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려진 제사 사진, 구순 아버지는 경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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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새처럼 저기 고향에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10월 24일 강화평화전망대에서 강 건너 손에 쥘 듯 가까운 이북 개풍군을 바라보는 실향민들의 탄식이다.
▲ 강화평화전망대에서 개풍군 실향민들이 강건너 고향을 바라보고 있다. |
ⓒ 김동석 |
강화평화전망대에서 여는 '실향민 망향제'
해마다 음력 10월 상달 전후에는 인천 강화에서 실향민과 그들 가족들이 모여 망향제를 연다. 10월 상달은 1년 중 조상에게 햇곡식을 바치기 가장 좋은 달이라는 뜻이다.
고향의 가족의 안녕을 기리며 은덕에 감사드리는 망향제는 6.25 전쟁 종료 후 지금까지 내려오는 실향민 전통행사이다.
▲ 개풍군민들이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망향제를 올리고 있다. |
ⓒ 김동석 |
개풍군이 고향인 아버지는 평생을 고향을 위해 헌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향사람을 위한 봉사는 아버지에게 설레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고향 모임과 행사라면 앞장섰다. 봄가을로 열리는 주말행사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실향민 모임에 갔다 불콰한 얼굴로 오시는 아버지 얼굴이 기억난다. 외로움과 슬픔을 술로 달랬던 것이다.
아버지는 고향 어르신들을 부모로 여겼다. 그 어르신들은 내게 조부모나 다름없었다. 아버지가 면민회와 군민회에서 고향사람을 만나고 반가워하는 모습은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생전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가족보다 고향사람을 더 챙긴다고 불평했을 정도다.
▲ 개풍군 실향민들이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망향제에 참석하고 있다. |
ⓒ 김동석 |
실향민 중에는 고향과 정체성을 애써 숨기는 사람도 있다. 자식들에게 혹시 해가 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실향민들의 자부심과 유대를 강조했다. 같은 고향이면 누구든 도우려고 노력했다.
고령과 병석으로 참석하지 못해도... 망향제 소식 반가워
신기하게도 아버지가 하던 애향활동이 대를 이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따라 돕다가 나중에는 내가 그 활동을 맡았다.
탈북민에 대한 관심도 아버지 영향이 크다. 고향과 가족을 두고 탈북하는 것이 전후 피난을 떠나야 했던 실향민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 개풍군 실향민들이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망향제를 지내고 있다. |
ⓒ 김동석 |
다행히 망향제에 참석한 몇 분들이 저간의 소식과 동정을 아버지에게 카톡으로 보내왔다. 어두운 눈으로 사진을 살피는 아버지는 경건하고 숙연하기조차 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애향모임과 행사 참석자들도 해마다 줄고 있다. 나 또한 실향민 후예지만 병석에 있어 송구스럽다.
올해도 여지없이 개풍군민들이 강화평화전망대에서 망향제를 지냈다는 소식이다. 전갈이 반가우면서도 아버지 얼굴 한편에는 어두움이 묻어났다.
망향제에 있어야 할 몇 분들이 보이지 않아서다. 수소문해보니 그새 작고했거나 아버지처럼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행사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엄숙하면서 고향을 그리는 애타는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실향민 대신 후손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향을 잊지 않는 실향민 먕향제가 한없이 반갑다. 분단과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들이 어디에 있든 고향과 부모형제를 기리는 것은 어떤 일보다 숭고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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