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먹이는 다마키' 日정국 '키맨' 됐다…여야 러브콜 받는 신동 [줌인 도쿄]
지난달 27일 치러진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여당이 과반수 확보해 실패하면서 정국의 '키맨'으로 급부상한 정치인이 있습니다. 바로 제3야당인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郎・55) 대표 이야기입니다.
다마키 대표와 국민민주당은 자민당과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양측으로부터 열렬한 러브콜을 받고 있는데요. 오는 11일로 예정된 총리 지명 선거에서 자민당 총재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 입헌민주당을 이끄는 노다 요시히코(野田 佳彦) 전 총리 중 누가 승리할지 '캐스팅보트'를 국민민주당이 쥐고 있기 때문이죠.
양쪽 모두 승리를 위해선 총선에서 의석을 4배(7→28석)나 늘린 국민민주당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거든요. 한국 독자에겐 다소 생소한 다마키 대표는 어떤 인물일까요.
엘리트 관료가 정치인이 된 까닭
다마키 대표는 일본 광역지자체(도·도·부·현) 중 가장 면적이 작은 가가와(香川) 현의 농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지역에선 워낙 공부를 잘해서 ‘신동(神童)’으로 유명했다고 전해집니다. 일본 문과 최고 명문인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후 대장성(현 재무성)에 입성한 엘리트 관료 출신이죠.
그가 정치권 진출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1998년 불거진 대장성 비리 사건이었다고 해요. 엘리트 관료들이 은행원으로부터 접대를 받으면서 은행 감사 일정 등을 유출한 게 문제가 됐습니다.
특히 접대 장소가 여성이 속옷을 입지 않는 등 '부적절한 음식점'이었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결국 장관이 사퇴할 정도로 파장이 컸던 대형 스캔들이었어요. 다마키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주의 절차를 거쳐 국민의 위임을 직접 받은 정치인이 국정을 책임져야 한다 생각했다”고 밝힌 적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대장성은 재무성으로 명칭이 바뀌고 일부 업무와 권한도 분리됐죠. 그럼에도 국가 예산을 쥐고 있는 '파워 부처'인 만큼 스캔들 이후에도 정치권과 가까울 수밖에 없었고, '에이스'는 정부의 중추에 배치되곤 했습니다.
다마키도 그런 에이스 중 한 명으로, 2002년부터 3년간 행정개혁담당상 비서관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행정개혁담당상으로부터 정계 진출을 권유받아 자민당 본부를 방문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자민당 간사장과 면담했다고 해요. 하지만 아베가 제안한 지역구는 고향인 가가와가 아니었기 때문에 출마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마키의 첫 출마는 2005년입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당시 총리가 국회를 전격 해산하자 그는 야당인 민주당 후보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자민당원이었던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보수 양당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고향 가가와에서 출마했다고 해요. 야당 후보가 됐지만 당시 비서관으로 모시던 무라카미 세이치로(村上誠一郎) 현 총무상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며 격려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면서 다마키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오히라 총리의 계승"…지역구 6선 의원
다음 도전을 준비하면서 그는 고향 선배이자 먼 친척인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1910~1980) 전 총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오히라 전 총리는 자민당의 명문 파벌인 고치카이(宏池会)를 이끌다 과로 등으로 총리 재임 당시 세상을 떠난 인물이죠.
오히라 전 총리는 ‘타원의 철학’으로 유명합니다. 타원형처럼 두 중심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가 정치·행정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이에 오히라 가문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결국 다마키는 2009년 선거에서 첫 당선했습니다.
이후 자민당이 압승하는 선거가 이어졌지만, 그는 야당에선 드물게 6선 연속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의원직을 지켰습니다. 현재 지역구에서 ‘다마키당’으로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요.
다마키 대표를 초선 시절부터 알고 지낸 한 전직 국회의원은 그에 대해 “오히라 전 총리의 정신을 계승한 중도 보수 정치인이다. (정치적인 색채는)한국이 걱정할만한 것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전하더군요.
‘우는 다마키’ 별명도
다마키는 2016년 민주당의 후신인 민진당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부터 주목받게 됐습니다. 당시 47세, 3선 의원에 불과한 그는 쓰라린 경험을 합니다. 대표 선거 토론회에서 경쟁자인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외무상이 민주당 집권 당시의 실패에 고개를 숙여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다마키는 “(마에하라 전 외무상이) 사과를 하지 안 했으면 좋겠다. 하네다 공항의 국제화나 (외국인) 비자 취득 완화는 모두 그의 공이다”라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 모습이 어쩌나 절절했는 지 곁에 있던 경쟁자인 렌호(蓮舫) 의원으로부터 “남자라면 울지 말라”는 격려(?)를 받을 정도였어요. 이 장면이 TV 등에 반복적으로 보도되면서 그에겐 ‘울먹이는 다마키’라는 별명이 붙었답니다. 결국 당대표 선거에선 렌호가 이기고 다마키는 후보 3인중 최하위에 그쳤습니다.
다마키는 이듬해인 2017년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와 함께 '희망의 당'의 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이 당은 단명했고, 야권이 탈당과 합당을 반복하는 와중에 2020년 국민민주당의 대표로 취임했죠. 당 대표 취임 직전 옛 국민민주당 소속이던 의원 중 다수가 입헌민주당에 합류하면서 다마키는 군소야당의 대표로 별 존재감 없이 지내왔습니다.
'대결보다 해결'…정부 예산안 찬성도
다마키가 다시 주목받은 건 2022년 야당으로선 이례적으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부의 예산안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기시다 당시 총리가 휘발유세의 한시적인 인하를 검토한 것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다마키의 일관된 슬로건은 ‘대결보다 해결’입니다. 여당과 전면 대결을 위해 공산당과 손을 잡은 입헌민주당과는 거리를 두는 한편, 여당에 대해서도 협력할 수 있는 건 협력하겠다는 자세로 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원전 재가동, 안보 관련 정책, 헌법 개정 등에 대한 다마키 대표의 입장은 자민당의 노선과 비교적 가까운 편입니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몇 년 전부터 ‘자민·공명·국민 3당 연립여당’이 구성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다마키 대표는 현재로썬 연립 참여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전직 국회의원은 “내년 여름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 이후 국민민주당이 연립여당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보더군요.
다만 일본 정계에선 의리와 인간미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다마키 대표는 이런 점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도 있어요. 실제로 총선 직후 노다 입헌민주당 대표 측이 회담을 요청했는데, 다마키 대표는 바로는 응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이제 만나주기로 했습니다. 한때 같은 당 소속이었던 대선배의 요청인데 이런 태도는 심하지 않냐는 말도 나옵니다. 입헌민주당 관계자는 “다마키는 이럴 때 낮은 자세로 임하지 못한다”고 불쾌감을 드러내더군요. 총선 이후 존재감이 커진 다마키 대표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합니다.
도쿄=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onuki.tomok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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