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배달 할아버지’ 사연, 그후…선행의 나비효과 [아살세]

박은주 2024. 11. 3.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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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대접해준 카페 사장에게 만원 한 장을 건네는 '꽃 배달 할아버지'. 오른쪽은 이씨가 다른 손님에게 받은 꽃. 이광희씨 제공


개업 첫 날 꽃을 배달하러 온 노년의 기사에게 커피 한잔을 대접하고 ‘인생의 교훈’을 배운 카페 사장을 기억하시나요?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광희씨 이야기입니다.

이씨는 영하 15도를 기록했던 지난 1월 23일 오전 7시쯤 개업 축하 화환을 배달하러 온 기사에게 “커피 한 잔 드릴까요?”라고 물어봤습니다. 기사는 이씨의 한마디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많은 곳을 다니면서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봤던 기사도 “아침 일찍 열어서 아직 못 팔았죠? 내가 팔아줘야지”라며 손사래를 치는 이씨에게 한사코 만원짜리 한 장을 쥐여주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받아 카페를 떠났습니다.

이씨에게 만원을 건네는 배달 기사 어르신. 이씨 제공


개업 첫날의 불안감이 누군가의 선의 덕분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으로 바뀐 걸까요. 어르신의 성의를 받은 이씨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 씀씀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크게 배웠다”며 인스타그램에 해당 장면이 담긴 카페 CCTV 영상을 올렸죠. 이 영상은 조회수 43만회를 기록하며 크게 화제가 됐고, 훈훈한 미담으로 각종 방송 등에도 소개됐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이씨. 이씨 제공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오랜 기간 재조명되면서 “다시 봐도 마음이 따스해진다” 등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최근에도 한 커뮤니티에 이씨 관련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그런 이씨를 지난달 23일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이씨는 동네 주민들과 소통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여러 사연을 들려줬습니다.

“고맙다는 말 못 해서” 다시 온 택시기사

이씨에 따르면 어떤 단골 손님은 오전 7시30분부터 시작하는 카페의 오픈 준비를 도와줬다고 합니다. 또 다른 손님은 손수 만든 반찬을 가져다 주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더 이씨 마음에 오래 남은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오전 7시부터 오픈 준비를 하던 이씨는 창밖 너머로 오래 정차하고 있던 택시 한 대를 목격했습니다. 출근길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콜택시’였죠. 개인적인 이유로 평소 택시 기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있던 이씨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려 기사에게 다가갔습니다.

택시기사는 처음엔 이씨의 커피를 선뜻 받지 못했습니다. 이씨가 “그냥 드리는 겁니다. 제 마음입니다”라며 재차 커피를 건네자 몇차례 더 거절한 끝에 기분 좋은 표정으로 커피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승객을 태운 택시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씨를 찾아온 택시기사. 이씨 제공


그런데 며칠 뒤, 그날의 택시기사가 이씨의 카페를 다시 찾았습니다. 그는 “내가 그때 그 택시기사”라며 “그날 너무 당황해서 고맙다는 말을 못 한 게 마음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이씨를 보며 환하게 미소지은 그는 “우연히 지나가다 이 카페 간판을 보자마자 들어왔다”며 “‘달달한’ 커피 한잔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택시기사의 마음이 고마웠던 이씨는 이번에도 커피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택시기사는 “절대 안 된다”며 돈을 건넸습니다. 이씨도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격이 저렴한 아메리카노 값을 받은 뒤 달콤한 바닐라라떼 한 잔을 건넸습니다.

사실 택시기사가 오기 전 이씨 카페를 찾아온 한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바로 그날 그 택시기사가 태운 승객이었죠.

“기사님이 오시기 전에 어떤 여성 손님이 와서 기사님 얘기를 했어요. 그날 택시에 탔던 승객이라고 하더라고요. 기사님이 가시는 내내 ‘저 카페 정말 좋은 카페니까 꼭 가보라’고 저희 카페 칭찬을 했대요.”

따스한 ‘인사’에 돌아온 ‘꽃다발’

한 손님은 이씨 가게에 수시로 꽃다발을 선물합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건 ‘인사’였습니다. 이씨는 평소 가게 밖으로 어르신들이 지나가면 문을 열고 나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드리는데, 한 어르신이 이를 유독 예쁘게 보시면서 이씨와 가까운 사이가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어르신의 큰딸이 이씨 카페를 찾아와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미국에 살고 있어서 아빠와 주로 문자를 주고받아요. 근데 어느 날부터 아빠가 활기가 넘치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에 한국에 들어와보니 아무래도 사장님이 늘 인사를 해주시고 말을 걸어주셔서 그런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씨가 손님에게 선물 받은 꽃. 이씨 제공


그리고 다음 날, 또 다른 여성이 이씨의 카페를 방문했습니다. 전날 온 여성의 동생, 그러니까 어르신의 막내딸이었죠. 꽃집을 운영한다는 그는 “언니가 내 준 숙제를 하러 왔다”며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매일 꽃다발을 선물하라’는 게 언니의 숙제라면서 말이죠. 그날 이후 매일은 아니지만, 어르신의 가족은 지금까지도 종종 이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한다고 합니다.

“가진 걸 나누는 것…어려운 일 아냐”

이씨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자신은 ‘커피 한 잔’이라 나누기 더 쉬운 거라며 겸손해 했습니다.

“제가 국밥집을 운영했으면 국밥 한 그릇을 매번 그냥 드리긴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커피 한 잔이니까, 그리고 저한테 있는 거니까 나눌 수 있는 거죠.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이 크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카페를 하는 게 너무 좋아요.”

이씨와 꽃 배달 할아버지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이씨 제공


아, 올해 초 인연을 맺었던 ‘꽃 배달 할아버지’와 이씨는 그 후 한 차례 재회했다고 합니다. 이씨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택배 회사를 통해 어르신의 연락처를 수소문했고, 그렇게 연락이 닿아 어르신이 한 번 더 이씨의 카페를 방문했다고 하는데요. 알고 보니 어르신은 배고파하는 노숙인의 밥값을 대신 계산해 준 적이 있을 정도로 평소 선행을 베푸는 분이었습니다.

오가는 커피 한 잔의 따스함을 알고, 작은 나눔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이들이기에 훈훈한 사연도 따라오는 것 아닐까요. ‘깜짝 선물’ 같은 일상의 작은 순간이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길 바래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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