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차별하고 혐오하지 않습니다”

임보혁 2024. 11. 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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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방파제’ vs 혐오의 장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에 참석한 행렬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광장 인근 도로를 메운 모습. 1974년 8월 13일 같은 곳에선 한국교회 역사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부흥 대성회 ‘엑스플로74’ 대회가 열렸다. 당시 많은 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민족 복음화를 놓고 기도했다. 국민일보DB


“‘성 오염 물결’에 맞서 ‘거룩한 방파제’ 세운 한국교회”, “회개 대신 혐오·정죄 가득했던 10·27 집회”.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일대에서 열린 대규모 기도집회,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를 평가한 교계의 상반된 시각이다.

집회 주최 측은 동성애를 무조건 받아들이게 할 악법이 제정되지 않도록, 문란한 성 문화가 만연하는 세태에 맞서 한국교회가 먼저 회개하고 기도하자는 취지로 집회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종교개혁 주일을 즈음해 열린 이번 집회에 한국교회의 반성과 회개의 목소리는 없고 동성애자를 향한 혐오와 정죄만 가득했다고 비난했다. 이번 집회를 계기로 한국교회가 하나 되자는 본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더 양극단으로 나뉜 듯해 씁쓸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차별·혐오주의자로 낙인찍혔다. 성혁명 세력이라 불리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에서 나아가 조장하는 이들이 씌운 프레임에 걸려든 느낌이다. 동성애자를 혐오·차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 행위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는 듯하다. 그래서 무엇보다 이번 집회가 중요했다. 부정적 프레임을 거둬내고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자리가 돼야 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만 거둔 듯하다.

현장에서 본 이번 집회는 혐오나 정죄가 주된 관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색을 배제하고 순수한 신앙으로 나라의 미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자 모인 기독교 소시민들의 회합이었다. 다만 일각의 비판처럼 동성애 범람에 관한 과한 두려움으로 문제점을 알리기에만 급급한 채 동성애자를 어떻게 품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쉽다.

성별·인종과 달리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동성애 유전자는 없다. 성경에 입각한 신념을 지닌 크리스천은 동성애를 ‘선택’의 영역이라 여긴다. 타고난 것이 아닌 선택 가능한 행위에 대한 비판은 신념의 차이로 봐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따르는 크리스천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건 동성애가 ‘개인이 선택한 반성경적 행위’이기 때문이지 동성애자를 혐오하거나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자에게 축복기도 해주는 일을 생각해본다. 이 문제의 본질은 예수님조차도 사랑 안에서 훈계하신 동성애자를 무조건 옹호·인정하는 걸 성경이 말하는 포용이라고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일부 목회자나 신학자들의 행태에 있다. 축복은 철저히 하나님의 영역이다. 인간은 그저 상대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길,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복을 빌고 그의 뜻을 구할 뿐이다.

일반성도라면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소외당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도 충분할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목회자라면 과연 성경이 말하는 포용은 무엇일지 끊임없이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자기 의에 갇혀선 안 된다는 의미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도, 그렇다고 그들의 행위가 옳다고 비는 축복도 하나님 뜻이 아니다. 양극단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개와 포용의 자리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집회 이전에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이들과 소통해봤는지 양쪽 모두에게 묻고 싶다. 말로만 비판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소통의 자리로 나와 연대를 모색해야 했다. 말이 안 통하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지녔다며 상대와 자기 사이를 선 긋고 뒤에서 집회를 비판만 하는 것이 과연 생산적일까. 그 또한 성경의 가르침은 아닐 테다. 포용을 외치지만 정작 자기 생각과 다른 이들을 포용할 생각이 없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는 아닐까. 정죄를 일삼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착각하는 율법주의자이든, 성경이 말하는 포용을 멋대로 해석하는 만용의 퀴어신학주의자이든 모두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르다.

집회 주최 측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며 이번 집회로 조성된 약 200억원의 후원금을 자립준비 청년, 탈북민, 미혼모 돌봄 단체 등을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끝까지 사회 약자를 품겠다는 한국교회의 마음이 모인 돈이다.

축제는 끝났다. 이번 집회에 본의 아니게 폭력적인 면은 없었는지, 정죄·위선, 혐오를 자신도 모르게 드러낸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507년 전 종교개혁자들이 외친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회개, 교회 자정과 갱신을 위한 참회의 기도가 이어질 때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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