을 비춘다. 안경 낀 남자는 정부 고관과 선이 닿아 있는 듯, 군대를 수족처럼 부린다. 막장이 드러난 외딴 탄광마을로 군부대가 들어오고, 해적까지 출몰하니 조용히 낡아가던 마을이 어느새 북적댄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돌은 안경 낀 남자의 손으로 들어가고 만다. 라퓨타로 향해 그를 지배하려는 안경 낀 사내 무스타, 그의 야욕을 막기 위해 쉬타와 파즈는 그가 탄 전함을 뒤쫓기 시작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당대 유행하던 어드벤처물의 구성을 차용해 기획한 대작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미지의 유물을 찾으려는 여러 악당과 주인공이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누구와는 손을 잡고 또 다른 누구와는 끝끝내 적대한다는 점은 이미 수차례씩 반복돼 온 이야기의 구성이라 해도 좋겠다.
그러나 저 하늘 위엔 천공의 성이라 불리는 거대한 섬들이 둥둥 떠 있고, 그 커다란 섬을 공중에 띄울 만한 에너지의 근원이 담겨져 있으며, 그를 가능케 했던 문명은 이미 소실돼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라는 설정은 당대로선 여러모로 새로운 것이었다. 떠다니는 섬은 작중 언급되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속 라퓨타를 본뜬 것이지만, 그 힘의 근원을 특별한 힘을 지닌 비행석으로 설정하는 등 독자적 상상력을 덧댄 점이 인상적이다.
▲ 천공의 성 라퓨타 스틸컷 |
ⓒ 대원미디어 |
말하자면 석탄으로 대표되는 화석연료로부터 저 무거운 성을 공중에 띄우는 비행석이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무스타에게 깃들어 있다. 거듭해 '사라진 라퓨타인의 과학'을 이야기하는 무스타는, 그 과학을 소유함으로써 인류 위에 거대한 성채를 가진 권력자로 군림하려는 인류의 일면을 대표한다. 그 아래 이용되고 버려지는 군인들의 모습, 또 무시타에겐 껍데기뿐인 금은보화를 탐내는 장군과 해적들의 모습은 그대로 인류의 선명한 일면일 수 있는 일이다.
과학과 기술, 에너지와 자본을 쫓는 이들의 욕망이 뒤엉키는 가운데 오로지 어린 쉬타와 파즈 만이 저들의 순수함으로써 라퓨타의 파멸을 막고자 한다. 라퓨타는 이미 몰락한 허공의 성일 뿐이다. 문명은 거대한 나무 뿌리 아래 파묻혀 흔적만이 남았고, 그를 지키는 로봇들조차 제 기능을 잃을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다. 라퓨타의 비기라 할 수 있는 주문들도 그저 주문으로만 남았을 뿐, 그 효과며 쓰임을 적자인 쉬타조차 얼마 알지 못한다.
과학과 기술이 인류를 구하리란 믿음
라퓨타의 기술에 대한 가장 선명한 열망을 가진 이는 영화 내내 악당으로 보이는 무스타인 듯도 하다. 재물에도, 다른 무엇에도 욕심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건 라퓨타의 힘 그 자체인 것이다. 라퓨타를 하늘로 띄워낸 그 힘은 조금이라도 쓸 만한 무엇을 찾으려 막장을 계속 파내려가는 지상의 광부들이 맞닥뜨린 고난을 단박에 해소할 수 있을 만큼 귀한 것이 아닌가. 무스타가 힘으로부터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과학을 외치고 있다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과학이 인류를 구하리란 믿음, 과학으로부터, 그에 기인한 기술로부터 인간이 더 나은 삶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무스타는 가지고 있다. 인류를 화성으로 이끌고, 양자역학 기술을 쓰는 AI며 양자컴퓨터의 세계로 이끌어가려는 여러 선구자들이 그러하듯이.
인류가 그와 같은 기술에 닿지 못하도록 미야자키 하야오는 쉬타에게 주문을 허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저를 지상에 묶어두었던 중력을 끝내 떨치지 못한다. 나무가 성을 집어삼키고, 문명이 끝내 버려져 표류하는 세상,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로부터 인류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이후 작품들이 그러하듯.
▲ 천공의 성 라퓨타 포스터 |
ⓒ 대원미디어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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