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현재 권력 힘겨루기, 피할 수 없지만…[신율의 정치 읽기]

2024. 11. 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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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감찰관 추천을 두고 갈등을 겪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대타협으로 갈등의 시대 끝내라’ ‘MB-박근혜-이회창의 3각 갈등’.

2007년과 2008년,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서 벌어진 이명박-박근혜 두 정치인 사이 갈등을 표현한 기사 제목이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정치인은 2007년 대선 이전부터 2012년 총선 직전까지 사사건건 부딪혔다. 이런 갈등은 이명박-박근혜 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태우 정권 시절, 노 대통령과 김영삼 당시 민자당 총재 사이 갈등과 충돌은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 갈등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이후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 갈등은 대통령에 대한 ‘화형식’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표현됐다.

가장 최근 사례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다. 두 사람 갈등은 결국, 윤석열 당시 총장의 야당행을 낳았다. 이렇듯 미래 권력을 추구하는 인물과 당시 권력은 거의 예외 없이 죽고 살기 식의 갈등을 반복했다.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서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사이 갈등 때문에 차기 지방선거와 대선 그리고 총선에서 패배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래 권력을 추구하는 인물과 현재 권력과의 갈등과 반목 그리고 투쟁은 권력 속성에서 기인한다. 권력은 ‘집중’되려는 속성을 갖고 있어 권력 이동기에는 항상 이런 식의 갈등과 투쟁 과정이 수반된다. 갈등과 반목은 정권 창출 과정에서 예외 없이 나타나는 일종의 ‘통과 의례’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갈등이 앞으로의 선거를 망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은, 갈등에 대한 과대 해석이다.

갈등이 ‘일시적 분당 사태’까지 이어지고도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적도 있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 갈등이 그런 사례다. 이명박 정권 당시 무소속 친박연대 같은 분당 사태까지 겪었지만, 결국 박근혜 정권이 탄생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김영삼-이회창 두 정치인 갈등은 정권 재창출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 경우를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김영삼 정권 말기에 IMF 외환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위기에서 여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정권을 잃은 뒤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의 막강한 존재감으로 1인 중심 정당이 됐지만 계속 대선에서 패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례까지 고려하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도전자 사이 갈등 여부가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7대 대선 경선 이전부터 불거진 이명박-박근혜 양자 갈등이 MB 집권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 이유 중 하나는,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에 불거진 ‘광우병 파동’이다. 광우병 관련 촛불 시위가 한창일 당시, 한국갤럽 여론조사(2008년 5월 31일 발표)에서 나타난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은 21.2%였다. 당시 한나라당 지지율도 곤두박질쳤다. 한나라당은 대선 직후 50%대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광우병 사태 당시에는 31.8%까지 추락했다. 상황이 이러니 당내 분란은 오히려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갈등의 표출’은 정권의 국정 장악력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 사태를 겪을 당시의 지지율은 다른 정권 4년 차 지지율과 비슷했기 때문에, 국정 장악력에 문제가 발생했고, 상황이 이러니 일반적으로 레임덕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재와 미래 권력 사이의 극단적인 갈등 형태가 지속적으로 표출됐다.

이런 과거 사례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 수 있다.

현재 윤석열 정권 지지율은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보다 낮다. 지난 10월 25일 발표된 한국갤럽 자체 조사(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20%였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였다. 2008년 6월 이명박 정권 지지율과 아주 유사한 수준이다.

이런 수치는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한 ‘국민적 감정의 골’이 과거 광우병 사태 당시와 유사함을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두 사안의 성격은 다르다. 광우병 사태는 ‘건강’이라는 국민의 개인적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이었지만, 김 여사 문제는 국민 개개인의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이 아니다. 때문에 김 여사 문제는 광우병 사태보다는 해법을 찾기 쉬울 수 있다. 한동훈 대표의 특별감찰관 추천 제안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제안에 대통령실은 아직도 과거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대통령실은 북한 인권 문제는 당의 정체성과도 연결된 문제라며 북한 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별개로 특별감찰관을 추천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 이런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전체 맥락에서는 틀렸다. 북한 인권 문제가 보수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맞다. 하지만 북한 인권재단 문제와 특별감찰관 추천 문제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별개 사안이다. 그러니 두 사안을 엮는 행위를 국민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대통령실 주장은 자칫 국민에게 대통령실이 특별감찰관 임명을 반대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당연히 국민은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다 생각할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특별감찰관 추천 정도 가지고 분노한 국민 여론을 잠재우기 힘들다는 점이다. 더욱 강력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야당을 상대하기 위한 최소한의 명분 역할 정도만 하는 특별감찰관 임명에도 이렇게 소극적이니, 더 이상의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대통령실 움직임을 보면, 특별감찰관 대신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적극 해명하는 쪽으로 전략을 짠 것 같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관련 김 여사 모녀가 23억원 시세차익을 봤다는 주장을 대통령실이 부정하고 나선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대통령실은 “23억원이라는 것은 2022년 문재인정부 때 검찰 수사팀이 1심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 불과하다”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사실일 수 있지만, 국민이 주목하는 사안의 핵심은 주가 조작 가담 여부와 이를 통해 이득을 봤는지다. 액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23억원을 번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통령실이 현재 국면의 문제를 ‘주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래 권력과 현재 권력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합리적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여론은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 여론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이를 토대로 ‘자의적 해법’을 제시한다면, 이는 해법이라 볼 수 없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3호 (2024.11.06~2024.11.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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