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보루…장인들 예우하고 있나 [‘할말 안할말’…장지호의 ‘도발’]

2024. 11. 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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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추석 연휴에 이재용 삼성 회장이 프랑스에 갔다. 리옹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에 종합 2위를 달성한 한국 대표단 선수들에게 후원사 삼성전자 대표 자격으로 메달을 수여하기 위함이었다. 청년 기술 인재들에게 이 회장은 “대학을 가지 않아도 기술인으로서 존중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약속했다.

우수 기술 인재가 우대받는 사회가 되려면 기업 역할도 중요하지만, 일생 기술 외길을 걸은 장인에 대한 제도적 장치와 예우 문화가 선행돼야 한다. 우리 기술 장인의 현실은 어떤가? 1986년에 도입된 숙련기술장려법은 명장을 선정한다. 명장은 각 산업 직군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다. 그러나 현실은 법 조항과 사뭇 다르다. 명장, 명인, 장인, 달인 등의 명칭을 앞세운 자영업자가 우후죽순 횡행하고 있어 명장 명칭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크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방한한 에르메스 소속 장인들이 자신의 공방에서 가져온 도구를 사용해 작업을 재현했다. 행사 참관자들은 가죽 냄새를 맡고 재료를 만져보거나 프린팅 등을 체험했다. 1837년 파리에서 안장과 마구 용품 생산으로 시작한 에르메스는 장인 기술력에 의존해 성장한 기업이다. 프랑스 내에 60여개의 공방을 운영하고, 1만3000여명의 직원 중 7300명이 가죽 부문 장인이다. 다른 부분까지 포괄하면 그 숫자는 1만명에 달한다.

프랑스뿐 아니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도 장인으로 세계적인 명품 산업을 일궜다. 일본 역시 초밥 장인, 화과 장인, 도자기 장인 등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분야 장인이 몇 세대에 걸쳐 기술을 숙성시켜 오늘에 이른다. 기술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올림푸스는 장인을 중심으로 첨단 디지털 기술을 융합하는 혁신의 기업 문화를 자랑한다.

이에 반면 우리 숙련 기술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서울 도심 곳곳에 수십 년간 이어온 제조업 지역이 꽤 있다. 신당동과 창신동의 봉제, 성수동의 제화, 종로의 주얼리, 영등포의 금속 가공 등이다. 여기에 종사하는 적지 않은 이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평생 전문 기술을 연마하고 유지하고 있다.

봉제 산업을 예로 들면, 원단을 옷 모양대로 치수에 맞춰 자르는 재단까지는 기계가 할 수 있지만, 옷감의 직선과 곡선을 넘나들며 재봉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라고 한다. 결국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고품질 제품이 생산되려면 어느 분야든지 현장의 숙련된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숨은 장인들은 대부분 원청에서 일감을 받는 영세 하청 수준이다. 오랜 기간 연마한 숙련도 높은 장인은 점차 고령화되고 새로운 인재는 유입되지 않아 기술은 단절된다.

2022년부터 서울시가 의류봉제, 기계금속, 인쇄, 주얼리, 수제화 분야의 ‘우수숙련기술인’을 선정, 지원한다. 이벤트성의 선심 지원이 아닌 장인의 기술과 경험을 엮어 명품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기업과 연계된 체계적 설계가 돼야 할 것이다. 그들의 기술을 시대 변화에 맞게 발전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제조업의 마지막 보루는 장인이다. 장인은 숙련된 기술자를 넘어 수요자의 필요와 만족에 공감해 제품에 반영하는 창조자다. 그들의 역할이 있어야만 일류 제품이 완성된다. 국제대회 수상에 감동만으로는 부족하다. 장인 기술 가치에 맞는 제값이 치러지는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인정이 병행돼야 한다. 그것은 삼성과 이 회장만의 몫은 아니다.

[장지호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총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3호 (2024.11.06~2024.11.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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