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관심을 끌고 싶다면 루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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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의 대척점에 섰던 이른바 '가톨릭 논쟁자' 진영이 1518~1524년 발표한 독일어 저작은 40% 수준이었지만 비슷한 시기 루터의 글은 그 비율이 80%에 달했다.
교육 수준 낮은 '평민'을 상대로 팸플릿이나 찍어낸다는 비아냥거림이 이어졌지만 루터는 단호했다.
루터가 벌인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그가 성경 말씀을 벽돌로 삼아 쌓아올린 새로운 신학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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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알려졌다시피 루터가 활동한 16세기는 필사본의 시대가 저물고 인쇄술의 시대가 시작되던 때였다. 루터는 이 최첨단 기술을 종교개혁의 끌차로 삼았는데 여기에서 핵심은 그가 취한 전략이었다. 루터는 얇고 저렴한 팸플릿에 주목했다. 김선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최근 발표한 한 논문에서 루터의 팸플릿 전략을 상세히 분석해놨는데 그 내용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루터는 근사한 팸플릿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싼 가격에 많은 양을 빨리 찍어내는 데 집중했다. 장황한 해설은 배제했으며 반복 표현은 지양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새로운 언어’를 고민했다.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를 적극 사용한 것도 주효했다. 그의 대척점에 섰던 이른바 ‘가톨릭 논쟁자’ 진영이 1518~1524년 발표한 독일어 저작은 40% 수준이었지만 비슷한 시기 루터의 글은 그 비율이 80%에 달했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평신도의 참여가, 즉 대중이 가담하는 신학 논쟁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당대에 비웃는 이도 많았다. 교육 수준 낮은 ‘평민’을 상대로 팸플릿이나 찍어낸다는 비아냥거림이 이어졌지만 루터는 단호했다. “저는 저들이 내놓는 그런 유의 두꺼운 책을 쓰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소논문을 쓰는 것보다 더 쉽게 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교육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 독일어로 설교하고 글 쓰는 일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낮고 깊은 곳으로 내려간 루터의 전략은 적중했다. 교회를 변화시켰고 세상을 바꾸어놓았다. 이런 평가도 있다. 루터는 최초의 독일어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서구 역사에 처음 등장한 위대한 저널리스트였다고. 루터가 벌인 치열한 팸플릿 전쟁의 기승전결이 담긴 논문을 읽는 내내 자연스럽게 한국교회의 다양한 활동을 떠올려보곤 했다. 올가을 국내에서는 세계 교회와 함께하는 국제적인 이벤트가 이어졌다. 성도 100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도 있었다. 한데 이들 행사에 한국교회의 둘레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얼마 전 종합일간지 종교 담당 기자들이 모인 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는 이런 질문들도 나왔다.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 한국교회 행사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여겨지는데 이런 의견에 동의하느냐” “교회가 할 게 없으니까 억지로 뭔가를 계속 만드는 느낌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교회 부흥은 이제 불가능한 일 아닌가”….
2006년 호주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시드니의 정치인들은 청소년들이 쇼핑센터 등지에 어슬렁대는 꼴이 보기 싫었고 그들을 공공장소에서 몰아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10대들이 싫어하는 미국 팝스타 배리 매닐로의 음악을 떠올렸다. 그들에게 매닐로의 노래는 ‘꼰대의 음악’이었다. 정치인들은 공공장소에 그의 노래를 틀어대기 시작했고 10대들은 자취를 감췄다. 그 효과가 탁월해 학계에서는 ‘매닐로 방법’이라는 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어쩌면 지금 한국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도 어떤 이들에겐 시드니 청소년들이 질색한 매닐로의 노래처럼 들릴 것이다. 낡고 촌스러운, 때로는 귀를 틀어막고 싶은 소리로.
다시 루터의 이야기를 다룬 논문으로 돌아가 보자. 루터가 벌인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그가 성경 말씀을 벽돌로 삼아 쌓아올린 새로운 신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메시지만으로 변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루터는 알고 있었다. 논문에는 “메시지와 미디어가 시너지 효과를 내며 루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견인한 셈”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루터는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적의 문체와 형식을 채택했다. 루터는 교회의 권위에 걸맞다고 여겨진 글쓰기를 대중에게 적합한 글쓰기로 바꾸어 놓았다.”
박지훈 미션탐사부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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