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만은 피하길 바랐던 대기업病 [취재수첩]
삼전만은 피하길 바랐던 대기업病 [취재수첩]
‘다음(daum) 대기업병 걸렸나.’
딱 20년 전인 2004년, 현재 카카오로 합병된 ‘다음’을 취재하며 이 같은 제목의 기사를 냈다. 미니홈피와 블로그 등이 인터넷을 휩쓸고 있는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다음은 회원 3800만명, 카페 수 490만개로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 소셜네트워크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미니홈피는 싸이월드에서 밀렸고, 검색은 네이버를 넘볼 수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당시 언급된 증상은 경직된 조직문화였다. 소통이 사라지고 빠르게 관료화됐다. 겹겹이 쌓인 결재에 의사 결정은 느려지고 신규 서비스 개발에 뒤처졌다. 벤처정신을 잃었다는 자성도 쏟아졌다. 당시 한 팀장은 인터뷰에서 “예전 같은 도전정신은 없고 다들 타성에 젖어 같이 일하고 싶은 부하 직원이 없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를 두고 말이 많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내다보지 못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에서 크게 밀렸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영업이익이 SK하이닉스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이런 결과는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조직문화는 굳어졌고 벤처정신은 사라졌다. 전례만 좇다가 혁신을 놓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지난 20년 전 다음이 겪었던 대기업병과 다를 게 없다.
다른 기업보다 삼성전자의 ‘대기업병’에 더 충격받는 이유는 기업 위상에 있다. 국내 코스피 20%를 차지할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500만명이 주식을 보유한 명실상부한 국민 기업이다.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가 위태롭다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지적은 허언이 아니다.
조직 주축은 MZ세대로 바뀐 지 오래인데, 기존 리더가 ‘주 6일 근무로의 복귀’라는 식으로 군기만 잡아봐야 소용없다. ‘초딩(초등학생)도 이해할 보고서를 만들라’는 ‘가짜 소통’에 주력할 게 아니라, 엔지니어 혁신에 귀 기울이는 ‘진짜 소통’의 조직으로 되돌려야 한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3호 (2024.11.06~2024.11.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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