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학을 실천하는 마을살이

고영준 2024. 11. 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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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살림학연구소 첫돌맞이 한마당잔치' 살림꾼 주제발표③

[고영준 기자]

TV를 켜면, 수많은 보험광고를 접할 수 있다. 각종 암, 치매, 치아, 당뇨 등에 대해 저렴한 가격에 많은 보장을 해준다고 이야기한다. 병의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말하기보다, 원인이 무엇이건, 어떤 삶을 살았건 상관없이 보험을 들면 병을 치료하는 비용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원인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운동이 부족하고, 달고 짜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다. 과로와 때로는 과음,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삶 속에서 자신만의 원인을 찾는다 해도, 그 습관과 생활양식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큰 병에 걸려 그제야 부랴부랴 공부하고, 생활양식을 바꾸는 이도 있지만, 이마저 쉬운 일이 아니고 예전 생활로 돌아가는 이들도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삶의 양식은 너무도 쉽게 건강한 삶에서 멀어지게 하며, 병원과 보험에 의존하게 만든다.

다른 삶은 없을까? 병원, 보험 말곤 답이 없을까? 병에 대해 다르게 대처하고, 보다 근원에서 문제를 풀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살림의학'이 이야기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에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2024 살림학연구소 첫돌맞이 한마당잔치 - 살림의학 주제로 발표하는 주은 살림꾼
ⓒ 살림학연구소
살림의학은 양생이다
"인간에 대한 통찰을 동아시아 사상과 의학에서는
'소우주'라는 표현 속에 담아 왔습니다.
사람은 대우주인 온생명과 연결된 소우주입니다.
따라서 앓이도 치유도 우주적으로 일어나는 생명사건이죠.
앓이와 치유가 우주적 생명사건이라면,
진정한 치유를 위한 실천 역시 한 개체 생명의
몸과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온생명에까지 일관되게 연결되는
우주적 실천이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한의사인 주은 살림학연구소 살림꾼(연구원)은 살림의학이 통전적 생명 이해를 기초로 진정한 치유를 지향하는 실천과 연구라고 했다.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보고 그 가운데 평화를 일구어 가는 양생, 곧 소우주인 이 존재를 더욱 생명답게 기르는 일인 것이다. 양생이라고 하면 자기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여러 행위를 일컫기도 하지만, 살림의학에서 말하는 양생은 생명의 본질인 연결성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양생은 몸의 건강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된 존재인 생명을 북돋고 전인적인 평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나'라는 한 개체에 국한되지 않고 나로부터 시작해 온생명을 생명으로 바라보는 힘을 함께 길러 가는 구체적인 훈련이다.

주은 살림꾼은 살림의학 실천의 사례로 밝은누리를 제시했다. 밝은누리는 하늘 땅 사람 더불어 사는 생명살림터인 마을을 토대로 생명을 살리고 평화 일구는 대안적 생활문화를 가꾸어 온 한몸살이(공동체)다. 밝은누리를 살림의학 실천사례로 선정한 까닭은 ▲개인 양생에서부터 온생명 살림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생명살림 실천을 이어 왔다는 점, ▲몸과 마음 닦아 가며 주체성을 고양하는 문화를 만들어 온 점, ▲마을이라는 장 속에서 생명살림을 실천해 온 점 때문이다.

내 몸에서 시작해 온생명 살림으로 이어지는 실천

밝은누리는 임신, 출산, 육아 등 생명을 낳고 기르는 사건을 통과하면서 그 주체들을 중심으로 몸과 마음 돌보는 문화를 만들어 왔다고 한다. 임신을 계획하면 먼저 부모들이 몸과 마음, 삶의 양식을 돌아보고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태어날 아이와 나누어도 괜찮은 밥상을 차려 먹고 있는지 돌아보고 바꾸어 간다. 단식과 생채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새로운 입맛과 밥상을 몸에 들이는 전환점으로 삼기도 한다. 이 시기를 비슷하게 통과하는 부모들은 요가나 운동 등 몸수련을 함께하고, 임신, 출산, 육아, 태교, 몸과 건강에 관한 공부를 함께하며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밝은누리 구성원이 운영하는 마을밥상의 차림도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밥상을 기준으로 점차 유기농 제철 음식과 채식 위주 차림으로 정착되어 갔다.
 주제발표 경청하는 살림학연구소 길벗들
ⓒ 살림학연구소
몸과 마음 닦아 가며 주체성을 고양하는 문화

주은 살림꾼은 양생은 스스로 생명에 대한 주체성을 고양하는 과정이라고 짚었다. 자기 몸과 마음을 이해하고 조율하며, 몸 마음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치유는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므로 양생, 곧 수행은 그 자체로 치유이기도 하다. 수행의 핵심은 몸과 마음을 닦아 가는 삶을 지향하는 태도에 있다며, 좋은 수행 방법들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수행하는 태도로 살아가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밝은누리는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몸과 마음 닦아 가는 수행문화를 만들어 왔다고 한다. 더불어 살며 삶의 변화를 실제로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연습하고 체화하는 수행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살림하는 역량을 기르고 생명을 살리는 먹거리를 몸에 들이기 위해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 일상을, 어떤 이는 몸을 움직이며 활기 있는 삶을 위해 꾸준히 연습하는 풋살을 수행 삼아 하기도 한다.

밝은누리에는 푸른이(청소년)들과 어른들이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배움터인 삼일학림이 있다. 삼일학림의 교육과정에는 얼밝히기, 뫔살림-양생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과목으로는 철학수신과 마음닦기 등이 있다. 철학수신과 마음닦기는 마음과 몸 함께 닦으며 몸과 마음이 일치되는 삶을 지어 가는 공부 과정이다. 학생들은 길잡이에 따라 일상에서 꾸준히 수행을 이어 간다.

밝은누리는 양생과 수행문화 속에서 앓이가 찾아올 때 이를 생명현상으로 받아들여 주체적으로 맞이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한다. 감기나 환절기에 겪는 몸의 변화 등 반복되는 앓이 현상에 대해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 의료인이나 병원에 도움을 받아야 할지, 스스로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생활요법을 실천해 치유와 회복을 도모할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한다.

주은 살림꾼은 오늘날 주체성을 고양하는 과정으로서 양생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앓이하는 이를 치유의 주체가 아닌 소비자로만 자리매김하는 시장화된 의료체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명살림의 지혜가 담지되고 계승되며 양생의 주체성이 길러지는 일상의 관계망이자 삶터인 마을이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연결성의 회복, 한몸살이(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사람의 생명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서부터 자연환경에 이르기까지 온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생명의 앓이는 그가 속한 조직체와 사회의 앓이, 지구공동체의 앓이와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치유는 온생명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진정한 치유가 연결성의 회복이라고 할 때, 살림의학은 '온생명 한몸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생명 살림이 이루어지는 마을

밝은누리는 함께 양생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마을을 토대로 주체성을 고양해 왔다. 서로 가까운 곳에 모여 살며 마을밥상에서 함께 밥을 차려 먹는다. 마을밥상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꾸리고 매일의 끼니를 함께하는 밥상이다. 마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단순하고 소박한 음식을 고마운 마음 품고 함께 먹으며, 자주 만나 기운과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랑방이기도 하다. 마을밥상을 통해 마을 아이들과 어른들은 건강한 입맛과 식습관을 자연스레 길러 간다.

밝은누리는 유행을 따르거나 몸을 불편하게 하는 옷보다 순환이 잘 되고 편안한 옷을 고르고, 입던 옷을 새 옷보다도 기꺼워하며 서로 나누어 입는 문화가 있다. 입던 옷은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처리하는 화학성분이 빠져나간 상태이기에 몸에 더 좋고, 새 옷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원과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벗들의 삶이 담겨 있어 정겹다. 밝은누리 누리집 살림장터 게시판을 통해 옷을 나누기도 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은 마을 언니, 오빠, 누나, 형들로부터 옷을 한두 상자씩 받아 물려 입는다. 마을에서 때때로 열리는 옷잔치 때에는 나눌 옷을 저마다 가지고 나와 필요한 사람들이 직접 고르고 나누어 입는데, 이를 통해 즐거운 나눔과 호혜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주은 살림꾼은 밝은누리 사례를 보며 진정한 치유는 질병의 치료를 넘어 총체적 삶 속에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온생명의 연결성을 자각하고 회복해 가는 일상에서 경험되는 평화,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지어 가는 과정이 진정한 치유라는 것이다. 이 과정은 하늘 땅 사람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마을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 갈 수 있다고 밝히며 발표를 맺었다.
 〈2024 살림학연구소 첫돌맞이 한마당잔치〉의 ‘여는마당’ 풍경 : 여러 마을에서 절기마다 생명의 자람에 맞춰 잔치하고 노는 일상을 꾸려온 살림꾼 길벗들이, 놀고 즐기는 잔치 역량을 모아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 살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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