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젠더·인종·학력 ‘3대 내전’…“후폭풍 가장 잔인한 선거” [view]
아프리카ㆍ인도계 부모를 두고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검사 출신 여성 카멀라 해리스(민주당 대선 후보) vs 백인들만 모여 사는 동부 뉴욕 부촌에서 태어난 부동산ㆍ카지노 사업가 출신 남성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대선 후보).
공통점은 드물고 거의 모든 면에서 극과 극처럼 대척점에 선 두 후보는 대선 레이스를 거치며 두 쪽 난 미국 사회를 압축한 듯하다.
대결 자체가 초접전으로 흐르는 데다 후보 간 네거티브 공격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양측 간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두 차례 암살 시도가 발생한 터여서 대선 이후로도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국제위기그룹 “선거 관련 폭력 위험 실재”
비영리 단체 국제위기그룹(ICG)은 최근 ‘2024년 미국 대선을 둘러싼 폭력 위험’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정파적 양극화가 매우 높아 선거와 관련된 폭력의 위험이 실재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는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경우) 지지자들이 개표 및 선거인단 인증 절차에 혼란을 일으키도록 부추겨 결과에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고, 선거 과정을 방해하려는 시도로 인해 공권력이 개입해야 하는 등 불안이 확산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주요 경합주마다 불과 수천 내지 수만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릴 것으로 예상되는 각축전 속에서 미국 사회에는 젠더(성)ㆍ인종ㆍ학력을 축으로 한 3개의 전선이 뚜렷하게 그어졌다. 남성 대 여성, 백인 대 비(非)백인, 저학력층 대 고학력층 간 대치 전선이다. 남성ㆍ백인ㆍ저학력층은 트럼프 전 대통령, 여성ㆍ비백인ㆍ고학력층은 해리스 부통령 쏠림 현상이 두드러져 ‘내전’ 양상을 방불케 한다.
①젠더…“성별 격차 비정상적”
남녀 후보 대결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성별에 따른 정치적 분열 양상이 짙다. 2일(현지시간)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에 따르면, 트럼프는 남성 유권자에게서 8%포인트 더 많은 지지를, 해리스는 여성 유권자에게서 9%포인트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 미린고프 마리스트대 여론연구소장은 “이번 대선에서 성별 격차는 비정상적으로 높을 것”이라고 했다.
②인종…백인vs흑인ㆍ히스패닉
4년 전 대선 때보다 옅어지긴 했지만 백인 대 흑인ㆍ히스패닉 등 인종 간 대결 구도도 여전하다. 지난달 31일 공개된 이코노미스트ㆍ유거브 여론조사 결과를 인종별로 살펴보면 백인의 트럼프 지지율은 52%로 비교적 높았지만 비백인 지지율은 42%에 머물렀다. 반면 해리스에 대해서는 흑인과 히스패닉의 지지율이 각각 75%, 52%였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인 흑인ㆍ히스패닉 중 일부가 경제난에 트럼프 지지로 돌아서고는 있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해리스 편이라는 의미다.
③학력…고졸자vs대졸 이상
학력에 따른 차이도 부각된다. 뉴욕 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평균적으로 대학 학위가 없는 유권자에게서 해리스보다 10%포인트 더 높은 지지를 받은 반면 해리스는 대학 학위가 있는 유권자에게서 19%포인트 더 높은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수들이 결합되면 대비는 더욱 극명해진다. 트럼프는 대학 학위가 없는 남성 유권자에게서 해리스보다 16%포인트(트럼프 55%-해리스 39%) 더 많은 지지를 얻는 반면 해리스는 대학 학위를 취득한 여성 유권자에게서 트럼프보다 27%포인트(해리스 61%-트럼프 34%) 많은 지지를 얻는 것으로 조사됐다. NYT는 “대학 학위가 없는 남성과 있는 여성 간 격차는 이번 대선에서 최대가 될 듯하다”고 전망했다.
‘선거로 내전 일으킬 가능성 높아’ 27%
양쪽 진영 간 골이 깊어지면서 물리적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18~21일 유거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84%는 ‘10년 전보다 미국이 더 분열됐다’고 답했으며, 27%는 대선 과정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거나 어느 정도 크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번 선거가 ‘제2의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했다(매우 크다 6%, 어느 정도 크다 21%). 대선 후보 TV 토론 진행 경험이 있는 CNN 앵커 데이나 배시는 지난 9월 펴낸 책 『미국의 가장 치명적 전쟁』에서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인종 간 폭력사태로 이어진 1872년 루이지애나 주지사 선거와 오늘날 우리가 겪는 균열 사이의 놀라운 유사성은 충격적일 정도”라며 “싸우자(Fight)를 외치며 상대를 파멸시켜야 할 적으로 보는 미 역사상 가장 잔인한 선거가 벌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초박빙 상황인 경합주 개표에서 판정이 빨리 나지 않을 경우 혼란은 가중될 수 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이번 선거의 투ㆍ개표 절차와 유권자 명부 자격 등에 이의를 제기하는 선거 관련 소송을 130여 건 제기해둔 상태다. 공화당은 “합법적 투표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민주당은 선거 패배 시 불복 근거로 활용하기 위한 포석으로 본다.
선거 폭력 우려 미국 초긴장…한국에도 경종
선거 관련 폭력은 이미 곳곳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워싱턴주 밴쿠버에 이어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도 투표함에서 불이 나 투표용지가 훼손됐다.
트럼프가 4년 전 대선 때처럼 개표 완료 전 돌발적으로 ‘승리 선언’을 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민주당은 2020년 11월 8일 대선일 다음 날 새벽 트럼프의 갑작스런 승리 선언이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음모론을 키웠고 결국 다음 해 1ㆍ6 의사당 난입 사태를 불렀다고 본다. 비슷한 상황을 우려하는 민주당은 TV와 소셜미디어에 ‘마지막까지 개표가 계속돼야 한다’는 광고를 띄우는 등 여론전으로 무력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미 의회도 1ㆍ6 사태 이후 선거개표개혁법을 마련해 일부 지역이 선거 결과를 인증하지 않는 경우 주지사가 주 최종 결과를 인증할 수 있도록 하고 부통령이 선거 결과를 변경하거나 발표 거부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
이런 미국의 상황은 정치 양극화가 이미 위험수위에 오른 한국에도 경종을 울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혐오 정치는 폭력과 테러의 씨앗”이라며 “강성 지지층을 선동하고 증오의 정치를 조장하면 그 자신이 정치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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