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 지폐 퇴계 이황도 어쩌지 못한 이것
[허형식 기자]
이 사건은 1705년(숙종 31년)에 벌어졌다.
성균관 근처에 살던 어느 반인(천민)이 나물을 캐다가 노끈 하나를 발견했다. 별생각 없이 잡아당기니 척 보기에도 수상한 장치가 나타났다. 곧 소문이 퍼졌고, 임금까지 알게 되어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전모가 드러났는데, 성균관 담벼락 아래로 속이 뻥 뚫린 대나무 관이 파묻혀 있었다. 그 길이만 20 간, 즉 40미터 정도로 성균관의 안과 밖을 연결하기에 충분했다.(중략) 이 거대한 장치의 목적은 자명했다. 일단 대나무 관 속에 기다란 노끈을 넣는다. 그러면 담벼락 안쪽 노끈에 문제지를 묶어 밖으로 보내고, 담벼락 바깥쪽 노끈에 답안지를 묶어 안으로 보낼 수 있다.
- 이한 지음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224쪽~225쪽
이 대담한 땅굴(?) 작전은 들통이 났지만, 더 이상의 증거는 나오지 않아 당사자는 결국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위 작전으로 당사자는 과연 장원 급제를 하였을까 궁금하지만 그건 본인만 알 뿐.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어느덧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수험생들은 불안과 초조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왜 이런 가혹한 시련이 나에게" 하며 하늘을 원망할 수도 있지만, 500년 전 선조의 험난한 수험 생활을 생각하면 상대적인 위로가 되지 않을까.
조선 시대의 과거 시험은 엘리트 관료를 선발하는 창구이자 개인의 입신양명의 유일한 통로였다. 양반이더라도 과거에 급제하지 않으면 존중받지 못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과거 시험의 난도는 매우 높았다.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의 저자 이한은 '과거'를 현대의 수능과 각종 고시를 모두 합친 수준으로 묘사한다.
과거는 크게 경전(유교의 성현들이 남긴 글)을 외우고 풀이하는 강경과 글을 쓰는 제술로 나눠 치러졌다. 강경은 책을 달달 외우면 될 것 같지만, 필독서라 할 만한 경전의 양을 생각하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사서(《논어》《맹자》《중용》《대학》)와 삼경(《시경》《서경》《주역》)을 외워야 했다. 그다음에는 송나라의 학자 사마광이 쓴 294권짜리 《자치통감》을 외워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나라의 역사가 사마천이 쓴 130권짜리 《사기》도 외워야 했다. 압도적이지 않은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요약본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317쪽
온라인서점에서 <자치통감>을 검색하면 현대 번역본도 있는데, 한 권당 500쪽이 넘는 분량으로 49권짜리로 출간됐다. 그 많은 내용을 한문으로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면(게다가 붓과 먹을 사용해 한문으로 정답을 써내려가야 한다) 요즘 세상에 태어난 게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한편, 조선 중기 선비 김득신은 사기의 '백이열전'만 1억 3000번을, <사기> 전체와 사서삼경, <한서><장자> 등은 6만 번에서 7만 번을 읽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의 '스카이캐슬' 못지않은 사교육 열풍이 조선에 불었고, 어떻게든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입시 비리가 만연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수법은, 공부 잘하는 이를 고용해 대신 과거를 보게 하는 수법이었다. 넷플릭스 영화 <전, 란>에서 몸종 천영(강동원)이 주인집 아들 '종려'(박정민)를 대신해 무과 시험에서 급제한 것처럼 말이다.
당시에는 이런 대리 응시자를 거벽 巨 擘이라고 불렀다. (중략)
1488년(성종 19년) 이미 생원시에 급제한 최세보라는 자가 또 생원시를 보러 들어왔다. 이를 알아본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생원이 또 과거 보러 왔다!"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에 최세보가 재빨리 도망쳤지만, 이미 그의 얼굴을 많은 사람이 알아본 터라 금세 붙잡혔다.
사건은 최세보가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며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해 간통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인의 신분은 노비였다. 상황을 알게 된 그 여인의 주인이 최세보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자신의 과거 급제를 도와주면, 여인을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208쪽
최세보야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도 됐지만, 그에게 부정한 제안을 한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신숙주의 손자, 신영철이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 깜빡 잠들어 세종이 친히 용포를 덮어주었다는 집현전의 천재 신숙주! 그런 인물의 손자는 혼자 힘으로 생원시조차 통과하지 못해 입시 비리를 저질렀으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208쪽
▲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이한 작가 지음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표지 사진 |
ⓒ 위즈덤하우스 |
숙종 때는 시험장에서 남인 유력자의 아들을 찾는 시험관에게 서인 아무개가 자신이라며 거짓으로 손을 들어 급제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말 그대로 '난장판'(수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어 질서없이 들끓고 떠들어대던 과거마당을 난장이라고 했다)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퀴즈! 공부하지 않는 외아들에게 "(과거 보러) 왜 올라오느냐? 그냥 농사나 짓거라"라며 타박하거나 "친척 아무개는 과거에 급제했는데, 너는 무얼 하느냐?" 같은 잔소리를 남발했던 조선 시대 대학자는 누구였을까?
도산서원의 건립자이자 1,000원짜리 지폐의 주인공, 퇴계 이황 되시겠다. 그는 평소 "세상에 허다한 영재들이 세속의 학문에 허덕이고 있으니,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과거라는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라고 과거제를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의 자식 교육에서는 일반 사대부들과 다르지 않았다. 과연 한국인에게 입시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씁쓸한 일화가 아닐 수가 없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중도하차 "찬성" 58.3%-"반대" 31.1%
- 취임 후에도 명태균 "대통령과 아직 통화...김 여사는 전화가 3대"
- 보수 언론인도 우려한 윤석열 정부의 '위험한 도박'
- 동료 특수교사의 죽음...무엇이 그를 숨쉴 수 없게 만들었나
- 재취업 유리하다는 자격증, 제가 도전해 따봤습니다
- 시정연설 불참 예고된 윤 대통령에 "부인 잘못 때문에 여의도 안 오나"
- 면도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윤 대통령 잘한 일' 묻자 74%가 '없다' 또는 '모르겠다'
- '이재명 유죄'면 덮을 수 있다는 착각
- 이재명 37.3%·한동훈 15.3%...격차 두 배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