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첫 국감 뭘 남겼나… ‘최다’ 속출했지만 ‘최악’으로 끝났다
1일 막을 내린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김건희 리스크’와 ‘이재명 리스크’를 두고 여야가 격돌하는 난타전으로 전개되면서 ‘행정부 견제·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국감에서는 현직 대통령 부인에 대한 동행명령장이 사상 최초로 발부됐을 뿐 아니라 국감에 출석한 증인에 대한 동행명령장 발부 건수 역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대여 공세를 목적으로 한 일반증인 신청이 늘면서 채택된 증인 숫자도 역대급이었다는 평가다. 반면 국감장에 나와 하루 종일 대기하면서 질문 한 번 받지 못한 피감기관 숫자가 본 국감 기감만 해도 200곳이 넘었다.
이번 국감이 ‘정쟁 국감’이었다는 점은 각종 수치로도 드러난다. 지난 25일까지 불출석한 증인에 대한 동행명령장은 모두 27건이 발부돼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지난 21대 국회 4년간 동행명령장 발부 수는 14건에 불과했고, 20대(2건)와 19대(0건)에선 동행명령 제도가 사실상 활용되지 않았다. 이번 한 번의 국감에서만 지난 12년간의 동행명령장을 합한 것보다 많은 숫자가 발부된 것이다.
지난 21일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서는 대통령 부인에 대한 동행명령장도 발부됐다. 야당 법사위원들은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까지 찾아가 집행을 시도했지만, 경찰과 대통령 경호처 관계자들에 막혀 전달하지 못했다. 여당은 “전례없는 망신주기용”이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여야가 ‘정쟁용’ 일반증인을 대거 채택하면서 동행명령장 발부 건수도 급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민단체 ‘국정감사NGO모니터단’ 등에 따르면 이번 국감에서 채택된 일반증인 숫자는 510명에 이른다. 4년 전인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200명에 불과했던 증인 숫자가 2.5배나 증가한 것이다.
특히 상임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고 여야 대치 이슈가 많은 상임위에서 일반증인 채택이 대폭 늘었다. 이 중에서도 김건희 여사 의혹 관련 증인들이 대다수였다. 법사위는 올해 김 여사와 모친 최은순씨,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와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등 85명을 채택했다. 지난해 일반증인 숫자는 6명에 그쳤고, 2022년엔 아예 없었다.
국회 운영위원회도 김 여사와 친오빠 김진우씨, 명씨, 김 전 의원, 김 전 의원 회계책임자였던 강혜경씨 등 30명을 불렀다. 운영위는 지난 2년간 일반증인을 한 명도 채택하지 않은 상임위다.
이러다보니 행정부 피감기관 증인인 ‘기관증인’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이번 국감의 피감기관 수는 역대 최다인 802개에 달했다. 그런데 일반증인들에게 질문이 쏠리다보니 일반국감 기간 온종일 질문 한 번 못 받고 돌아간 피감기관이 630개(외통위 재외공관 제외) 중 209곳(33.2%)에 달했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뒤에도 불출석 및 위증 증인들을 고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증인들을 상대로 한 고발 건수도 역대급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24일 “김 여사와 연루된 많은 증인이 불출석했다”며 “고발되는 인사들이 최대치에 이르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기승전 ‘김건희’ 양상으로 진행된 이번 국감에선 욕설과 막말 논란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지난 24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는 방송문화진흥회의 한 직원이 갑자기 쓰러진 뒤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XX 사람을 죽이네, 죽여”라고 비속어를 사용했고, 이에 김우영 민주당 의원이 “인마” “저 자식” 등의 발언으로 대응하며 파행을 겪었다.
지난 10일 양문석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청와대에서 열렸던 국악인 가야금 연주회를 거론하며 “기생집으로 만들어 놨나. 대통령 부인이 왔다고 공연 상납한 것 아닌가”라고 발언했다가 국악인들이 반발을 사기도 했다.
기관장이나 증인들의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8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군인이 할 얘기 못 하고 가만히 있는 건 더 병X”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연이은 중대재해로 지난 15일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장에 불려나온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은 증인석에 앉아 가수 뉴진스 멤버 하니와 웃으며 셀카를 찍는 모습이 포착돼 의원들이 질타를 받고 사과문까지 올려야 했다.
일부 상임위원장들의 과도한 발언 시간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의원 평균 질의 시간의 4배 이상을 발언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지난 7일 방통위 다른 의원들 평균 질의 시간의 5.44배인 2시간7초를 발언했는데, 이는 상임위 전체 발언의 19.89%를 차지한 것이었다.
여야가 국감 내내 충돌했음에도 국면을 전환시킬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는 평가다. 김 여사 ‘공천개입 의혹’ 제보자인 강혜경씨가 국감장에 출석해 주목받았지만, 강씨의 진술은 대부분 명씨 발언을 전달하는 수준이라 파장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이번 국감에 ‘D-’의 성적을 매겼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국감은 알맹이 없는 최악”이라고 평가하면서 “대선이 다가와 여당이 더욱 분화하고 이재명 대표 재판 결과가 더 나와 있을 내년 국감은 문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의원 한 명 한 명이 지금의 행태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국감 무용론’ 해소는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모든 사안이 김 여사와 명씨 등 정쟁 이슈로만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면서 ‘정책 국감’이 아닌 ‘정쟁 국감’으로 진행됐다”며 “문제를 지적받아야 할 피감기관이 시간 때우며 앉아만 있다가 돌아가는 식의 국감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해”라고 비판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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