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이 시작점… 연 매출 2조3000억원 회사 일궜다

박성영 2024. 11. 4.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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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이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청소 용역업체를 사업시설 유지·관리 업체로 키운 비결을 말하고 있다. 구 대표사원은 “‘삼구’는 사람·신용·신뢰를 갖추면 된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일해왔다”고 말했다. 윤웅 기자


살기 위해서 변기를 닦았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여러 차례였지만 매번 다시 일어났다. 4만8000명의 직원과 함께 2조3000억원의 연 매출을 올리는 회사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구자관(80)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의 가장 큰 자부심이다. 과거 작은 규모였던 청소 용역업체는 폭넓은 분야로 진출한 사업시설 유지 및 관리서비스 업체로 성장했다.

구 대표사원은 최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밑바닥의 바닥’이 시작점이었다고 회상했다. 야간고등학교조차 간신히 나왔던 그는 두 자녀와 부인을 굶기지 않기 위해 화장실 청소로 돈을 벌며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남들이 하찮은 일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화장실 청소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다. 그는 야간고에서 배운 알칼리와 산에 관한 지식을 청소에 활용했다. 누렇게 변한 변기에 염산을 뿌려 씻어내고 나면 식당 주인들이 건네는 돈을 주는 대로 받았다. 1960년대 당시 돈으로 많으면 500원이었다.

그는 “손님들이 화장실이 더러워서 못 쓰겠다고 해도 식당 주인들이 그걸 해결해줄 시간도 노하우도 없었다”며 “아무리 청소를 해도 변기 때가 잘 벗겨지지 않았는데 염산을 뿌리면 해결된다는 걸 알았다. 그게 다다. 사업이랄 것도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화이트칼라’ 직장인이 몰려있던 서울 중구 서소문동은 그의 주무대였다. 밤낮없이 일하던 서소문동의 청소부는 입소문을 타고 어느덧 큰 빌딩에서도 일하게 됐다. 구 대표사원이 성공가도만 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공장이 화재로 전소되면서 온몸의 3분의 1이 3도 화상을 입었고, 중단된 사업 탓에 빚더미에 앉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청소용역 입찰 등을 통해 일어서는 데 성공했다. 2010년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키우면서 업계 선두가 됐다.

인재 육성은 구 대표사원의 성공 비결이다. 곳곳에 파견되는 수만 명의 직원을 관리하려면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과 좋은 근무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구 대표사원의 생각이다. 구 대표사원은 지난 4월 폐교된 옛 단산중학교 부지를 이용해 충북 단양에 ‘삼구인화원’을 조성했다. ‘사람이 화합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만든 연수원이다. 지역사회와 상생하겠다는 뜻도 있다.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1990년부터는 한 해도 빠짐없이 공채 사원을 뽑아왔다. 올해만 약 40명의 신입사원이 채용됐다.

책임대표사원은 구 대표사원이 만들어낸 직함이다. 경영자로서 사원들에게 다가가기보다 든든한 책임자가 돼주겠다는 의미다. 구 대표사원은 “회사에서는 경영인을 포함한 모든 직원이 다 ‘사원’이다. 삼구아이앤씨의 직원들은 다른 회사로 파견돼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나서서 책임져주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느냐”며 “제가 다 책임지겠다는 뜻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아무도 저를 ‘회장님’이나 ‘대표님’으로 부르는 사람이 없다. 그냥 ‘책임사원’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월급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노동 덕에 월급을 받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 구 대표사원의 지론이다. 구 대표사원은 “저보다 뛰어난 인재, 임직원들의 능력을 믿는다”며 “그들이 다양하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삼구아이앤씨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구 대표사원은 도태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격한 인구감소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변화하는 시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미래시장의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도전은 인생 그 자체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용인대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했고, 68세에는 서강대에서 석사학위도 받았다. 지난해에는 팔순을 맞아 5000m 상공에서 스카이다이빙에 도전하기도 했다. 구 대표사원은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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