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안내사들이 안내데스크 밑에 박스 깔고 쉬었던 이유
[손가영]
2016년 12월 중순쯤이었다. 임신 중이던 안내사 한 명이 근무 중 하혈을 해 병원에 실려갔다. 며칠 쉬다 돌아올 줄 알았던 그는 그 길로 일을 그만뒀다. 근무 일수는 남았는데 연차휴가는 다 쓴 상태고 회사는 '임신에 병가 처리는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남은 근무 일수 '이틀'을 어떤 방법으로도 채우지 못한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로 사직서를 쓴 것이다.
'말이 돼요?', '10년 넘게 일한 직원인데…' 현장은 술렁였지만 상황은 조용히 지나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직원이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노조 가입 상담을 받고 왔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나를 지켜주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 혼자라도 노조 가입을 하려한다'고 말했다.
"후배조차 불합리함을 아는데, 우리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 자리에 있었던 정희정(가명)씨는 후배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냈다. 당시 그는 부산관광안내소에서 가장 오래 일한 선임이었다.
그렇게 안내사들은 "우리도 하자"고 마음을 모았고 2017년 27명 전 직원이 노조 가입서를 썼다. 부산관광안내소를 지키는 관광안내사들의 노조, 전국민주일반노조 부산본부부산관광협회지회(아래 부산관광안내사노조)의 결성 이야기다.
부산시 7개 관광안내소를 지키며 시민들의 부산 관광을 돕는 관광안내사들을 11월<일터>가 만났다. 25년차 베테랑 정희정씨와 박연정(가명)씨, 그리고 현재 지회장을 맡고 있는 양진하씨가 인터뷰에 함께 했다.
부산시가 '원청', 관광협회가 '하청'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부산엔 김해공항, 부산항, 부산역, 고속버스터미널 등 주요 지점 7곳에 관광안내소가 있다. 안내사들은 이곳에 365일 상주하며 관광객을 응대하고 관광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은 부산의 관광정책을 최일선에서 수행하지만 소속은 민간 기관이다. 이른바 '민간위탁' 노동자로, 부산시가 관광안내소 운영을 위탁한 부산관광협회에 고용돼 있다. 쉽게 말해 부산시가 '원청', 관광협회가 '하청'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노조가 생기기 전까지 처우는 사실상 법정 최저임금이었다. 임금 체계도 없어 15년 차, 1년 차, '알바'(임시직 노동자)의 임금이 같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추가 근무 시간이 다르면 알바가 15년 차 직원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았다. 2003~2008년엔 6년 동안 임금이 동결돼 기본급 110만 원만 받고 지낸 적도 있다. 정씨는 "노조를 만들고 나서야 근속수당이란 걸 처음 만들어봤다"고 말했다.
"노조 만들기 전은 정말 말도 못 해요. 임신한 친구가 일을 그만둔 건 딱 기폭제였고, 17년 넘게 쌓인 분노가 바닥에 쫙 깔려 있었어요. 일단 부당업무가 많았어요. 우리 일은 관광안내소 운영이잖아요. 근데 협회가 부르면 여기저기 일하러 갔어요. 타 협회와의 행사, 일본 단체와 교류, 부산시 주최 행사 등에 가이드나 통역사로 갔어요. 문서 번역도 장당 비용이 드니 저희한테 시켰고요. 시청 공무원이 자기 논문에 필요하다며 번역을 맡긴 적도 있고요. 우린 위에서 시키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이게 당연한 게 아니란 걸 노조 만들면서 알았어요."(정희정)
지금은 다 그만뒀지만 관리다들 문제도 심각했다. 안내사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어떤 관리자는 성희롱을 예사로 했다. 유독 품행이 나빴던 관리자는 안내사들 얼굴에 담배 연기를 '푸~' 하고 내뱉어 모욕감을 주는 일도 있었다는 게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담배 연기가 안내소로 들어오니 건물 앞에서 피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안내사들 말도 무시하기 일쑤였다. 양 지회장은 "다 예전의 일이고 지금 이런 문제는 없다"면서 "근데 만약 그때 노조가 있었다면 상황은 어땠을까"라고 말했다.
안내데스크 밑 박스 깔고 쉬는 언니들
▲ 부산관광안내사노조,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조 부산본부 등이 지난 9월2일 부산시청 앞에서 관광안내사 처우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 손가영 |
"인력부족은 고질적인 문제예요. 4명이 있어야 하는데 2~3명만 배치되는 식이니 연차휴가까지 더하면 더 문제죠. 기혼 여성이 많아서 육아휴직과 단축근무가 많아요. 근데 내가 빠지면 남은 직원이 힘들 게 보이니까 육아하는 직원들은 너무 눈치 보이고 남은 이들은 또 그것대로 스트레스고, 서로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근데 '비짓부산패스'라고 부산시 관광상품이 있는데, 부산시가 국제선 안내소엔 이거 판매까지 맡겼어요. 국제선은 안내소 여는 아침 9시 전부터 사람들이 이미 줄을 쫙 서 있어요. 손도 많이 가는 업무라 이거 한다고 저희 원래 일이 마비될 때가 정말 많아요."(박연정)
양 지회장은 "더 큰 벽은 책임 미루기"라고 했다. 임금 인상, 인력 충원을 말할 때마다 협회는 '부산시 허가가 필요하다'고, 부산시는 '우리는 간섭할 수 없다'고만 말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미룬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양 지회장은 "근데 예산책정은 부산시가 하고 관광정책 설계, 집행도 다 부산시가 한다"며 "임금, 인력, 비용, 다 부산시가 결정하는데 뭘 간섭하지 않는다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 2024년 10월 투쟁조끼를 입고 근무 중인 부산관광안내사노조 조합원들의 모습. |
ⓒ 부산관광안내사노조 |
이들에겐 "안내사를 지키는 건 안내사밖에 없다". 원청, 하청 어디도 자신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악성 민원 문제가 가장 크다. 민원 중엔 보복성 민원, 철도공사·부산시청의 잘못으로 인한 민원이 적지 않다. 박씨는 "그런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안내사 잘못이고 사과부터 시킨다"며 "우리는 몸으로 다 받아낸다"고 말했다.
"안내소 화장실 청소 중에 어떤 관광객이 화장실을 쓰려고 해서 '청소 중이라 안된다' 한 적이 있어요. 근데 그 사람이 기분이 나빴는지 민원을 넣었어요. 협회가 그 안내사더러 민원인에게 사과하라고 시켰어요. 그 직원은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사과 못 하겠다 했고 끝내 사직했어요. 이런 민원이 적지 않은데, 다 안내사 잘못으로 끝나요. 부산역엔 철도공사 직원이랑 섞여서 일하는데, 그쪽의 불찰이 우리에게 오면 또 저희가 경위서 쓰고 사과해요. 어디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것에서 자괴감이 더 커져요."(박연정)
정씨는 "부산 관광서비스 최일선에 안내사들이 있다"며 "우리가 잘해야지만 시의 관광정책 인지도도 올라가고 관광객들도 좋아하기에, 어떻게 하면 서비스 제공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일지 우리도 정말 많이 고민하고 건의도 한다"고 말했다. 박씨도 "그래서 안내사들을 계속 교육하고 양성해 질적으로 성장시키면 시도 좋고 모두가 좋지 않느냐"며 "안내사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시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기본급 올해 최저임금으로 인상, 부족한 휴게실 설치, 부산시의 일방적 업무 부담에 대한 적정 인력 보장, 이들이 난생 처음 투쟁 조끼를 만들어 입고 단체행동을 시작한 이유다. 정씨와 박씨, 양 지회장은 부산시를 향해 말했다.
"'진짜 책임' 부산시가 안내사들 처우개선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부산시와 직접 대화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11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손가영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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