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위태로운 ‘다윗과 골리앗’
여느 때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던 10월의 저녁 회식이었다. 저녁 8시 2분, 갑자기 날아든 속보로 공기는 확 달라졌다. ‘[1보] 노벨 문학상에 한국 소설가 한강’
인공지능·로봇 등 시대를 앞서 나가는 산업군을 취재하는 동료들이 너도나도 문학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강의 대표작을 모두 소장하고 있다는 후배부터 작가들 이름을 줄줄 말하며 한국 문학의 팬이라는 선배까지. 소설을 즐겨 읽는 나 역시 내적 친밀감 있는 한국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괜스레 뿌듯하고 들떴다.
깔끔한 회식 문화를 자랑하는 부서지만, 그날은 다 같이 홀린 듯이 깜짝 2차를 자처했다. 회식 장소에서 가까웠던 광화문 교보문고로 왁자지껄 몰려갔다. 저녁 9시 5분, 서점은 매대를 마련하기 전이었다. 영업 종료를 약 1시간 앞둔 터라 오히려 분위기는 차분했다. 그 와중에 어수선한 몇몇이 눈에 띄었는데, 인근에 있는 신문사·방송사에서 달려온 기자들이었다.
이날 취재진이 몰렸던 또 다른 장소는 바로 서점 ‘책방, 오늘’이다. 2016년 부커상 수상 이후 “글쓰기를 못한다면, 독립서점을 열고 싶다”던 한강 작가가 2018년부터 6년 째 운영하는 작은 서점이다. 그는 독립서점의 매력에 대해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의미 있는 책을 좋은 자리에 놓는 식으로 전적으로 주인이 알아서 (서점 운영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잘 알려진 작가가 애정을 갖고 운영해도 만성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큰 서점과 작은 지역·독립서점. 기자들이 몰린 두 장소는 줄곧 상생이 화두였다. 1981년 등장한 초대형 서점 교보문고가 지역에 분점을 열겠다고 발표했을 때, 전국의 지역 서점들은 일제히 가게 문을 닫고 격렬히 반발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다윗과 골리앗’ 식 갈등은 40년 넘게 이어졌다. 그새 대형 서점의 반열에 예스24·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이 올랐고, 2000년대 들어 등장한 독립서점은 소형 서점으로서 갈등의 흐름에 합류했다.
수상 발표 엿새 만에 100만 부 이상의 책이 팔렸다는, ‘한강 특수’의 물길이 대형 서점 쪽으로 흐르니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작품에 대한 수요는 치솟았지만, 소형 서점에선 물량이 없어 손님들을 돌려보내야 했다. 도·소매를 함께하는 대형 서점이 물량을 독식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교보 문고는 지난달 열흘간 한강 작품 판매를 제한했다. 이걸로 된 걸까.
한때 매년 20% 이상의 매출 증가를 올리던 교보문고는 최근 2년 연속 적자다. 출판사·인쇄소 등의 상황은 더 암울하다. 잠깐의 양보나 일방적인 희생으로 상생을 이뤘다고 하기엔 업계 전반이 바람 앞 등불이다. 국내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들의 근본적인 상생안을 논의하기 위해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어환희 IT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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