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잊혀진 전기의 맛
스위스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했던 수학자 및 철학자 술처(Johann Georg Sulzer)는 1752년도에 이상하고도 흥미진진한 보고를 하였다. 두 가지의 금속 조각들을 V자 모양으로 한쪽에 서로 닿게 한 후에, 그 반대쪽에 두 금속 조각 사이로 자신의 혀를 집어넣어서 연결했다. 그랬더니 야릇한 맛이 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금속 조각들이 서로 닿지 않은 상태에서 혀에 대었을 때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술처는 처음에 은과 납 조각을 사용하여 이 실험을 했는데, 다른 종류의 금속들을 사용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고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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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들이 연결되면 나오는 맛
볼타, 전기 통하는 것으로 해석
1799년 전지 발명으로 이어져
혁신은 엉뚱한 호기심서 시작
」
놀랍게도, 실제로 해 보면 그렇다 (물론 금속 조각들을 우선 깨끗이 씻은 후에 시도해야 한다). 필자는 구리와 아연을 사용하여 이 경험을 재현하였으며, 과학사를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도 체험을 시켜주면 아주 신기해한다. 그 맛은 짭짤한 것 같기도 하고 금속성의 맛이 아닌가 그렇게도 느껴지는데 금속 하나하나를 핥아보면 아무 맛도 없다. 식사할 때 입에 항상 넣는 금속으로 된 수저나 포크는 자체의 맛이 없지 않은가.
술처의 발견, 볼타에 의해 재발견
술처가 이 현상을 발견했을 때는 다들 그냥 좀 이상한 일이려니 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술처는 다른 종류의 금속들이 서로 닿으면 그 금속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진동을 한다는 가설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 진동을 실제로 관측해서 증명할 도리도 없고, 또 왜 그런 진동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이론적 이유도 그럴 듯하게 내놓지 못하였다. 그러나 약 40년 후에 이 현상은 전지의 발명자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볼타(Alessandro Volta)에 의하여 재발견 되었으며, 볼타는 거기에 대한 이론도 새로이 만들어 냈다. 그가 세운 가설은 다른 종류의 금속들이 서로 연결되면 전기가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그 미세한 전기의 이동을 인간의 혀는 감지할 수 있다. 볼타는 이 효과를 자세히 연구하였다. 예를 들어서 혀의 맨 끝부분에 양성의 전기가 들어오는 전극을 대면 신맛이 나고, 그 부분에 음성의 전기가 들어오면 쓴맛이 난다고 보고하였다.
볼타는 이러한 종류의 여러 가지 실험들을 하면서, 자신이 아주 중요한 과학적 원리를 발견하였다고 믿었다. 다른 종류의 물질들을 서로 접촉시켰을 때 전기의 이동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물질의 종류에 따라서 전기를 끌어들이는 힘이 다르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관측되는 효과가 너무나 미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확신을 얻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볼타는 금속 조각 사이에 혀를 넣은 샌드위치 식의 모양을 혀 대신 축축이 소금물에 적신 종이로 대체하여 만들었고, 거기서 나오는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하여 그런 것을 여러 개 만들어서 쌓았다. 그것이 바로 1799년도에 발명된 볼타전지였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 신기한 과학기구를 “쌓아 모았다”는 의미에서 볼타의 ‘더미(pile)’라고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프랑스어등 유럽의 라틴계 언어에서는 전지라는 단어가 pile 내지 pila로 쓰이고 있다. 영어로 배터리라고 하는 말도 사실은 그렇게 여러 개의 단위를 모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볼타는 그 전지를 만든 후에 자기 몸에 전기를 흘리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다. 그 당시에는 전기를 측정하는 기구도 제대로 없었고,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몸이 가장 훌륭한 도구였다. 이탈리아의 갈바니가 전기로 죽은 개구리 다리를 움찔하게 했던 것은 유명한 일이었다. 볼타도 사실은 그 현상을 설명하고자 과학 연구에 몰입하였으며 갈바니와 큰 이론적 논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갈바니는 개구리의 몸 자체에서 전기가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볼타는 전기는 금속에서 나오고 개구리는 거기에 반응할 뿐이라고 해석했다. 볼타는 자기가 발명한 전지의 극과 극에 두 손을 대 충격을 경험했고, 전류를 계속 흐르게 하면 통증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입천장과 눈 옆에 전류를 가하니 섬광이 보였다. 눈 대신 귀에 대니까 탁탁하는 소리가 났다. 혀에 가했을 때는 술처가 미묘하게 경험했던 전기의 맛을 아주 짜릿하게 볼 수 있었다.
전기 과학 시초, 인간 몸으로 직접 경험
이렇게 전기에 대한 과학의 시초는 인간의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나서야 과학자들은 볼타전지에 전선을 연결해서 전기회로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렇게 설치하니 화학적, 물리적 효과들이 보였다. 전기분해도 할 줄 알게 되었고, 화학적 결합 자체를 전하를 띤 원자들의 인력과 척력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나왔다. 전류가 흐르고 있는 전선을 나침반 위에 대었을 때 나침반 바늘이 돌아가는 일명 전자기 효과도 1820년에 발견되어, 19세기 전자기학과 거기에 기반한 전동기, 발전기, 전보 등 모든 기술의 기초가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동물의 몸에서 전기를 만든다는 갈바니의 생각도 인정되었으며, 현대 신경학의 기초가 되었다. 전기가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의 감각과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연구할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술처가 전기의 맛을 본지 270년 후 인간의 삶은 그로 인해 알아볼 수 없게 발전하였다.
그런데 술처는 도대체 왜 두 종류의 금속을 연결해서 혀에 대 보는 짓을 했을까? 그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역사적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이상한 호기심에서 과학 연구는 시작되고 그러한 연구가 어느 방향으로 진전되어 우리의 삶을 바꿔놓게 될지는 예측할 수가 없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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