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인 척 방문해서 평가지 슥슥…셰프들 '계급장' 만드는 곳이 타이어 회사?
화제성만큼 공정성 시비도 시끌
넷플릭스 요리 경쟁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흥행으로 미식가들의 바이블로 통하는 미슐랭 가이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프로그램 심사위원이었던 미슐랭 3스타 안성재 셰프(모수 서울)가 참여하는 한 미식 행사는 1분 만에 예약이 매진되고, 다른 미슐랭 1스타 셰프들의 식당에도 손님이 미어터지고 있다. 미식가들의 바이블로 통하는 미슐랭 가이드,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미슐랭 가이드의 시작은 타이어 회사에서 발행한 여행안내 책자였다. 마시멜로 같은 통통한 모습의 캐릭터 '비벤덤'(Bibendum)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프랑스 기업 미쉐린 타이어다. 1900년대 초 미쉐린 타이어는 타이어를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지도와 타이어 교체 방법, 주유소, 호텔, 식당 등 여행 정보가 정리된 책자를 나눠줬다. 1926년부터 훌륭한 식당에 별점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1931년에는 1스타, 2스타, 3스타 등으로 평점을 나누는 현재의 미슐랭 가이드의 형태가 갖춰졌다. 미슐랭 가이드에는 식당을 소개하는 '미슐랭 레스토랑' 외에 호텔 등 숙박시설을 추천하는 '미슐랭 키'도 있다.
미슐랭 평가는 1936년 세워진 기준을 철저히 따른다. 별 1개는 '요리가 훌륭해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 별 2개는 '요리가 훌륭해 목적지와 떨어져 있더라도, 길을 돌아서서라도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가장 높은 등급인 별 3개 식당은 '요리가 매우 훌륭해 음식 맛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곳'을 의미한다. 신분을 숨긴 채 음식을 평가하는 '레스토랑 인스펙터'가 평가를 진행하며 기준은 총 다섯 가지다. ▲재료의 신선도와 품질 ▲풍미와 조리 기술의 완성도 ▲요리의 개성 ▲비용 대비 가치 ▲방문할 때마다 유지되는 일관성 등이다.
미슐랭의 별은 셰프들 간 일종의 '계급장'이 된다. 안 셰프는 흑백요리사 제작진과의 미팅에서 "내가 심사를 본다고 하면 토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의 자신감 배경에는 한국 유일의 미슐랭 3스타 셰프란 칭호가 있었다. 제작진 역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를 섭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현재 안 셰프의 '모수'가 잠정 휴업에 들어가면서 국내에는 미슐랭 3스타 식당이 한 곳도 없다. 미슐랭 서울 2025에서 2스타를 받은 식당은 ▲라연 ▲알라 ▲미토우 등이며,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김도윤 셰프의 윤서울, 조지프 리저우드 셰프의 에빗 등이 미슐랭 1스타를 받았다.
화제성만큼이나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음식에 대한 취향과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를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냐는 것이다. 또 미슐랭이 프랑스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한식·중식 등 다른 문화권 음식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미슐랭 별을 받은 뒤 비용 상승 등 리스크를 감당하지 못하고 폐업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별의 저주'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대니얼 샌즈 런던대 경영학과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미슐랭 별을 받으면 주목도가 높아지지만 그만큼 식당이 충족시켜야 하는 고객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비용 상승이 불가피해지면서 경영 구조가 취약해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도 1986년 2스타, 1993년 3스타 반열에 올랐음에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996년 부도를 냈다가 간신히 재기에 성공한 바 있다.
별을 유지하지 못하면 매출이 떨어지거나 평판이 좋지 못할 것이란 중압감도 크다. 2003년 프랑스의 베르나르 루아조 셰프는 3스타에서 2스타로 강등될 것이란 루머에 괴로워하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017년 프랑스의 세바스티앙 브라 셰프는 10년간 유지해온 3스타를 반납하면서 "미슐랭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할 수 있게 돼 마음 편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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