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불렀는데 "밥 먹다 체해서"…의원들 1년째 '묻지마 불출석'

정진우, 오욱진 2024. 11. 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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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 구속 상태로 재판중이던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는 지난 5월 보석으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됐다. 뉴스1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 살포 의혹’에 연루된 국회의원들이 1년 가까이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최재훈)는 지난해 말부터 돈봉투 살포·수수에 관여한 의원들에 대해 최소 5차례에 걸쳐 검찰청 출석을 요구해 왔다. 일부 의원은 검찰에 출석했지만 민주당의 김영호·민병덕·박성준·백혜련·전용기 의원과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 등 6명은 검찰 소환 요구에 ‘묻지마 불출석’으로 일관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소환에 불응하는 의원들에 대해 최후통첩을 날렸다. 늦어도 오는 13일까지 검찰청에 출석하라며 마지막 출석 요구서를 보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선거도 끝났고 국감도 다 마쳤으니 수사에 협조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지만 조사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소환통보를 받은 한 의원의 보좌관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 자체가 의심되는 상황이라 소환조사에 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의 경우 “출석을 한다면 다 같이 출석해 억울함을 소명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전원 불출석으로 대응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건강·선거·상임위…가지각색 불출석 사유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소속 국회의원 6명은 1년 가까이 검찰 소환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 6명 의원의 불출석 사유는 다양하다. 올해 초엔 대부분의 의원이 4·10 총선을 앞두고 선거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불출석했다. 당시 의원들이 소환 불응 사유로 총선을 앞세우자 검찰도 신중해졌다. 총선 시기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자칫 ‘정치 개입’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실제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난 1월 검찰의 출석 요구에 “총선이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계속 소환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선거를 앞둔 출석 요구는 정치 개입 아니냐”고 역정을 냈다고 한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검 관계자가 “(총선이 다가오면) 일방적인 수사절차를 진행하기 어렵다. 수사 대상 의원들에게 최대한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며 소환통보 자체를 조심스러워 한 것은 이같은 이유였다.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법정을 나서는 허종식 민주당 의원. 뉴스1

총선이 끝난 이후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평일엔 국회 일정이 빼곡하고, 주말엔 지역구 관리로 조사받을 시간이 없다” “상임위원회 회의 일정으로 검찰 조사를 조금 미루고 싶다” “식사를 하다 체해서 조사받기 힘들다” 등 여러 이유로 소환조사에 불응했다. 이후에도 출석 요구가 계속되자 의원 중 일부는 아예 검찰청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는 등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있었다.


국회의원 '방탄용' 된 불체포특권


검찰은 기소 후 효과적인 공소유지 등을 위해선 소환 대상 의원들의 진술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사실상 신속 수사를 포기하면서까지 소환 일정 조율에 공을 들였다. 문제는 의원들이 검찰의 출석 요구를 무시·불응하는 상황에 장기화함에도 이를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헌법(제44조 제1항)은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며 현역 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하는 일반적인 사건에서 피의자가 2~3회에 걸쳐 출석 요구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이 청구된다. 물론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청구할 수 있지만, 불체포특권에 따라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에 대한 표결 절차를 거쳐 가결될 경우에만 체포할 수 있다. 다만 검찰은 민주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6월 국회 본회의에서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 윤관석 의원과 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중앙포토

실제 지난해 6월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 검찰은 당시 윤관석·이성만 민주당 의원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지만 국회 본회의에선 이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불체포특권이 국회의원 개개인의 비위 혐의 수사를 가로막는 ‘방탄 특권’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윤관석 전 의원의 경우 지난달 31일 대법원에서 돈봉투 살포와 관련한 정당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 개인의 권한이 아닌 ‘국회 기능 보호’를 위한 국회의 권한인데 어느 순간부터 의혹에 연루되거나 범죄 혐의를 받는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사용되고 있다”며 “범죄 혐의가 상당 부분 드러난 상태에서 당 차원에서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는 등의 행태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지도부 차원서 "檢 소환 불응" 방침까지


차준홍 기자
소속 의원들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를 경우 당 차원에서 묻지마 불출석으로 일관하는 행태는 국민의힘 역시 마찬가지다.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 몸싸움 사건’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지도부가 “검찰 소환에 응하지 말라”는 방침을 정하고 수사 대상 의원들이 소환조사를 거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2019년 4월 당시 민주당이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을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조정) 안건으로 올리려고 시도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를 막아서는 과정에서 망치·소화기를 동원한 몸싸움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일이다.
2019년 4월 새벽 더불어민주당 당직자들이 패스트트랙 지정안건 제출을 위해 의안과 문을 해머로 부수며 진입을 시도하는 모습. 뉴스1

여야의 맞고발로 수사 대상 의원은 110명까지 늘었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검찰 조사에 불응했다. 2019년 10월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서울남부지검에 자진 출석하며 “패스트트랙에 의한 법안 상정은 불법이었고, 불법에 평화적 방법으로 저항한 것은 무죄”라며 “한국당은 소환에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시 출석 요구를 받았던 35명의 의원이 전원 검찰청에 출석해 조사를 마쳤다. 검찰 수사팀은 2020년 1월 “더는 불출석하는 상황을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며 여야 의원 28명과 보좌진·당직자 8명 등 37명을 재판에 넘겼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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