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경와인셀라]한 모금에 오롯이 담긴 우코밸리 떼루아

구은모 2024. 11. 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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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르헨티나 '파밀리아 수카르디(Familia Zuccardi)'
1963년 설립 멘도사 우코 밸리 와이너리
'월드 베스트 빈야드' 3년 연속 1위에 빛나는 아름다운 경관
정확한 떼루아 반영을 위해 콘크리트 발효조 사용
편집자주
하늘 아래 같은 와인은 없습니다. 매년 같은 땅에서 자란 포도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고 숙성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우연의 술'입니다. 단 한 번의 강렬한 기억만 남긴 채 말없이 사라지는 와인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아경와인셀라'는 저마다 다른 사정에 따라 빚어지고 익어가는 와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들려 드립니다.

"우리는 와인을 재배합니다.(We cultivate wines.)"

아르헨티나 멘도사(Mendoza) 지방에 자리 잡은 와이너리 '파밀리아 수카르디(Familia Zuccardi)'의 오너이자 와인메이킹 디렉터인 세바스티안 수카르디(Sebastian Zuccardi)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작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에게 와인 양조는 현란하고 복잡한 기술을 적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기보다 포도가 나고 자란 떼루아(Terroir·포도밭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총체)를 있는 그대로 병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와인은 여행이다. 포도가 재배된 곳의 떼루아와 경작한 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긴 와인은 저마다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 마시는 이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수카르디는 아름다운 떼루아가 한 모금의 와인 안에 담겨 마시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길 바란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와인은 포도밭과 떼루아, 수확 연도(빈티지)에 대한 와이너리의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파밀리아 수카르디는 떼루아가 투명하고 정확하게 표현된 와인을 선보이기 위해 항상 노력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파밀리아 수카르디(Familia Zuccardi)' 와이너리 전경.

떼루아에 대한 도전→날것의 떼루아 반영

수카르디의 시작은 떼루아에 대한 도전에서 비롯됐다. 엔지니어였던 알베르토 수카르디(Alberto Zuccardi)는 멘도사의 반사막 기후와의 싸움에 집착했다. 서쪽의 안데스 산맥과 동쪽 팜파스 초원 사이에 놓인 멘도사는 연평균 강우량이 200㎜에 불과한 건조한 지역으로, 이곳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선 관개(Irrigation) 시스템이 필수였다.

알베르토 수카르디가 1963년 멘도사 마이푸(Maipu) 지역에 처음 포도밭을 조성한 것도 자신이 개발한 관개 시스템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포도를 직접 재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물에 대한 우수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자신의 진정한 열정이 포도 재배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길로 포도밭을 확장해 와인 생산으로 사업을 넓혀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을 닦았다. 이후 그의 아들 호세 알베르토(Jose Alberto)가 1985년부터 가업을 물려받아 와인의 품질을 개선했고, 현재는 손자인 세바스티안이 운영 전반을 책임지며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파밀리아 수카르디(Familia Zuccardi)'의 오너이자 와인메이킹 디렉터인 세바스티안 수카르디(Sebastian Zuccardi).

파밀리아 수카르디의 3대 수장인 세바스티안은 떼루아에 천착했다. 그는 떼루아가 와인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이전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 2009년 연구·개발 부서를 설립해 본격적인 와이너리 혁신에 돌입한다. 그가 주목한 곳은 광활한 멘도사 지방 가운데서도 마이푸의 남서쪽 지역인 '우코 밸리(Uco Valley, Valle de Uco)'였다. 우코 밸리의 다양한 토양이 포도와 땅, 기타 변수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좋은 조건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세바스티안은 우코 밸리의 토양을 특성에 따라 분류하고, 이에 따라 최적의 품종과 수형 관리법, 관개 시스템, 수확시기 등 포도 재배 관행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떼루아에 대한 심화된 이해는 그에게 떼루아를 투명하게 담아낸 와인 생산에 대한 자신감을 부여했고, 이는 2016년 우코 밸리의 새로운 와이너리 건설로 이어진다.

새 와이너리는 건축적으로도 주목을 받아 수카르디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주변에서 채취한 돌과 모래 등을 주재료로 삼아 인근 산과 조화를 이루는 저층 구조로 건설된 와이너리는 독창성과 친환경 디자인으로 주목받으며 600명의 와인 전문가들이 선정하는 '월드 베스트 빈야드(The World's Best Vineyards)'에 2019년부터 3년간 1위에 올랐다. 이로 인해 수카르디의 와이너리는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많은 방문지로 꼽힌다.

'파밀리아 수카르디(Familia Zuccardi)' 와이너리 전경.

콘크리트, 투명한 정체성 표현을 위한 협력자

수카르디의 와이너리가 터를 잡은 우코 밸리는 아르헨티나의 대표 와인산지인 멘도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지역이다. 우코 밸리의 고도는 900~1500m로 연평균 기온이 14도(℃) 정도로 서늘한 편이다. 높은 고도에서 비롯된 서늘한 밤 기온은 포도 내 산도와 신선한 과일 풍미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와인에서 종종 꽃 풍미가 발현되는데 기여한다. 실제로 이곳에서 생산된 말벡(Malbec) 와인은 높은 고도가 보장하는 산도가 와인에 신선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장기 숙성력을 갖추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또 포도밭 대부분이 안데스산맥에 인접한 아르헨티나의 와인산지는 엄청난 태양 광도가 독특한 광합성과 성숙도 환경을 만든다. 고산지대의 포도밭이 있는 산비탈은 막대한 양의 집중적인 직사광선을 받는데, 고도가 300m 높아질 때마다 자외선의 강도는 10~12% 증가한다. 자외선 강도가 강해지면 포도는 빛으로 인한 손상을 막기 위해 껍질을 더욱 두껍게 만드는데, 껍질이 두꺼워지면 안토시아닌(색소)과 타닌, 아로마와 풍미 화합물이 많아진다. 이로 인해 아르헨티나의 최상급 말벡은 짙은 색과 풍성한 풍미, 뛰어난 구조감(타닌)이 특징이다.

아르헨티나의 주요 와인산지 멘도사(Mendoza). 수카르디의 포도밭은 멘도사 고지대 우코 밸리(Uco Valley)에 자리잡고 있다.

수카르디는 이같은 우코 밸리의 떼루아를 최대한 섬세하게 보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나 오크통이 아닌 콘크리트 용기 발효를 채택했다. 콘크리트 용기는 스테인리스 탱크가 개발되기 전에는 흔히 사용되던 발효·숙성 용기였지만 스테인리스 탱크 개발 이후에는 청결 유지와 관리가 상대적인 약점으로 지적되며 사용이 줄었다. 하지만 최근 두꺼운 콘크리트 외벽이 발효와 숙성 중 온도 조절에 기여해 고가의 온도 조절 장치를 사용할 필요 없다는 경제성과 친환경성이 장점으로 부각되며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무엇보다 미세 산화 효과로 타닌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점이 콘크리트 발효조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이로 인해 콘크리트 용기에서 발효한 말벡은 산미와 미네랄, 타닌 표현이 부드러우면서 깔끔해진다. 세바스티안 수카르디도 가능한 최소한의 개입으로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콘크리트 용기의 도입 배경으로 꼽았다. 그는 "콘크리트는 와인에 풍미나 향을 부여하지 않으며 원산지의 순수한 표현을 보존한다"며 "콘크리트가 허용하는 작은 미세 산소화와 뛰어난 열 안정성은 와인 양조 과정의 각 단계에서 더 나은 관리에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콘크리트 용기는 일반적으로 내부를 에폭시 수지나 유리로 코팅해 비활성 상태로 유지하며, 방수를 위한 장벽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수카르디는 석회질 토양이 부여하는 질감을 극대화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코팅도 입히지 않은 콘크리트 용기를 사용한다. 이런 콘크리트 용기의 강점을 극도로 끌어올린 와인이 '콘크레토(Concreto)'라고 이름 붙인 말벡 100% 와인으로, 포도밭에서 나오지 않은 일체의 향과 맛은 배제하는 것을 목표로 만든 와인이다.

'파밀리아 수카르디(Familia Zuccardi)'의 콘크리트 발효조.

아르헨티나의 자부심, 말벡으로 빚어낸 '세리에 A'

말벡은 생산량이나 품질 양면에서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품종이다. 프랑스 남서부의 와인산지 카오르(Cahor)가 원산지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더 빛을 발하고 있다. 말벡이란 이름은 별칭인데, 정식 명칭은 '코(Cot)'로, 프랑스어로 '나쁜·악'이라는 뜻의 '말(mal)'과 '입·부리'를 의미하는 '벡(bec)'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말벡을 코라고 부르는 프랑스 카오르에선 우아하고 부드러운 스타일의 장기 숙성 와인으로 빚어진다.

반면, 아르헨티나에선 전반적으로 잉크처럼 진한 색상과 입안을 압도하는 풍부한 과실향, 묵직한 질감이 인상적인 와인으로 만들어진다. 같은 아르헨티나 말벡이라도 고도에 따라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는데, 낮은 고도의 포도밭에서는 풍부한 검은 과일 풍미가 강조되는 무거운 스타일의 와인으로 주로 생산된다. 반면에 우코 밸리처럼 높은 고도의 포도밭에서는 보다 우아하고 신선한 스타일로 생산되는데, 이러한 와인은 강한 꽃 아로마가 발현되는 경향이 있다.

'수카르디 세리에 A 말벡(Zuccardi Serie A Malbec)'

수카르디도 말벡으로 만든 와인이 주력 라인업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카르디 세리에 A(Zuccardi Serie A)'는 아르헨티나의 다양한 미세기후와 토양의 풍요로움을 선보이기 위해 기획된 시리즈로, 아르헨티나(Argentina)의 첫 글자인 'A'에서 이름을 따왔다. 세리에 A는 품종별 가장 좋은 재배 지역을 분류하고, 안데스산맥 기슭을 따라 자리 잡은 최고의 포도밭을 선별해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포도 품종들의 특징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수카르디 세리에 A 말벡(Zuccardi Serie A Malbec)'은 말벡 100%로 만든 시리즈의 대표 와인으로 강렬하고 생생한 보라 색상이 돋보이는 제품이다. 자두와 체리와 같은 익은 붉은 과일과 미묘한 허브 향이 매력적이며, 입안에선 둥근 타닌과 균형 잡힌 산도, 우아하고 상쾌한 과실의 여운이 느껴지는 피니시까지 우코 밸리 말벡의 모든 매력을 갖추고 있는 와인이다.

"파밀리아 수카르디는 새로운 아르헨티나 와인의 독특한 개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창조하고, 혁신하고,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이어갈 것입니다." 세바스티안 수카르디, 오너 겸 와인메이킹 디렉터.

'파밀리아 수카르디(Familia Zuccardi)' 와인셀러 전경.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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