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문학적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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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장은 대중적인 표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표현이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라'는 직접적인 지시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장이 더욱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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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장은 대중적인 표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표현이다. 변기에 앉아 주의 문구를 읽고 있는 이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지칭한다는 점, 그러므로 보유한 아름다움에 대한 시민적 책임과 선의를 요구한다는 점, 화장실을 그가 ‘머문 자리’라고 에둘러 이야기한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나로서는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권 국가의 화장실에서 비슷한 표현을 본 기억이 없는데, 대체로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마세요’ 정도의 담백한 표어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위 표현은 무척 문학적이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라’는 직접적인 지시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장이 더욱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의 본질적인 기능 중 하나는 의미의 전달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시간의 지연은 의미를 증폭시킨다. “아, 그때 그게 이런 말이었어?”라고 뒤늦게 깨닫는 순간 전달된 의미는 우리의 인식과 기억 속에 더욱 강렬하게 기입된다. 느리게 다가오는 의미는 그에 대해 보다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세요’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장이 더 오래 기억되고, 읽는 사람을 곱씹게 함으로써 실제 행동의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이유다. 점점 더 많은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시대에 문학의 존재는 그러므로 중요하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도 시가 붙어 있고, 화장실에서도 위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우리 한국어 사용자들은 그 중요성을 진작부터 알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고작 1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 문학의 노벨문학상 수상 역시 가능했을 것이다. 문학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던 요즘, 한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 이보다 기쁜 소식이 없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문학의 중요성을 새롭게 고취한 만큼, 한국 문학 전반에 대한 더욱 폭넓은 이해와 국가적 지원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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