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간 독무대…이자벨 위페르의 ‘추상화 같은 모놀로그’

내한 연극에서 이자벨 위페르는 추상적 연기를 선보였다. [사진 ⓒLucie Jansch]

‘홍상수의 뮤즈’로 알려진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71)가 지난 1, 2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1542~1587)와 동명의 작품(연출 로버트 윌슨)으로 첫 내한 무대를 꾸몄다. 그는 홍 감독과 영화 3편을 함께했다. 2019년 프랑스 파리시립극장에서 초연한 ‘메리 스튜어트’는 이번 한국 공연이 99·100회째이자 아시아 초연이다.

미국 연극계의 비주얼 실험가 윌슨이 연출 겸 무대 디자인을 맡았고, 위페르는 90분간 독무대를 펼쳤다. 주인공 메리는 출생 6일 만에 스코틀랜드 왕위를 물려받았다. 5살에 프랑스 왕자와 혼인했다가 남편이 즉위 1년 만에 죽자 강제로 스코틀랜드에 돌아왔다. 18년간 갇혀 살다, 당숙모인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반역죄로 몰려 처형당했다. 위페르는 비극적 운명을 속사포 같은 독백과 얼어붙은 듯한 정자세, 느린 춤사위로 그려냈다.

난해한 작품이지만 위페르의 명성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그는 1971년 연극 무대로 데뷔해 영화 ‘피아니스트’(2001) 등 53년간 100편 넘는 영화·드라마·연극에 출연했고, 야만성과 무기력을 오가는 붕괴 직전의 여성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칸(1976, 2001)과 베니스(1988, 1995)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15년 음악극 ‘셰익스피어 소네트’,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 이후 9년 만에 내한공연을 연출한 윌슨은 위페르에 대해 “함께 일한 배우 중 독보적”이라며 “관념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고 평가했다. 이번 무대는 창립 20주년인 성남문화재단의 의뢰로 성사됐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