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문명특급' 제작진 역대급 고생, '재쓰비'에 몸 갈아 넣었다"

이선필 2024. 11. 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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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명특급> 홍민지 피디

[이선필 기자]

 <문명특급> 홍민지 피디
ⓒ 홍민지
"너무 힘들면 그만할까?"

유튜브 인기 채널 <문명특급>의 터줏대감 밍키(홍민지) PD는 제작진들을 향해 어렵게 이 말을 꺼냈다고 한다. 90년대생 팀장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하지만 본인은 제작진과 재재의 지원자를 자처하는 '이상한' 역학관계를 강조해왔던 터에 유독 올해만큼 힘든 시기가 없었다고 했다. 재재와 유튜버 승헌쓰, 그리고 댄서 가비로 구성된 팀 '재쓰비' 프로젝트를 말대로 맨땅에 머리 부딪혀가며 진행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명특급>의 진행자이자 기획 PD기도 한 재재가 가볍게 던진 말이 시초였다. "언제 한번 음원을 내보고 싶다"는 그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홍 PD는 세상에 없던 팀 구성을 토대로 세상에 없던 음원 발매 프로젝트를 제작진들과 함께 꿈꾸기 시작했다. 물론 그간 노래 관련 기획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문명특급>의 첫 로고송 '라쿠카라차타라타'가 있었고, '숨듣명 콘서트'(숨어 듣는 명곡)가 있었다.

"'라쿠카라차타라타'는 큰 사랑을 받았지만 음원 발매까진 안됐고, '숨듣명 콘서트'도 우리가 작사 작곡한 노래는 아니었잖나. 우리가 만들어 낸 음원이나 비디오가 아니었다. 이번에야 말로 정말 무에서 유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셈이다. 오리지널 아웃풋(Original Output)이 이제야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10월 30일 만난 홍민지 PD는 '재쓰비' 프로젝트가 지닌 상징성을 짚었다. 작사 작곡과 전혀 관계없는 세 사람이 노래를 만들고 춤을 추다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까지 밟았고, 본인들만의 노래를 만들어 공개를 앞두고 있었다. 마침 전날 밤도 꼬박 지새고 온 홍 PD를 <오마이뉴스>가 만났다.

침체기, 인정하고 직면하다

MZ 세대 대표 콘텐츠로 자리매김해 온 <문명특급>이라지만 사실 그 흐름이 예전만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난해 300회를 맞는 등 큰 경사가 있었지만 전후로 조회 수가 들쭉날쭉하거나 파급력 또한 예전만 못하다는 세간의 반응도 있었다. '신문명을 전파하라'는 기치를 걸고 2018년 출범한 뒤 BTS와 배우 윤여정, 앤 마리와 베네딕트 컴버배치 같은 스타 출연진에 가려져 정작 출범 당시 내세웠던 본질이 희미해진 것은 아닌지 비판도 따라오던 올해였다. 지난 5월께엔 '대국민 투표'를 통해 구독자 감소 원인을 자체적으로 파헤치는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큰 슬럼프였다"고 홍 PD는 고백했다.

"왜 해야 해? 이 질문에 답을 쉽게 못하고 있더라. 무엇을 위해, 그리고 왜 이걸 만들어? 라는 질문에 예전엔 빠르게 그리고 간결하게 답이 바로 나왔는데 어느 순간 길을 잘 못 찾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올해만큼 오랫동안 답이 안 나온 적이 없었다. 우린 늘 어떤 틈새를 찾아다니는 팀이었고 그 틈새에서 집을 짓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틈새를 이제 많은 사람들이 발견하게 되면서, 말대로 이젠 정말 살아남아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더라.

더이상 틈새가 아닌 시장이 된 것이지. 뭐지 뭐지 하다 정신 차려 보니 업계 모든 분들이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에 뛰어들었더라. 뭔가 여기에서도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틈새가 모두가 다 진출하는 시장이 되었구나. 우린 초가집에 컨테이너 박스에 살고 있었는데 떠내려가지 않게 버텨야 하는구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문명특급> 괴산고추축제 편 녹화 당시 현장.
ⓒ 홍민지
따지고 보면 그 틈새 찾기엔 <문명특급>만의 진정성이 있었다. 사라진 것으로만 알았던 배우 윤여정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쓴 수필을 찾아내 액자로 선물한 일화는 그만큼 대상의 화제성보단 대상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대표 사례다. 신문명을 발견하고 전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솔직함과 애정을 담아 전하는 일은 분명 지금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틈새라고 표현했지만 저희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눈높이가 맞아서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뭔가 어떤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다들 시선이 이쪽으로 오는 흐름인 것 같다. '대국민 투표'도 뭔가 반등을 노리자고 한 게 아니라 솔직하게 직면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솔직하게 지금 상황을 다 말하는 콘텐츠를 해보자는 거였다.

게스트의 화제성에 의존하지 않는 게 독립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그 속내를 조금 깊게 관찰해 주고 더 바라보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우리가 포커스를 두고 있는 지점이 미묘하게 달라졌더라. 그 문제를 느꼈다.

그래서 거절감을 직면하기 위함이랄까. 왜 사람들이 우릴 좋아하지 않는 걸까 그러면서 절치부심하고자 했지. 우리 팀은 늘 그 직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프긴 해도 회피하지 않고 맞이하자! 정신 차리자! 뭐 그런. 우리의 실수와 시행착오를 직면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 시청자 반응들로 우리의 현재 위치가 어떤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한 콘텐츠였다."

재쓰비는 곧 정체성
 유튜브 <문명특급>의 '위대한 재쓰비' 관련 이미지.
ⓒ 유튜브
 유튜브 <문명특급>의 '위대한 재쓰비' 관련 이미지.
ⓒ 유튜브
그래서 단돈 300만 원을 쥐고 시작한 재쓰비 프로젝트가 중요했다. "가수를 다루고 그들을 초대한 콘텐츠는 많았지만, 정작 우리만의 이야기가 없었다"는 위기의식이 바탕이 됐다. 홍민지 PD는 대학생 인턴 시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재쓰비는 우리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리 이야기로 끝날 기획이다. 제가 한창 인턴으로 일 할 때 <궁금한 이야기 Y>, <그것이 알고 싶다>를 재편집하고 업로드하는 걸 했는데 속으로는 내가 제작한 콘텐츠를 올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재편집은 저보다 더 유능한 작가님, PD님 것을 재생산하는 거잖나. <문명특급>에서 '명곡 챔피언십' 등을 할 때도 우리 시선으로 만든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재쓰비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음원 프로젝트, 오리지널리티의 초석을 까는 프로젝트라 생각한다.

핵심은 다양성이다. 직업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이 모였잖나. 우리끼린 '줏대'라고 표현하는데 작사, 작곡과는 아무 상관없는 각자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던 사람들이 가수가 되는 거다. 이미 사회적 자아가 생긴 사람들이잖나. 그렇게 자기 자아가 굳어진 사람들도 새로운 걸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 반드시 전문 교육을 받고, 소속사에 들어가야만 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인지 <문명특급> 오랜 팬들도 좋아해주시고, 새로운 팬도 생겼다. 우리 구독자 분들은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우리 엉덩이를 물어 뜯어주는 구독자님들이다(웃음). 이게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 같다."

쉽지 않은 일이다. 소액의 마중물 금액을 품고, 재쓰비 스스로 제작비를 마련하는 과정 자체가 녹록지 않다. 괴산고추축제와 추풍령가요축제에 가수로 무대에 서는 이들을 위해 제작진 또한 음지에서 몸과 마음을 갈아 넣었다.

혹시 음원 발매를 충당할 정도의 돈이 모였는지 물었다. 홍 PD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마지막 회에서 정산 이슈를 다뤄볼 생각"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다만, 11월 11일 음원 발표와 함께 이어질 뮤직비디오 공개를 두고 그는 정말 감탄할 정도의 결과물이 나왔다고 귀띔했다.

"정말 제작진들이 역대급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 모습에 제가 그만 할까라고 물으니 함께 하는 이규희 PD가 '그래도 끝까지는 해야죠'라고 하더라.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초반부터 많이 덜그럭덜그럭 했는데, 그런 얘기에 힘을 얻는다. 어제도 민지 작가님이 밍키 힘내라고 문자를 주셨다. 정말로 거절의 연속이었거든.

브로드웨이 무대도 숱한 거절 속에 유일하게 얻은 허락이었다. (한국 작품을 브로드웨이 공연에 올리고 있는) 신춘수 프로듀서께서 흔쾌히 도와주셨다. 본인이 과거에 그렇게 혼자 그 길을 걸었을 때 뉴욕 브로드웨이 유명인사들이 큰 도움을 주셨다더라. 언젠가 본인께서도 좀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터였다."

헌신할 준비
 유튜브 <문명특급>의 '위대한 재쓰비' 관련 이미지.
ⓒ 유튜브
진정성과 절실함. 홍민지 PD가 강조한 <문명특급> 팀의 비결이었다. 300회차를 훌쩍 넘긴 시점인 만큼 <문명특급>의 생애 그래프를 그려봤을 때 어느 시점에 와있는지를 물었다. "이제 점 하나를 찍었달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기엔 이미 포화상태가 돼 버린 유튜브 콘텐츠 생태계를 바라보는 문제의식도 반영돼 있었다.

"기존 판에서 선을 그리는 것보다 우리가 그린 X축과 Y축에서 그리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까진 축을 그려놓는 과정이었고, 이제 그 판에 점 하나를 찍은 느낌이다. 언제 선이 될 수 있을까. 그 패턴 자체가 우리 것이라는 생각으로 해보려 한다.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들은 자식과도 같다. 근데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 우리 자식이 너무 힘들어한다면? 사람들에게 치인다면? 다른 길을 빨리 찾아야지.

지금 유튜브는 차가 꽉 막힌 상태라고 본다. 지금 뭐가 유행이니까 빨리 따라가는 게 아니라 차를 돌려서 다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야지. 근데 이왕이면 그 새로운 길이 예쁜 길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콘텐츠를 아껴주는 플랫폼이 있다면 언제든 이사 갈 생각이 있다. 포부라면, 글로벌 문화의 허브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직 구체화 된 건 없지만 하고 싶은 기획이 있어서 우릴 아껴주는 플랫폼을 찾고 있다. 뉴 미디어든 레거시든 상관 없다. 우린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날, 홍민지 PD와 연락하던 중에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얼마 전 가장 힘들었던 촬영을 마치고 같이 떡볶이를 먹는데 박혜미PD가 이런 좋은 제작진만 모인 팀은 정말 귀하다는 말을 했다. 아무리 힘든 촬영도 재쓰비 멤버들과 제작진은 서로를 의지하며 도전하는 중이다.

이규희PD, 변미혜PD, 박혜미PD, 김은영PD, 지정원PD, 서지선PD, 안선영PD, 이소정PD, 이진영PD, 곽민지 작가, 전혜련 작가, 박미현 작가, 정서영 인턴 동료가 없었다면 난 진작 그만뒀을 것이다. 멤버들과 동료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끝까지 재쓰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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