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향한 달라진 시선… 원자력까지 품은 CFE에 ‘눈길’
①‘무탄소’, 패러다임이 변한다
‘탈원전 기수’ EU부터 기류 변화
원자력·수소 품는 CFE에 힘 실릴 듯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순수한 재생에너지만을 활용해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는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한때 탈원전의 최전선이었던 유럽에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인공지능(AI)발 전력 수요 폭증을 계기로 원자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실용주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한국이 주창하는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1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개막을 한 달가량 앞두고 열린 유럽연합(EU) 에너지 장관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당사국 협상 권한에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지원’을 포함시키는 데 처음으로 동의했다. 지난 COP28에서 원자력을 청정 에너지 전환의 필수 요소로 인정한 데 이어 또 한 번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당초 국제사회는 원자력을 배제하고 탄소 중립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탈원전과 탄소 중립을 병행하는 대표적 구상이 2014년 출범해 지난 7월까지 글로벌 기업 433곳이 가입한 대규모 민간 캠페인 RE100(재생에너지 사용 100%)이다. RE100의 궁극적 목표는 2050년까지 모든 전력 소비량을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태양광·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를 제외한 다른 에너지는 탄소 중립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원자력과의 ‘동거 필요성’을 인정하는 현실적 시선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그동안 국제적으로 탈원전 의제를 주도해온 EU의 태도 변화가 두드러졌다. EU 의장국인 벨기에는 지난 3월 브뤼셀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공동으로 전례 없는 ‘원자력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당시 연설에서 “원전의 안전한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청정 에너지원을 대규모로 확보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위축된 원전산업을 다시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보고 육성하겠다는 기류가 EU 전면에 드러난 것이다.
일차적인 계기는 2022년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가스와 원유 수입량의 약 40%, 25%를 각각 러시아에서 들여오던 EU는 이를 계기로 ‘에너지 독립’의 과제를 떠안았다. 수급난을 겪으면서 폭등한 에너지 요금 역시 원전의 ‘가성비’에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2022년 10월 EU 27개국의 소매 가스 가격은 2년 전에 비해 2.7배 상승했다.
원전의 부활이나 보존 없이 탄소 중립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사정도 영향을 미쳤다. EU는 본래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990년의 45%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EU 내 친원전 국가들은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으로 만든 수소 등을 재생 연료로 인정하지 않고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비관론을 제기해 왔다.
대표적 원전 찬성파 국가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2022년 국내 전력의 62.6%를 원전으로 생산한 EU 최대의 원전 이용국이다. 지난 1월 기준 가동 중인 원전이 56기에 달하고, 지금도 원전 1기를 추가 건설하는 중이다. 체코·불가리아·슬로바키아 등 상당수 동유럽 국가 역시 프랑스와 이해를 같이한다. 최근에는 기존에 탈원전 기조를 천명했던 스웨덴·벨기에도 탈원전 이전으로의 회귀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스웨덴은 2045년까지 신규 원전 10기를 추가 건설하기로 했다. 벨기에도 폐쇄를 예정했던 원전 2기를 그대로 두고 운전 기한을 10년간 연장한 상태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처럼 여전히 탈원전 기조를 고수하는 세력도 있다. 한때 유럽 내에서 원전산업을 선도하는 국가였던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빠르게 탈원전에 돌입했다. 지난해에는 마지막 남은 원전 3기까지 가동을 중단하면서 명실상부한 ‘탈원전 국가’가 됐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원전과의 작별을 미루는 ‘현실주의’가 점차 대세로 떠오르는 추세다. ‘원전굴기’ 정책을 앞세운 중국은 원전 약 30기를 건설 중이고, 지난 8월에는 11기 건설 계획을 새롭게 승인했다. 러시아 역시 2035년까지 원전 11기를 추가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미국도 원전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한동안 원전에 소극적이던 미국은 지난 7월 ‘원전 허가기간 단축’을 골자로 하는 원자력발전법을 제정했다.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AI산업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현 상황을 생각하면 이 같은 실용주의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자연히 재생에너지 외에도 원자력, 수소,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 친환경 에너지원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CFE가 탄소 중립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이 주도하는 CFE 이니셔티브는 지난달 3일 글로벌 작업반을 발족하면서 공식 출범 절차를 마쳤다. 작업반에는 한국·일본·아랍에미리트(UAE)·체코와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이름을 올렸다.
송철화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회장은 “RE100은 이상적인 주장이지만 재생에너지 확대의 현실적 제약과 국가 간 서로 다른 여건을 감안하면 기한 내에 목표한 수준의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나라는 드물다”면서 “탄소 중립을 이루려면 원자력과 수소의 역할을 인정하는 무탄소 에너지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 제안한 ‘무탄소’ 새 패러다임… 지지선언 10개국으로
- 작년도, 올해도…‘페이커’가 해냈다
- 소시지로 만든다고?… ‘200만 라쿤’에 고민 빠진 독일
- “천사 같은 엄마는 6명을 살렸단다”… 뇌사 30대 장기기증
- 사람 구하고 취객 말리고…요즘 세상, 이런 동네 [아살세]
- 美 학교들, 10대가 사랑하는 ‘이 신발’에 줄줄이 금지령
- 500만원 과태료에도 여전한 허위신고…고생하는 경찰들
- 日 ‘천년돌’ 하시모토 칸나 갑질?… “매니저 8명 교체”
- ‘70년대생 여성 회장 1호’…㈜신세계 정유경에 쏠리는 눈
- 서울사는 30대, 3명 중 2명은 결혼 안 해…세종은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