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덮치기 직전, 쇠줄 묶인 마당개 찾아온 기적 [개st하우스]
“폭우로 불어난 하천이 마을을 덮쳤는데 순둥이는 흙탕물이 차오르는 마당에 홀로 묶여있더라고요. 목줄이라도 좀 풀어주고 가지. 그 와중에도 저를 보고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더군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이 났을 거예요. 녀석을 차 조수석에 태우고 서둘러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홍수, 화재 등 재난에 취약한 건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같은 약자들입니다. 거동이 어렵고 정보가 부족해 탈출 기회를 놓치고 결국 더 큰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리고 동물들이 있습니다. 목줄에 묶이고 축사에 갇힌 동물들은 꼼짝없이 재난에 휩쓸립니다. 여의도 6배에 달하는 산림이 불타고 주민 4000명이 대피한 2019년 강원 고성 산불 때도 그랬습니다. 가축 약 4만3000마리가 폐사하거나 상해를 입었는데 그 중에는 마당개들도 있었어요. 줄에 묶여 산 채로 불탄 마당개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끔찍한 장면은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이번 사연의 주인공 마당개 순둥이도 재난의 희생양이 될 뻔했습니다. 지난여름, 폭우로 경기도 화성의 하천들이 범람했습니다. 넘친 강물에 도로와 터널이 잠기고, 흙탕물이 마을을 집어삼켰죠. 불어난 물은 순둥이가 묶여있던 가난한 컨테이너 집까지 위협했습니다. 뒷걸음질을 쳐도 도망갈 곳은 없었습니다. 2m 쇠줄이 목을 죄고 있었거든요. 강물은 어느새 녀석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꼼짝없이 불어난 물에 삼켜지는가 싶던 그때, 순둥이에게 기적이 찾아옵니다. 이예나(41)씨입니다. 예나씨는 견주 방치로 굶주리던 순둥이를 챙겨주던 봉사자입니다. 이날 새벽 재난문자에 눈을 뜬 그는 아무래도 순둥이가 마음에 걸려 쏟아지는 비를 뚫고 순둥이를 구하러 온 겁니다.
당시 영상을 보면 예나씨는 차량 조수석에 순둥이를 태우고 이미 흙탕물에 잠긴 마을을 황급히 빠져나옵니다. 그는 “위기에 처한 동물을 목격하면 누구든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거다. 힘겹게 구조한 만큼 순둥이에게 좋은 가족을 찾아주고 싶다”며 지난 3개월간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제보자 예나씨는 경기도 화성에 거주하는 직장인입니다. 쉬는 날이면 중고거래 앱에 게시된 동네 주민들의 소식을 둘러보곤 하는데요. 지난 6월, 짧은 쇠줄에 묶여 사는 마당개 순둥이의 소식을 발견합니다.
순둥이는 1살로 추정되는 어린 백구인데, 견주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었습니다. 마을 강가에 덩그러니 놓인 녹슨 컨테이너. 마당개 순둥이와 50대 견주가 사는 집입니다. 주인이 돌보지 않아 순둥이는 온몸에 진드기가 득실대고, 밥그릇에는 늘 푸른곰팡이와 이끼가 가득했습니다.
가엾은 백구를 돌볼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예나씨는 차로 20분이 걸리는 순둥이네 집까지 찾아갔습니다. 사실 예나씨는 개를 키운 경험이 없었어요. 하지만 곰팡이 핀 더러운 밥그릇을 핥으면서도 꼬리를 흔들며 사람을 반기는 순둥이 모습은 예나씨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 뒤로 예나씨는 견주의 허락을 얻어 순둥이에게 매일 사료와 물을 챙겨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일쯤 흐른 어느날. 매서운 여름 폭우가 찾아옵니다.
지난 7월 18일 새벽, 갑작스러운 비로 강물이 범람하기 시작합니다. 마을로 진입하는 터널은 전면 통제되고 비닐하우스는 온통 물바다가 됐죠. 불어난 물은 도로를 따라 마을로 흘러들어 순둥이네 컨테이너로 향했습니다. 그날도 마당에 묶여있던 가엾은 순둥이. 2m 쇠줄을 당기며 마당을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범람한 강물에 꼼짝없이 휩쓸릴 상황입니다.
위기의 순간, 순둥이를 위해 달려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보자 예나씨입니다. 예나씨는 “폭우를 주의하라는 재난문자를 받자마자 잠에서 깼고, 그 순간 가엾은 순둥이 얼굴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마당에 방치된 개이니 꼼짝없이 물에 휩쓸려갈 거라고 걱정한 거죠. 물이 불어나는 마을로 들어가는 게 현명한 결정인지 고민할 틈도 없었습니다.
예나씨는 아직 잠기지 않은 도로를 따라 순둥이가 묶인 곳까지 차를 몰아 달려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범람한 강물은 순둥이가 묶인 둔덕 앞까지 들어차 있었습니다. 예나씨는 “물난리 와중에도 순둥이는 저를 보고 반가워 꼬리를 흔들었다”면서 “녀석을 조수석에 태우고 도망치듯 마을을 빠져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다급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보 영상 속 녀석은 해맑은 표정으로 창 밖의 수해 현장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음날 폭우가 그치고 마을을 휩쓴 강물이 빠졌습니다. 이제 순둥이는 견주 품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예나씨는 집에서 하룻밤을 돌본 뒤 순둥이를 견주에게 데려갔는데, 견주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예나씨는 “견주가 순둥이를 거부하면서 개장수에게 팔겠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그날 순둥이를 데려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예나씨는 엉겁결에 순둥이를 구조하게 됩니다.
방치된 마당개를 구조해 가정견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순둥이의 경우 소유권 갈등을 해소해 구조하는데는 성공했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질병을 찾아 치료하고 문제행동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수개월 동안 안정적으로 돌볼 임시보호자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죠. 게다가 순둥이는, 사나울 거라는 편견이 강한 진도 믹스견인데다 마당에 묶인 방치견이었던 탓에 2주간 맡길 애견호텔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무려 20여 곳에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듬직한 임시보호자를 만났습니다. 순둥이의 딱한 사연을 듣고 입양이 확정될 때까지 돌봐주겠다는 봉사자를 찾은 것이죠. 지난 8월, 순둥이는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임시보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반려견과의 경험이 풍부했던 임보자는 순둥이의 사회화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임보 2개월 만에 순둥이는 “앉아” “기다려” 등 명령을 따르고 배변패드 사용법도 익혔습니다. 중성화와 예방접종도 마친 상태입니다.
지난달 23일 개st하우스팀은 서울 송파구에서 순둥이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순둥이의 입양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4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순둥이는 실내에서는 의젓했지만 행인이 많고 소음이 큰 실외에서는 당황한 모습이었습니다. 산책 때도 인솔자를 끌고 가고 수시로 뒷발질을 하더군요.
미애쌤은 “산책할 때 개에게 끌려가선 안된다”면서 “인솔자가 주도하고 개는 따라오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진단했습니다. 먼저 미애쌤은 콜링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름을 불러 개가 다가오면 간식을 주며 집중력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1시간 반복하자 순둥이가 시선을 인솔자에게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미애쌤은 방향 전환을 가르쳤습니다. 인솔자는 개가 줄을 당기면 멈췄다가 다시 인솔자가 향하는 방향으로 개가 따라오면 보상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30분간 반복하자 순둥이는 인솔자의 방향과 속도에 맞춰 걷기 시작했습니다. 미애쌤은 “보통 마당개들은 산책 교육이 힘든데 순둥이는 빠르게 습득한 편”이라며 “보호자에게 집중하는 산책 습관을 기르면 입양을 가는데 문제가 없을 걸로 보인다”고 총평했습니다.
홍수가 난 마을에서 기적을 선물받은 마당개, 순둥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진도 믹스, 1살
-12.5kg, 중성화 수컷
-분리불안 없고 실외 배변 중
-영리해서 교육을 잘 받아들임. 목욕, 동물병원 진료를 얌전히 받음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TlLB41-0Kb6z6NRRLYzZxeDZ54wgImrTHQGsVbTSNu2TF1w/viewform
■순둥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46번째 견공입니다 (106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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