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정치 지도자와 운칠기삼
시대적 요구 정확히 이해하며 비정할 정도로 결단력 있어야
사면초가 위기의 윤 대통령 지도자 덕목 되새겨 행동할 때
정치인의 운명은 타고나는가, 아니면 후천적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가? 이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필부들도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남 탓, 운 탓을 하는데 정치인들이야 오죽하랴. 선거철마다 점집이 붐비는 것은 운의 영향을 과소평가하기 어려운 한국 정치의 민낯을 보여준다. 최근 한 정치 브로커가 불러일으킨 “장님 무사, 주술사” 논란도 그렇다. 갈수록 떨어지던 출산율과 혼인율이 그 대책을 마련하라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 누가 들어서자마자 증가세로 돌아선 것을 두고 운칠기삼이라고 하는 것처럼, 인간사에 운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적 성공은 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적 성공을 결정짓는 세 가지 요소로 행운(포르투나), 재능(비르투), 시대의 필요(네세시타)를 강조했다. 포르투나는 인간사에 예측 불가능하게 작용하는 힘으로, 정치 지도자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있는 변수다. 통계학에서 말하는 확률과 같이 포르투나는 언제 누구에게 일어날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강이 예기치 않게 범람하듯 포르투나는 긍정적 결과를 제공하기도, 반대로 몰락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정치적 성공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정치 지도자의 성공은 지혜, 강인함, 유연성과 같은 덕목으로 이루어진 재능(비르투)을 통해 포르투나를 잘 다루고 극복하는 데 달려 있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한 가지 원칙에만 얽매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할 때 포르투나의 변덕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정치 지도자는 때로 자비를, 때로는 엄격함을 보여야 하며, 약속을 지킬 때와 깨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마키아벨리는 흔히 음모론의 원조로 오해받기도 한다.
시대적 흐름이나 시대의 요구를 뜻하는 네세시타는 우리 어휘 중 시운(時運)과 유사하다. 정치 지도자는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흐름에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 시대가 바뀔 때 이를 거스르면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가 주는 기회를 잘 포착하고 시대적 요구에 맞춰 때로는 비정하리만치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공하는 정치인은 막연하게 행운이 찾아오길 기다리기보다는 재능으로 이를 붙잡아 시대적 필요를 충족할 줄 아는 자다. 그런 의미에서 운칠기삼을 마키아벨리적으로 해석한다면 운삼, 복삼, 기사가 되겠다.
22대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 내부에서는 그 책임을 놓고 윤칠한삼(윤석열 70%, 한동훈 30%)이란 말이 잠시 회자했다. 대통령은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라는) 운을 날려 먹었고, 지금은 당대표인 당시 총괄선대위원장은 (정치 초년생으로서) 무능했다는 뜻이었을 게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 운은 운칠기삼의 전형이라는 얘기가 나온 터라 여권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으리라. 일견 그의 대통령 당선은 자신의 재능과 배우자 운이 결합한 결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랬던 대통령의 ‘행운의 여신’은 이제 그에게 정치적 부메랑과 부담이 되어 돌아왔다.
윤 대통령은 지금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대통령을 전후좌우에서 압박해오는 여야 대표가 각각 지지율 하락과 사법 리스크로 자중지란에 빠진다면 그에게 기사회생의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만, 특단의 조치 없이는 결국 정상적 국정 수행이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자신의 불운을 탓하거나 구사일생의 운을 바라고만 있을 한가한 상황 또한 아니다. 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신의 재능과 미덕을 증명해야 한다.
오물 풍선, 전쟁 파병, 미사일 발사와 핵공격 연습 위협 등 연일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엄중한 상황이다. 이 시대의 요구와 흐름에 대한 냉철한 이해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윤 대통령이 결단력 있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최선을 기대하되, 최악을 대비하라”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처럼, 이제 더는 잃을 것이 없다는 홀가분함과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오로지 국운을 지키기 위해 나서길 바란다. 나라 안팎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과 타협의 여지는 없다.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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