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브로커 전성시대
빠지지 않아… 불투명성과
인맥 위주 사회구조 자성해야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는 브로커(broker)로 지칭되는 인물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국어대사전에 브로커는 ‘다른 사람의 의뢰를 받고 상행위 대리 또는 매개를 하고 수수료를 받는 상인, 대리인’으로 정의돼 있다. 사전적 의미와 달리 브로커는 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주요 비리 사건에서 브로커를 중심으로 검은돈이나 청탁이 오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브로커에도 ‘급’이 있어서 단순 민원을 유력 인사나 공직자에게 대신 전달하는 역할만 하는가 하면 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게 연결시켜주는 브로커도 있다. 돈만 받고 ‘먹튀’(먹고 튀기)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 청탁을 성공시키는 경우도 있다. 단순 브로커인지 비리 사건 몸통인지 애매모호할 때도 있다. 자신의 이권을 위해 직접 활동했다면 브로커라 하긴 어렵겠지만 청탁이 얽히고설켜 그 경계선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음지에서 일하는 브로커들의 행태가 양지에 알려지는 이유는 결국 이권 문제인 경우가 많다. 사업 허가든, 한 자리를 차지하려 했든, 민원 해결이든, 돈을 건넸는데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쪽이 억하심정으로 폭로전에 나서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동기가 어쨌든 간에 브로커가 연관된 사건이 한번 공개되면 폭발력은 가늠하기 어렵다. 전현직 의원 약 20명이 수사·재판을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사건은 애초 정치브로커로 알려진 사업가 박모씨와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간 다툼이 발단이 됐다. 박씨는 2019년 사업 관련 청탁을 위해 이 전 부총장을 소개받았는데, 이 전 부총장은 “나 좀 도와주면 나중에 잊지 않겠다”고 말하며 거액을 받았다. 양측은 사이가 틀어져 소송전을 벌였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전 부총장 휴대전화 속 돈봉투 사건 녹음파일이 다수 발견됐다.
이 전 부총장은 재판에서 박씨를 겨냥해 “정권이 바뀌어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박씨가 사채업자로 돌변해 대여금을 돌려 달라고 협박했다”며 “브로커 농간에 놀아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부총장은 스스로를 ‘로비스트’로 칭하면서 박씨에게 유력 정치인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정치브로커들의 협잡과 배신으로 얼룩진 사건을 접하다 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대장동 사건 핵심인물인 김만배씨는 오랜 법조기자 생활로 쌓은 법조계 인맥으로 법조 브로커처럼 활동했다는 의심도 받았다. 김씨는 50억 클럽 의혹, 재판 거래 의혹 등 각종 청탁 의혹도 받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3월 “성남시 관련자들과 브로커들이 공모해 조 단위 배임 행위가 이뤄졌고, 이를 들키는 것을 막기 위해 힘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줬다는 게 50억 클럽 의혹”이라고 규정했다. 대법관 등을 지낸 존경받는 법조인이 줄줄이 김씨가 설립한 화천대유와 고문계약을 맺은 것을 놓고 몇몇 법조기자는 ‘역시 중요한 것은 돈’이라고 실소하기도 했다.
브로커 전성시대를 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특정 인맥을 통하지 않고 각자 자리에서 법과 규정에 따라 떳떳하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의 주인공인 명태균씨도 여권에서 사실상 정치브로커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웬만한 고강도 수사가 아니고서는 국민적 의구심을 풀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다만 명씨가 불법을 저질렀는지,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검찰 수사든 특검이든 어떤 절차든 간에 결국 밝혀질 것이고 우리 사회에 그 정도의 자정 작용은 있을 것으로 믿는다. 무엇보다 왜 거물급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공적 행위에 브로커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는지, ‘힘 있는 아는 사람을 통해야 일이 진행된다’는 우리 사회의 불투명성과 인맥 위주 사회구조가 아직도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닌지 사회지도층부터 자성할 필요가 있다.
나성원 사회부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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