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악취 해결하려다가... 영끌로 내 집 마련한 커플의 위기
[김상목 기자]
▲ 영화 <럭키, 아파트> 스틸 이미지 |
ⓒ ㈜인디스토리 |
몇 년 지나 영화가 완성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2024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침내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꾸준히 천착해온 여성 인권 문제와 함께 감독의 초기작에서 다뤘던 부동산 계급사회 의제가 결합해 있었다. 장르는 변해도 고민과 문제의식은 그대로구나 하고 안도의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감독에게 늘 느끼던 인상처럼 우직하고 성실하면서도 꼼꼼한 작업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범위는 한층 더 넓어졌다. 왜 극영화를 선택했는지 약간 알 것 같았다. 그 영화가 개봉해 관객과 한창 만나는 중이다.
'럭키비키'를 꿈꾸던 커플, 아파트라는 감옥에 갇히다
'선우'와 '희서'는 가진 돈 탈탈 털고, 희서의 가족에게서 지원받은 돈으로 두 명이 함께 살기엔 아쉬울 것 없는 '복도형' 아파트 단지에 입주한다. 이제 행복한 삶만 누리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선우는 직장에서 원하지 않는 해고를 당한 데다, 무작정 놀 수 없어 시작한 배달 아르바이트 중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에는 깁스까지 한 상태다. 불편한 몸으로도 배달 일을 멈추지 않지만, 성한 몸으로도 고된 일을 제대로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한편 희서는 제약회사 영업직으로 능력을 인정받지만, 그만큼 업무강도도 쉴 틈 없이 몰아친다. 파트너 선우에겐 집에서 쉬면서 얼른 나으라고 권하긴 해도 아파트를 얻기 위해 짊어진 대출이자 감당하기도 만만하지 않다. 아무리 사이좋은 연인이라도 현실의 돈 문제가 발생하니 긴장이 수면 아래에서 올라오는 건 시간문제다.
희서는 회사 일에 치여 정신이 없는데 원치 않게 전업주부 역할이 된 선우는 경제적 격차로 인한 자격지심은 물론,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감도는 원인 모를 악취가 신경이 쓰인다. 피곤한 몸 안고 늦게 퇴근해 쓰러지기 바쁜 희서와 달리 종일 집에 머무는 선우는 냄새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는 악취의 원인을 확인하려 동분서주한다. 관리사무소가 미온적으로 대처하자 참다못한 선우는 여기저기 들쑤시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한다. 그 과정에서 아파트 동대표를 비롯한 주민들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다.
희서는 선우의 행동 때문에 이전에 살던 빌라에서처럼 눈총을 받는 게 못마땅하다. 동대표를 비롯한 이웃들 시선이 적대적으로 변하면 삶이 피곤하다. 기껏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해서 오붓한 내 집 마련 성공했는데 말이다. 선우가 악취 원인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뜻밖의 결과를 초래한다. 일은 점점 커지고 선우는 한 번 꽂힌 일에 포기하지 않고 끝장 볼 기세다.
주민들과 갈등은 물리적 접촉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 주민들은 '단톡방'으로 연결돼 있다. 선우의 진상규명 노력이 이어지면서 반감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선우의 행위가 결과적으로 틀린 행동이 아닌데도, 부동산 시세나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것처럼 취급받으면서 이제 커플은 이웃과 적대는 물론,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던 둘 사이의 골 역시 깊어만 간다.
▲ 영화 <럭키, 아파트> 스틸 이미지 |
ⓒ ㈜인디스토리 |
이후 감독은 여성주의 시선에 입각한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시류에 편승하기보다는 다루기 곤혹스럽거나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난제에 천착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주한미군 기지촌 유흥가 윤락여성들('이태원'), 탄핵 대상에 대한 여성 혐오가 정당화되는 행태에 대한 유감('시국페미'), 여성주의 운동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지난 세기부터 연결해 왔음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하고 현재로 이어지는 활동을 조명('우리는 매일매일'), 은폐된 문화예술계 성폭력 고발('애프터 미투')에 이르는 숙제를 떠맡아 고군분투해 온 것이다.
그렇게 달려온 10여 년 창작이 이번에는 성소수자 커플 주거 문제로 옮겨왔다. 가시적인 차별과 물리적 위협을 동반한 혐오에 가려서 심각성을 느끼기 힘들지만, 성소수자 포함 다양한 마이너리티 집단에게 주거 문제 해결은 결정적 난관이다. 차가운 시선과 함께 법적 보장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가족과 의절하거나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할 가정에서 학대에 시달리는 경우에 자립하고자 해도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전세 사기 등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방 한 칸 구하는 것조차 보이지 않는 차별의 피해를 온몸으로 겪는 셈이다.
열심히 돈벌어 자립하면 되지 않냐는 반론이 나올 차례다. 커플은 그 관문을 어렵사리 통과한 상태다. 그러나 부부로 혼인신고를 할 수도, 부양가족 등재할 여지도 봉쇄돼 있으니 빚을 내어 집을 사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불이익이 사방에 넘실거린다. 바깥에서 차별에 시달린 주인공들이 유일하게 두 다리 뻗고 눈치 보지 않고 지내야 할 비밀요새는 알고 보니 사방이 포위된 고립무원 신세다. 그저 이웃들과 사이 좀 안 좋은 차원이 아니다.
▲ 영화 <럭키, 아파트> 스틸 이미지 |
ⓒ ㈜인디스토리 |
희서의 시선에서 '커밍아웃'에 도전하는 선우의 행보는 겨우 이룬 평화를 송두리째 뒤흔들 감정적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많은 성소수자 커플이 희서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 세상에 섞여 굳이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이다. '숨어들기' 전법인 셈이다.
선우의 시각은 다르다. 스스로 움츠러들고 침묵할 수 없는 것이다. 악취 원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희서와 다를 것 없이 자신들의 권익을 침해받는다는 출발점은 어느새 소외된 노인에 대한 연민, 그리고 '바지씨'라 불리던 초창기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된다. 이웃들의 혐오에 맞선 사투 속에도 어쩌면 자신들 후속 세대일지 모를 이도 발견한다. 장래를 생각하면 손해가 크긴 해도 그만한 보람을 찾은 것 같다.
그런 주변과의 충돌에 시달리다 보니, 눈빛만 봐도 마음을 투시해 들여다볼 법한 커플은 서로의 상반된 조건과 처지 탓에 위태로운 고비를 넘어야 한다. 저러다 정말 파국을 맞는 것 아닌가 조마조마해질 관객이 여럿 나올 법하다.
묘한 건 이웃의 적대에 직면하자 두 사람이 서로 갈등을 잠시 접고 공동으로 외적에 맞서 단결하는 면모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어찌 보면 이들이 평범한 연인/부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이들이란 보편성의 담지로, 다르게 보면 가족주의에서 '내로남불' 비판지점은 이들 역시 하등 다르지 않구나 싶은 장면이다.
▲ 영화 <럭키, 아파트> 스틸 이미지 |
ⓒ ㈜인디스토리 |
물론 아쉬운 지점이 있다. 결말에서 확인되는 주제의식은 아파트 부족사회에 편입되길 포기하는 대신, 대안 공동체로서 성소수자 3대를 잇는 주인공의 결단으로 형상화된다. 그 결단은 <럭키, 아파트>에서 보다 섬세하고 개인적 일상을 기대하던 이들에겐 감독의 전작들을 고스란히 장르만 바꾼 것 같은 감상을 유발하며 아쉬움을 남길 테다.
'미투' 운동이 잦아들자 여성주의 시선에선 반동적인 '백래시'가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중이다. 그런 좌절감에 맞서 근래 선보이는 한국 독립영화 중 적지 않은 작업이 일종의 '부흥회'를 기획하고 의도하는 건 어렵지 않게 예측 가능한 경향이다.
한창 다양한 성차별과 폭력의 단면, 개인의 체험을 극화하는 형태의 고발 성격 작업이 양산되던 조류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그와 함께 불황기에 위로와 격려를 던지는 작업이 상대적으로 선호되는 시절이다. <럭키, 아파트> 역시 일정하게 그런 경향을 변주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선우 역 손수현, 희서 역 박가영 배우 캐릭터는 선명하지만 그만큼 예측하기 쉽다. 선우의 판단이 틀리지 않음이 입증되지만, 주변 지인이라면 퍽 피곤할 스타일이다. 오히려 주인공과 긴장 혹은 공감을 형성하는 주변 캐릭터가 더 흥미로운 구석이 종종 있다. 싱글맘으로 딸을 부양하며 '받는 것도 없이' 동대표로 봉직하는 '명희'와 딸 '은주'의 호흡, 어쩌면 주인공의 선배라 할 노년 여성들 과거가 더 궁금해지곤 한다.
부동산과 성소수자 문제, 현재 가장 첨예한 논란을 조합하는 <럭키, 아파트>의 시도는 풍성한 토론주제와 함께 현재 우리 사회가 겪는 극단적 갈등의 축소판으로 손색이 없다.
[작품정보]
Lucky, Apartment
2024 한국 인비저블 심리 드라마
2024.10.30. 개봉 96분 15세 관람가
감독/각본 강유가람
출연 손수현, 박가영, 이주영, 정애화, 전소현
제작/배급 ㈜인디스토리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 영화 <럭키, 아파트> 포스터 |
ⓒ ㈜인디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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