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문화] 소프라노 임세경 “나비부인 200번 넘게 했지만 매번 어려워요”
연말 ‘나비부인’, ‘서부의 아가씨’ 출연
드라마티코로 변화…투란도트 도전할 것
성악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음역에 따라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알토로 나뉜다. 가장 높은 음역의 소프라노는 오페라의 여주인공을 독점하다시피 한다. 그런데, 소프라노는 다시 음색에 따라 레제로-리리코-스핀토-드라마티코로 나뉘며 각각 맞는 역할이 있다. 다만 평생 같은 음색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소리가 무거워지고 깊이가 생기기 때문에 레퍼토리를 옮겨간다.
이 가운데 스핀토 소프라노 또는 리리코 스핀토 소프라노는 리리코의 따뜻하고 서정적 소리를 내면서도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에서 차갑고 강인한 소리를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핀토(spinto)는 이탈리아어로 ‘찌르다’ ‘밀어붙이다’는 뜻이다. 리리코 스핀토 소프라노에 어울리는 배역으로는 베르디 ‘아이다’의 아이다와 ‘일 트로바토레’의 레오노라, 푸치니 ‘나비부인’의 초초와 ‘토스카’의 토스카,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의 막달레나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한국 오페라계에서 리리코 스핀토 소프라노로 임세경이 첫손에 꼽힌다. 한양대를 거쳐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과 라 스칼라 극장 아카데미(솔리스트 전문 연주자 과정)을 마친 임세경은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메이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에서 ‘나비부인’과 세계 최대 오페라축제인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의 ‘아이다’의 타이틀롤을 맡으며 국내 오페라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나비부인’과 ‘아이다’는 그가 지금까지 200회와 100회 이상 출연한 대표 레퍼토리다. 그는 또 2017년엔 동양인 소프라노 최초로 빈 슈타츠오퍼의 ‘토스카’의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2020년 중앙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 그는 국내 오페라계의 캐스팅 영순위다. 덕분에 해외 무대에 서는 방학을 빼고 연간 5~6편의 국내 오페라 무대에 서고 있다. 올해도 5월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안드레아 셰니에’, 6월 대한민국오페라축제에서 누오바오페라단의 ‘나비부인’, 9월 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에 출연한 데 이어 11월 8~10일 글로리아 오페라단의 ‘나비부인’, 12월 5~8일 국립오페라단의 ‘서부의 아가씨’ 출연이 예정돼 있다. 임세경을 만나 푸치니 100주년이었던 올해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연을 앞둔 ‘나비부인’과 관련해 “이제 눈 감고도 하는 것 아니냐” 질문에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나비부인’을 많이 했지만 새로운 프로덕션에 출연할 때마다 악보를 사요. 공연을 준비하며 악보에 메모를 하는데, 제가 음악적으로나 연기적으로나 계속 성숙해지는 것에 맞춰 매번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서에요. 게다가 지휘자와 연출가에 따라 요구하는 게 다르기도 하고요.”
‘나비부인’은 미군 장교 핑커톤과 결혼한 열다섯 살의 게이샤 초초가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다가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다. 일본이 배경인 만큼 아시아 소프라노들이 해외에서 가장 많이 캐스팅되는 역할이다. 하지만 초초만큼 어려운 역할도 없다는 게 임세경의 생각이다.
“‘나비부인’에는 2명의 소프라노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1막에선 만지면 깨질 것 같은 소녀를 표현해야 하고, 2·3막에선 격렬한 감정 변화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 2·3막에 어울리는 목소리에요. 할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1막은 연륜에 따른 경험으로 연기합니다. 그런데, 1막에 맞는 목소리로 2·3막을 연기하면 안 되는 것이 목에 무리가 심하게 가거든요.”
친숙한 ‘나비부인’과 달리 ‘서부의 아가씨’는 임세경에게 첫 무대다. ‘서부의 아가씨’는 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 탄광촌을 배경으로 이민자들의 애환을 그렸다. 푸치니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음악 어법을 도입했다. 임세경이 맡은 여주인공 미니는 거친 광부들을 통솔하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선 모든 것을 바치는 인물이다. 소프라노 가운데 가장 무거운 소리를 내는 드라마티코 소프라노에 어울리는 캐릭터다. 미니 외에 오페라 ‘맥베스’의 레이디 맥베스, ‘나부코’의 아비가일레, ‘투란도트’의 투란도트, ‘노르마’의 노르마 등 카리스마로 극을 이끄는 여주인공이 드라마티코 소프라노를 대표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드라마티코 소프라노가 젊은 시절 스핀토 소프라노를 거쳤다.
“제 목소리가 리리코 스핀토에서 드라마티코로 옮겨가는 중이에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맥베스’와 ‘나부코’ 같은 작품에도 출연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거절했던 투란도트와 노르마 같은 역할도 이제는 조금씩 도전하려고 합니다. 레퍼토리 선정에 너무 신중하다는 말을 듣곤 하지만 무대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필요하고요.”
푸치니 100주년인 올해 그가 국내에서 캐스팅된 작품들은 ‘안드레아 셰니에’를 빼고는 모두 푸치니다. 올해만이 아니라 그동안 푸치니의 작품에 많이 출연했던 터라 그에게 가장 친숙한 작곡가일 것 같다. 하지만 “베르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베르디아나’(베르디 오페라를 잘 부르는 여성 성악가)라고 생각해요. 목소리나 발성 모두 베르디 작품일 때가 더 편해요. 수학처럼 확실한 테크닉을 요구하는 베르디의 아리아가 제게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동안 푸치니보다 베르디의 작품을 더 많이 하기도 했고요.”
한편 올해 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는 그에게 아쉬움과 속상함으로 남았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열연을 펼치고도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토스카 역으로 더블캐스팅된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상대 테너의 공연 중 앙코르에 불만을 표하며 무대에 난입하는 바람에 논란만 부각된 탓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빈 슈타츠오퍼의 ‘토스카’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8개 공연이 취소됐어요. 그때 중앙대 교수가 되면서 한국에 정착하게 됐는데요. 당시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다가 11월 서울시오페라단 ‘토스카’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공연이 올라가긴 했지만 코로나로 이것저것 조심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다시 서울시오페라단 ‘토스카’에 출연하게 됐을 때 제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공연을 본 분들은 다들 칭찬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앙코르 소동 때문에 모든 게 묻히는 바람에 많이 아쉬웠어요.”
당시 논란을 촉발시킨 ‘비스’, 즉 오페라 공연중 앙코르에 대한 임세경의 생각이 궁금했다. 게오르규같은 극심한 반대파도 있지만 스타 성악가들이 공연중 앙코르 요청에 따라 다시 노래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는 “아레나 디 베로나처럼 이벤트성이 강한 야외 오페라에서 비스는 괜찮다고 본다. 워낙 규모가 커서 작품을 섬세하게 보여줄 수 없는 데다 관객들 역시 재미를 기대하기도 한다”면서도 “하지만 실내 오페라극장에서는 제작진이나 출연진 그리고 관객 모두 집중해서 공연을 끌고 간다. 그것을 깨뜨리는 비스는 반대”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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