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의 이코노믹스] 의사 안 늘어도 자본 증가로 의료 공급이 수요 앞설 수도

2024. 11. 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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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정말 의사가 부족할까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의정 대립의 장기화로 환자들의 고통과 국민 불안이 한계 수준을 향해가고 있다. 의대 증원의 타당성 여부는 현재 및 십년 뒤 의사가 과연 부족할지에 달려있다. 이제라도 의료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10년 뒤 부족한 의사 수에 대해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예측이 나와야 한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정부나 의료계 어느 쪽도 아닌 경제학적 입장에서 합리적인 예측치를 시험적일지라도 추정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의료 수요 매년 1.7% 늘어날 수도
경제학적으로 보면 10년 뒤 의사 부족 여부는 첫째, 현재 의사 수가 부족한지와 둘째, 향후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율과 공급 증가율 중 어느 쪽이 클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전의 글(중앙일보 9월 30일자 ‘김세직의 이코노믹스’)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의료 서비스 생산량과 치료 성공률, 기계사용률 등 객관적 데이터를 보면 현재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확인했다.

「 고령화 영향, 의료 서비스 수요
10년간 매년 1.3~1.9% 늘 전망

장비 확대 등 의료 기술 발전과
정년 연장에 활동 의사수 증가

의료 공급 증가율, 연평균 3.2%
수요 증가율 1.3%P 추월할 수도

이번에는 앞으로 10년간 수요와 공급 증가율의 차이를 비교해 보려 한다. 수요 증가율이 공급 증가율보다 크면 수요에 못 미친 만큼 의료 공급을 더 늘리기 위해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를 더 늘려야 한다. 반대로 공급 증가율이 더 높으면 장래 수요를 공급이 채우고도 남기 때문에 굳이 의대 증원이 필요 없다.

의료 서비스의 수요 및 공급 증가율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예측을 위해 어떠한 가정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가 불충분해도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서 합리적 예측(rational prediction)을 해볼 수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수요 측면에서는 고령화가 의료 수요 증가에 미칠 영향을 예측해야 한다. 앞으로 인구는 감소하지만 비(非)고령인구에 비해 의료 수요가 큰 고령 인구가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전체 의료 수요는 증가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16년 고령 인구(65세 이상) 1인당 의료 수요는 비고령 인구(65세 이하) 1인당 의료 수요보다 최저 2.3배에서 최고 3.2배까지 컸다. 단 이 배율이 증가하는 추세였는데 이 증가 추세가 지속한다고 가정하면 2025년에는 4.1배, 2034년에 5.1배로 증가해 향후 십년 평균이 4.6배로 추정된다. 즉 비고령 인구 한 명이 한 번 병원 갈 때 고령인구 한 명은 4.6번 가는 것이다. 물론 은퇴 후 급격한 소득 추락 속에 노인 빈곤에 처해 웬만하면 병원에 못 가고 참을 상당수 고령 인구를 고려하면 이 배율이 4.6배보다 훨씬 낮을 가능성도 크지만, 보수적으로 가정하기 위해 이는 일단 고려하지 않기로 한다.

이 고령-비고령 의료 수요 배율 추정치인 4.6과 통계청의 고령 및 비고령 인구 장래 추계를 결합하면 향후 10년간 의료서비스 수요는 매년 1.7%씩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배율이 2008~16년 최고치인 3.2배와 2025~34년 추정치의 최고치인 5.1배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달리 가정하면 의료 서비스 수요증가율은 연율로 볼 때 1.3~1.9%의 범위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본·기술·의사 수가 공급 결정
공급 측면에서는 의료 서비스 생산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의 향후 변화를 모두 예측해 봐야 한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모든 재화나 서비스는 기술과 자본 및 노동이 결합해 생산되고, 기술과 자본, 노동이 늘수록 생산량이 증가한다. 의료 서비스도 의료 생산 기술 수준이 높을수록, 의료 기계 같은 자본이 많을수록, 의사 같은 노동력이 많을수록 더 많이 생산돼 공급된다.

김영희 디자이너

의료 서비스의 공급 증가율 역시 결국 기술 증가율과 자본 증가율, 의사 증가율에 의해 결정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우 교수가 제안한 성장 회계(growth accounting)를 이용하면 의료 서비스의 공급 증가율을 다음의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의료 공급 증가율=기술 진보율+(1-노동 소득 비율)×자본 증가율+노동 소득 비율×의사 증가율’이다. 따라서 의료 공급 증가율을 추정하려면 향후 10년간의 기술 진보율, 자본 증가율, 의사 증가율 및 노동 소득 비율을 합리적으로 예측하거나 가정해야 한다.

이 중 기술 진보율은 최근 챗 GPT에서 보듯이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과 의료 기술의 눈부신 발전 가능성을 고려할 때 향후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데이터가 없는 상황인 만큼, 의료 산업의 기술 진보율을 과거 10년간 국가 전체의 기술 진보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보수적으로 가정하자. 즉 향후 10년간 우리 의료 산업의 기술 진보율을 한국은행이 2010~20년 우리나라 기술 진보율로 추정한 연율 0.4%로 계속 유지된다고 가정하자.

의료 기계 같은 자본의 증가율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OECD 보건통계에서 제공하는 의료기계 수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2016~22년 CT와 MRI, 맘모그래프, 감마 카메라, 방사선 치료기 및 PET 장비 개수로 측정한 우리나라 의료산업 자본량은 매년 평균 3.5%씩 증가해 왔다. 이 기간에 자본 증가율이 보여준 증가 추세가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향후 10년간 자본 증가율을 추정하면 연 5.4%로 추정된다. 그러나 최대한 보수적으로 가정하기 위해 이 값 대신에 과거 평균인 연 3.5%가 향후 10년 유지된다고 가정하자.

의사 증가율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먼저 2006년 이후 의대 정원이 3058명으로 고정돼 있었지만 활동 의사 수는 실질적인 정년 연장 등을 통해 매년 평균 2670명씩 계속 증가해 왔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단 2010~20년 증가 추세가 완만하게 하락해왔기에, 이런 추세가 지속할 것으로 가정하면 향후 10년간 의사 증가율은 연율 1.8%로 추정된다.

끝으로 의료 산업에서 노동이 생산에 기여한 몫을 나타내는 노동 소득 비율에 관해서는 국내 추정치가 없지만, 미국 노동통계국의 추정치를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미국 의료 산업의 자본-노동 비율 등 특성이 비슷한 만큼 우리 의료 산업의 노동 소득 비율을 미국의 2008~14년 평균인 0.4로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의대 증원 없이 의료 수요 충족할 수도
이러한 합리적 혹은 보수적 추정치를 이용해 앞서 언급한 산식을 통해 추계한 향후 10년간 의료서비스 공급 증가율은 다음과 같다. ‘의료서비스 공급(생산) 증가율=0.4%+ 0.6×3.5%+0.4×1.8%=3.2%’다.

김영희 디자이너

즉 향후 10년간의 의료 공급 증가율은 연평균 3.2%에 이른다. 따라서 공급 증가율이 수요 증가율 1.3~1.9% 범위를 1.3%포인트 이상이나 앞선다. 이는 10년 후 국민의 의료 서비스 수요를 공급이 충족시키고도 남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향후 의료기술 진보와 CT와 MRI 등 의료 장비의 빠른 증가, 자연적인 의사 수 증가로 인한 공급 증가를 합리적으로 예측해 보면 고령화에 따른 수요 증가는 의대 증원 없이 충족시킬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의 시나리오에서 사용한 가정 중 일부를 더욱 보수적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향후 의료 기술에 있어 진보가 전혀 없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해보자. 이 경우 공급 증가율은 3.2%에서 2.8%로 떨어지지만 1.2~1.9% 범위의 수요 증가율을 훨씬 앞지른다. 또한 자본 증가율을 보수적 추정치인 3.5%보다 훨씬 낮은 2%로 더욱 보수적으로 가정하더라도 공급 증가율은 2.3%에 달해 수요 증가율을 앞선다.

의사 증가율을 추정치인 1.8%보다 1%포인트나 낮게 가정할 경우에도 공급 증가율은 2.8%에 달해 수요 증가율을 훨씬 앞지른다. 심지어 의사 수가 전혀 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도 공급 증가율은 자본 증가와 기술 진보로 인해 2.5%에 달해 수요 증가율을 앞지른다. 이를 통해 일부 핵심 가정을 더욱 보수적으로 바꾸더라도, 공급 증가율이 수요 증가율을 앞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사 부족 주장, 데이터 기반해야
물론 누군가는 공급 증가율이 수요 증가율에 훨씬 못 미쳐 십년 후 의사가 1만 명 이상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오도록 가정할 수도 있다. 단 이를 위해서는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의료 수요 증가가 이에 비례한 의사 수 증가로만 충족된다는 가정을 해야만 한다. 이는 의료 서비스 생산이 기술과 자본(기계) 없이 의사의 노동에 의해서만 이뤄진다는 비경제학적인 가정이다. 10년 뒤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하다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이런 가정을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정을 하게 되면 의료 공급의 핵심 요소인 기술 진보율과 자본 증가율을 빼놓고 의사 증가율만 고려하게 된다. 그 결과 공급 증가율을 실제보다 크게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보다 현실적인 가정 하에서는 10년 뒤 전체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할 가능성은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고려한 시나리오는 물론 여러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다. 2000명의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제기한 정부와 의료계가 의사 수와 관련된 주장을 하기에 앞서 그러한 수치들이 의료 수요와 공급에 관한 어떤 구체적 가정 하에서 도출된 것인지 먼저 명확히 밝힌다면, 과연 어느 쪽의 가정이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에 부합되는지 국민이 직접 판단할 수 있다. 그 결과 전체 의사 수 부족 여부에 대해 합리적 가정과 데이터에 입각한 객관적 예측이 도출되면 그간 고통을 감내하며 국민이 간절히 원해온 의료 사태 해결의 실마리도 자연적으로 풀릴 것이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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