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엑스플로 74’로 비춰보는 10·27 연합예배
‘기독교 가치 천명’ 자랑스러우면서도
‘복음 전하는 통로됐나’ 불편한 마음
지혜로운 ‘빛의 아들들’ 위한 전략 모색해야
2024년 10월 27일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는 ‘건강한 가정 거룩한 나라’라는 기치아래 모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한 1000만 기독교인 선언문이 발표됐다. 우리 기독교가 지켜야할 본질적 가치가 천명됐고, 지금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방향을 제시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습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동체의 일원인 한국교회 크리스천들의 가슴이 얼마나 뿌듯했겠는가. 무엇보다 용기 있게 나와 차별금지법의 문제를 지적하며 의견을 표명한 고등학생들의 모습 또한 감동적이었다.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목적이 좋다는 것과 방법이 옳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25년 전 미국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하며 치열하게 한국교회를 고민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교회는 어떤 선교 전략을 세워야 할까. 그러다 보니 신자와 비신자를 비교하는 리서치를 하게 됐고 한국교회 성장의 열쇠는 교회 내부가 아니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결론을 갖고 논문을 쓰게 됐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무엇이냐’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어떠하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복음의 확장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친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지’가 복음 전도의 핵심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목회 현장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복음의 장애’가 돼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과 사람들은 ‘복음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교회’에 대한 불신으로 복음을 거부한다. 200만 크리스천이 모여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며 천명한 기독교의 가치는 너무나 분명하다. 문제는 그것을 전하는 방식으로 인해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게 됐는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 글로 인해 염려되는 점이 있다. 혹시라도 개인적인 의견들로 인해 교회 내적으로 분열이 일어나거나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비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지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재차 언급하지만 ‘기독교 본질’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방법’에 대한 고민과 조언으로 이해됐으면 좋겠다.
1974년 여의도에서 열린 ‘엑스플로 74’ 대회는 국제 CCC와 빌리그레이엄 목사가 주도해 조직됐다. 이 대회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의 입지가 강화됐을 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기독교 신앙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또한 청년세대와 일반대중에게 복음이 좀 더 친근하게 전해지고 폭발적인 교회 성장을 가져오는 기폭제가 된 것 역시 사실이다.
이 대회의 긍정적 효과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의 시대 한 가운데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통의 신념과 가치를 나누는 통합의 장을 마련해 줬다는 데 있다. 물론 부정적 입장에서 종교적 자유와 종교 편향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당시 정부가 이 대회를 통해 국민을 통제하려 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1974년 기독교 비율은 전체인구의 10%가 되지 않는 270만명에서 3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서 결코 다수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엑스플로 74 대회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인파가 모여 들었다. 기독교인들의 ‘세 과시’는 성장지향적인 세태의 흐름 속에서 교회 성장에 상당히 긍정적 기대 효과가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또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시대에 미국의 걸출한 지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설교자로 섰다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어떤 면에서 10월 27일 한국교회 연합예배 행사가 엑스플로 74와 많이 닮았다. 교회가 아닌 공적인 장소에서 교인들이 모였다는 것과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몇 가지 유감스러운 면이 있다. 우리가 직면한 ‘축소지향적 사회’속에서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대형 집회’가 대한민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줬을지 생각하게 된다. 군부독재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사고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나라를 위해 자신들의 자유를 내어주고 기득권을 포기했다. 아니, 그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미덕으로 생각했으니 말이다. ‘불편함’은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24년 대회는 일반대중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엑스플로 74가 의도하지 않았던 사회통합적 기능을 했다면 이번 대회는 의도적으로 세대와 계층 간의 분열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방법론적 측면에서 깊은 통찰이 필요할 듯하다. 더 이상 힘이나 부를 자랑하는 것이 미덕이 아닌 사 회속에서 200만명이라는 숫자와 200억원 이라는 액수를 자랑스럽게 기치로 내거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춰졌을지 의구심이 간다.
10월 27일 행사는 기독교 공동체 내부를 결속하며 ‘한국교회라는 커다란 요새’를 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강한 힘으로 지은 커다란 요새가 ‘복음의 능력’을 교회 내부에 가둬 버리지는 않았는가. 1974년 여의도에서 울려 퍼졌던 찬송과 기도소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다줬다면, 2024년 시청과 광화문에서 힘차게 부른 찬송가 소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단순히 짜증과 소음으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우리가 지닌 고귀한 복음이, 우리가 품고 있는 복음의 능력이 광화문에서 자신의 이권을 다투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소음’으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가치를 폄훼하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일반 대중은 이재명을 무조건 추종하는 ‘개딸’들의 고집과 아집 그리고 그들의 무례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조국 사태로 인해 광화문과 서초동에 갈라져 집회를 일삼던 사람들의 완고함에 질려 버렸다. 집단적 이기주의는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며 수시로 광화문과 시청, 서울역을 중심으로 모여 집회를 주도하지만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단지 불편하고 짜증스럽다.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유가 억압당했던 시절 ‘광장 집회’가 유일한 의사표출의 방법이었다면, 얼마든지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사회 속에서 광장집회가 유일한 대안일 수 있을까. 이러한 지적이 무책임한 말로 들릴지 모른다. 정작 여기에서 그 방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답은 무엇인지 제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진리의 메시지가 잘못된 방식으로 인해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 눈에 비친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정작 복음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고 있는가, 아니면 복음의 길을 가로 막는 담을 쌓고 있는가. 비판이나 논쟁이 아닌, 함께 생각하고 지혜로운 전략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누가복음 16 장에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시는 예수님의 비유가 나온다. 8절에 보면 심지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비유의 참 뜻은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고자 함이 아니라, 빛의 아들들이 불의한 청지기보다 지혜롭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다.
더미션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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