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6건"... 밥을 마시듯 먹어야 하는 이들의 하루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민주노총 희망연대본부 LGU+비정규직지부는 2024년 '노무관리 방침 변화에 따른 노동자 건강영향 변화 및 과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를 통해 실적압박을 위시한 사측의 노동통제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직무스트레스를 향상시키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주된 결과를 연속 기고를 통해 알리려 한다. <기자말>
[원동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오늘 일정을 열어본다. 회사 시스템 속 타스크(설치수리기사의 시스템에 배정된 업무 배정 단위, 한 집 방문 소요 시간을 말함)가 빼곡하다. 우리에게는 10년 넘은 루틴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객과의 약속 시간을 지키려다 보니 시간 활용을 잘해야 했다. 하루의 동선을 짜고 무리한 일정은 없는지 필요한 장비는 무엇인지를 확인한다.
통상 한 시간 단위로 한집, 한집 다녀야 하는데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일이 밀리기 시작하면 다음 집부터는 늦어서 죄송하단 말을 해야 한다. 어쩌면 망가질지 모르는 고객 만족도를 위해 안 해도 될 고객의 집안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고 최대한 빠르게 일을 마무리해서 여유 시간을 만들어 언제 생길지 모르는 변수의 시간을 메우며 일을 해왔다. 이렇게 우리는 몸이 기억하는 메뉴얼을 만들어서 일을 해왔다.
1년 만에 40% 이상 증가한 일일 목표 건수
우리의 일은 고객의 집에 방문하여 유플러스의 인터넷과 IPTV, IoT(사물인터넷)를 설치하고 A/S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주택인지 아파트인지, 배정된 고객의 집 간의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 상품의 종류와 고객의 집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고객이 어떤 상품을 어디에 설치하기를 원하는지 등에 따라 우리의 업무 소요 시간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가정집에 인터넷과 IPTV 한 대를 설치하는 업무라 하더라도, 고객이 계약한 인터넷 속도에 따라, IPTV 설치 위치에 따라, 고객의 요구사항에 따라 설치 시간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지역 특성도 작동한다. 내가 담당하는 지역은 내비게이션도 없이 다니는 현장 기사들과 스케줄을 잡아주는 스케줄 매니저의 역할이 크다.
그래서 2015년 5월 노동조합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단체협약 제16조 2항에는 "회사는 조합원의 업무를 배정할 때 작업 소요 시간, 작업 간 이동시간, 근로 강도 및 근로 시간 등을 고려해 적정 업무량을 부과하도록 한다"라는 합의 문구가 있다.
최근 들어 이러한 역사나 단체협약이 지켜지지 않는 일이 일상다반사다. 2023년 1월, 대표가 바뀌면서 회사에서 하루 목표 처리 건수를 정했고, 이는 노동자들에게 압박이 되었다. 노동자들의 업무 루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역별 담당 관리자들 사이에 경쟁이 붙어, 처음엔 3.5건으로 시작해서 1년도 안 된 현재는 일일 6건이라는 목표가 세워지면서 풀지 못할 만큼의 감정싸움이 시작되었다.
신도시가 있는 지역은 이사 물량이 많아서 일이 많고, 인구가 적은 소멸위험 지역이라면 고객 집 간 거리가 멀어 이동시간이 길지만, 물량 자체는 많지 않다. 일이 많은 지역과 없는 지역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건수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기사에게 전가됐다. 회사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실장이나 팀장 등 관리자들이 회사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 편법은 다반사이며 LG유플러스의 정신인 '정도 경영'을 위반해 가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건수를 꾸역꾸역 맞추어 갔다. 이에 따르는 고통은 기사나 스케줄 매니저들이 감당하고 있다.
▲ 가정집 인터넷 설치를 위해 외부 작업중인 유플러스 홈 서비스 기사 |
ⓒ 희망연대본부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같이한 '노무관리 방침 변화에 따른 노동자 건강영향 및 과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60% 가까이가 하루 평균 30분 이하로 식사하고, 75% 가까이가 하루 평균 30분 이하로 쉰다고 한다. 밥도 못 먹고 힘들어서 다음 고객 방문 시간 조정을 요구하면 관리자는 들은 체도 안 하거나 "본인에게 주어진 일은 본인이 알아서 다 끝내는 게 맞다"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오후 6시를 넘겨 연장 노동을 하기도 한다.
이 관리자들도 전부 기사로 있다가 승진한 인원이라는 게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 "본인이 현장에 있을 때는 그렇게 일 안 하지 않았냐"라고 하면,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 상황에 맞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게 말인가 싶지만 현실이다. 더러워서 퇴직을 선택하는 기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루에 6건을 채우게 해야 하니 기존의 한 집 가는 시간을 단축할 수밖에 없다. 어떤 작업이든 고객이 어떤 서비스를 원하든 "무조건 6건"을 관리자들이 외쳐대니 다들 시간 압박 속에서 강도 높은 업무를 감수하게 되었다. 뒤에서 누가 계속 밀치는 느낌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근무시간 대부분~내내 매우 빠른 속도로 일하거나 엄격한 마감 시간에 맞춰서 일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81.9%로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성과에 대한 압박을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은 90%에 달했다.
거의 매시간 다른 고객과의 약속이 잡혀 있기에,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한 집 당 35~45분 이내에 작업을 끝내야 한다. 업무 속도를 높이기 위해 보호장구 착용 없이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건수의 압박에 못 이겨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여러 연구는 공통으로 시간 압박이 주요한 직무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며 시간 압박이 노동자들의 위험 감수 행동(risk taking behavior)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Balker·Demerouti, 2007; Bollard et al, 2007; Kocher et al, 2013).
우리 노동자들의 경험 역시 이러한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고 한다. "걸을 거리도 빠른 걸음으로 뛰어가"야 하는 높은 노동강도는 작업 및 이동 중 사고 위험을 높이고 있다.
▲ 가정집 인터넷 설치를 위해 외부 작업중인 유플러스 홈 서비스 기사 |
ⓒ 희망연대본부 |
어떤 노동자는 관리자에게 "이러다 사고 나면 책임지실 건지"에 대한 물었다. 이에 관리자는 "책임지겠다"라고 했지만,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 안 해봤다"라고 답했다. 이 관리자는 해당 센터의 안전관리감독자였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용어가 있다. 통계적으로 심각한 안전사고가 1건 일어나려면 그 전에 동일한 원인으로 경미한 사고가 29건, 위험에 노출되는 경험이 300건은 이미 존재했다는 내용이다. 노동조합이 아니라 회사에서 더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데, 작은 사고가 결국에는 큰 사고로 번지게 되므로 이러한 징후들을 제대로 파악해서 대응하면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통찰을 준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 회사의 설치 수리기사들은 매우 높은 비율로 일로 인해 아프다. 업무상 사고의 경험도 높아졌다. 지금 우리는, 회사가 하인리히 법칙을 따라서 잘못된 부분을 인지하고 시정해야 누군가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큰 사고를 예견하고 싶지 않다. 그때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내가 될지, 나와 가장 친한 선배 친구 동생이 될지 예견하고 싶지 않다. 6건을 맞추기 위해서 밥 안 먹고 과속하면서 빨리빨리, 업무 외 시간까지 일하는 미친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희망연대본부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수석부지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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