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느슨한 관계의 힘 [강현숙 작가의 교인 풍경-12]
올해 80세인 C 성도님은 혼자 살고 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C 성도님에 의하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자신의 말년을 지켜줄 곳은 그러니까 혹 고독사를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자신을 책임져줄 곳은 오로지 교회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등록하였는데, 너무 자주 담당 전도사님께 전화해서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십니다.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외로움이 깊어질 때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우울감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65세 이상의 인구는 92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60세 이상은 1000만명을 훌쩍 넘고도 남습니다. 이 말은 교회에도 고령 인구가 많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는데 고령 인구 중에는 1인 가구들도 많습니다.
2022년 우리나라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는 34.5%로 3집 가운데 1집이 1인 가구인 셈입니다. 그중에서 고령자 1인 가구 비중은 9.1%로 10집 중 1집은 독거노인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흔히 노인층을 가리켜 ‘4고 세대’라고 하죠. 이건 노인이 되면 4가지의 고통 즉 질병, 가난, 무료함, 그리고 외로움이 뒤따른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1인 가구가 대세이기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4가지 고통 중 하나인 ‘외로움’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고 그래서인지 영국에서는 이미 2018년에 외로움을 담당할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도대체 외로움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면 ‘외로움 담당 장관’이 다 생겼을까요. 하긴 영국에서는 75세 이상의 어르신 중에 절반이 혼자 사신다고 하니 외로움이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지요. 따라서 개별 교회는 각 지역 아니 우리가 사는 동네의 구심점이 되어 이들의 외로움을 보듬어줄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외로움과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가장 끔찍한 빈곤
그 옛날 인도에서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던 테레사 수녀는 ‘외로움과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가장 끔찍한 빈곤’이라고 했는데 이 말을 뒷받침해주는 연구결과들이 많습니다. 하나만 예를 들면 미국 공중보건 서비스 단장 겸 의무 총감인 비베크 머시(Vivek Murthy)는 보고서 ‘외로움과 고립감이라는 유행병’에서 관계가 단절돼서 생긴 외로움의 고통은 매일 담배 열다섯 개비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해롭다고 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외로움만큼 사람들의 건강에 해로운 것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외로움과 관련하여 이런 연구도 있어요. 사회심리학자인 슈날(Simone Schnall)은 실험참가자들에게 높은 언덕에서 걸어 내려오게 했는데, 이때 한 그룹에는 ‘혼자서’ 내려오도록 했고, 다른 그룹에는 ‘친구와 함께’ 내려오도록 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도 어느 정도 예상하시지만, 언덕을 혼자서 내려온 참가자들보다 친구들과 함께 내려온 참가자들이 비탈진 언덕이지만 덜 위험하다고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외롭고 힘들 때 꼭 가족이나 친한 친구처럼 친밀한 관계만 도움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느슨한 관계’ 속에서 더 큰 위로와 공감을 얻을 때도 많습니다. 인간관계는 크게 ‘친밀한 관계’와 ‘느슨한 관계’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친밀한 관계는 말 그대로 가족이나 아주 친한 친구처럼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아주 끈끈하고 각별한 관계를 말합니다.
‘느슨한 관계’는 한마디로 같은 교회공동체 안에 속해있긴 하지만,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는 관계입니다. 예컨대 공적 예배 때 만나면 안부 인사 정도 하면서 교회 일로 가끔 만나거나 연락을 취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가끔 찾는 동네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느슨한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느슨한 관계’와 관련하여 이런 연구도 있습니다. 1973년 미국의 사회학자인 마크 그래노베터(Mark Granovetter) 교수의 논문인 ‘약한 연결의 힘’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현재의 직장을 얻게 된 계기를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그들은 ‘느슨한 관계’를 통해서 구직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좀 오래전에 연구한 것이긴 하지만요.
이유는 서로가 속해있는 관계망이 달라서 의외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라노베티 교수는 ‘친밀한 관계’에서는 얻기 어려운 뜻밖의 기회를 ‘느슨한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교회에서 발휘되는 ‘느슨한 관계’의 힘
그래노베터 교수의 연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느슨한 관계’의 힘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느 권사님은 함께 단기선교를 갔다 온 팀원들과 이따금 만난 지가 벌써 수년째 된다고 했습니다.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 알지는 못하지만, 함께 단기선교에 참여했다는 것이 공감대가 되어 한 번씩 만나면 친밀한 관계의 만남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는 좀 다른 에너지를 충전 받는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느슨한 관계가 힘을 발휘합니다. 연로하신 K 권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허리 수술을 받은 후에 같은 여전도회에 속한 B 권사님이 찰밥에 여러 가지 나물을 해오셨는데, 그렇게 맛있는 찰밥과 나물은 처음 먹어봤답니다. 그 후로도 B 권사님은 한 번씩 맛있는 음식을 해다 주신다며 고마워하십니다.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 S 집사님은 D 권사님이 자신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종종 전화하신다며 좋아하셨습니다. D 권사님은 주일날 광고시간에 알았다며 치료받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냐며 S 집사님을 따뜻하게 위로하시고 또 전화상으로 한 번씩 기도까지 해주신답니다.
바로 이런 것이 ‘느슨한 관계의 힘’입니다. 느슨한 관계에서 뜻밖의 기분 좋은 일들이 벌어지는 건 교회 성도들이야말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주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질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교우들에게는 물질을 나누고,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교우들에게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 그들과 함께합니다. 예컨대 구역 식구가 아프면 찾아가서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며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사별 가족이나 자녀 문제로 힘들어하는 성도가 있으면 찾아가 위로를 건네거나 기도로 돕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릴레이셔널 홈’이다
이처럼 교인들 대다수는 ‘느슨한 관계’ 안에 있지만, 외롭고 마음이 힘든 성도들에게는 ‘릴레이셔널 홈(relational home)’이 되어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심리학자인 스톨로로우(Stolorow)가 명명한 용어인 릴레이셔널 홈이란 ‘내 편이 되어서 내 이야기에 오롯이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해줄 수 있는 따뜻한 관계’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권사님은 치매 공공후견인으로 활동하시는데, 같은 교회 성도인 M 집사님이 치매 진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M 집사님의 사정을 잘 아는 자신이 그 집사님을 실질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치매 공공후견인에 지원한 겁니다. ‘후견인’이란 판단 능력을 상실한 경우 그를 대신할 특정인에게 법률적 행위와 권한이 주어진 사람을 말합니다.
현재 그 권사님은 M 집사님의 후견인으로서 집을 구해 이사하거나 병원에 입원할 때뿐만이 아니라 통장관리에서부터 요양보호사와 협력하는 일까지 필요한 일들을 적절하게 처리해주고 계시지요. 거기다 일주일에 한 번씩 M 집사님 댁을 방문하여 소소한 일상도 나누고 찬양도 함께 부르며 서로가 소박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릴레이셔널 홈’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상대방의 외롭고 절박한 마음에 공감하면서 들어줄 수 있는 관계입니다. 우리에게는 판단하지 않고 내 이야기에 오롯이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필요하죠. 정서적인 필요만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들이 필요하면 그것도 채워주고요.
토론토대학의 심리학자 첸보 종(Chen-Bo Zhong)은 연구를 통해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해 외롭게 느끼면 자기가 있는 공간의 온도마저 실제보다 더 낮게 느끼게 된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따뜻한 음료를 손으로 들고만 있어도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하죠. 이건 우리의 마음과 몸은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니까 외롭고 힘들다는 말에 공감만 해주어도 상대방은 외로움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몸까지 건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릴레이셔널 홈’이 되어준다면 외로움은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고 나아가 몸의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글=강현숙 작가, 치매돌봄 전문가, ‘오십의 마음 사전’(유노책주)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생명의말씀사) 저자
편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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