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노태우 미화…다시, 소년이 온다 [데스크 칼럼]
노태우 만화 전기 출판은 6共 세력의 '역사 공정'
노태우 일가의 이중성… 추가 은닉 비자금 의혹에도 '입 꾹'
"그걸 쏘아 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본문 57쪽 중에서)
한강은 이렇게 '소년이 온다'에서 자신이 왜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설로 썼는지 보여준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18 당시 계엄군 총탄에 맞아 숨진 광주상고 1학년 문재학 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군홧발로 짓밟으며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산산조각 낸,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다.
12·12 쿠데타에서부터 광주 민주화 운동, 6·10 항쟁을 거쳐 6공화국 정권이 출범하기까지의 시기에 신군부 최상층 지도부 전두환·노태우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이유다. 노벨 위원회는 이것을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이라 평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노태우 일가의 역사전쟁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노 전 대통령의 치부를 가리고 미화하면서 광주의 트라우마를 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79년 12월12일 휴전선에 배치된 휘하사단(9사단)을 끌고 내려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함께 군사 반란을 주도해 전 씨에 이어 권력을 장악했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의 남은 가족과 잔존 세력들은 12·12 군사 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강제 진압 등 44년간 이어진 역사의 트라우마는 언급하지 않은 채, 북방정책과 6·29선언 등 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업적을 찬양하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 6공(共)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려는 시도로 '1988년 서울올림픽의 대내외적 의미' 세미나를 열었고, 노태우를 미화하는 '만화로 읽는 인물이야기'를 내기도 했다. 이런 미화 작업의 밑바닥에 자리 잡은 노림수는 분명하다. 노 전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고, 신군부가 자행한 역사적 과오를 정당화함으로써 지금의 기득권 체제를 지속·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저지른 죄과를 감춘 채 업적만을 부각한 '전기' 형식의 '만화로 읽는 인물이야기, 대통령 노태우'를 전국 도서관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미래 세대에까지 잘못된 역사 인식을 주입하겠다는 것이다. 죽은 노 전 대통령에게는 행운일지 모르지만, 한강 작가와 동시대를 사는 이 시대의 한국인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크나큰 재앙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미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을 '광주사태'라 표현하고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의 씨를 말리러 왔다는 유언비어를 듣고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했다"고 언급해 유혈 진압의 책임을 무고한 시민들에게 떠넘겨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후 광주를 찾은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이 여러 차례 '5·18 관련 자료 공개'와 '노태우 회고록 개정' 등을 공언했으나, 실제 행동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것이 노태우 일가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노 전 대통령이 딸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숨겨진 비자금이 드러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김옥숙 여사의 메모에 정해창, 이병기 등 측근 인사 다수의 이름과 함께 기재된 904억원의 비자금 역시 '검은돈'이었을 가능성이 작지 않은데, 그 돈을 딸에게 몰아주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를 문제 삼는 여론도 거세다.
더욱이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김 여사가 2000년부터 2001년까지 21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차명으로 보관하다가 보험금으로 납입해 자금을 세탁한 정황이 밝혀졌고, 불법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152억원을 노 원장의 공익법인에 기부해 불법 증여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노소영·노재헌 남매는 이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할 국정감사에는 불참하면서 아버지인 노 전 대통령의 공적을 부각하고 찬양하는 성격의 행사에 버젓이 나타나 웃으면서 사진도 찍어 빈축을 샀다. 이러한 파렴치한 작태는 우리 사회가 피 흘리며 쟁취해 키워온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행위이자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설사 노 전 대통령의 잘못을 지우고 미화하는 자들이 있다 해도 개인과 일족의 물욕을 채우기 위해 국가권력을 사유화 한 뻔뻔한 행태는 희석시킬 수 없다. 아직 우리 국민은 무기징역 선고까지 받았던 전직 대통령과 그 일가가 온갖 의혹의 대상이 되면서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활개를 치고 사는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ps.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본문 17쪽 중에서)
그렇다면 "그 군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신군부 최상층 지도부 전두환과 노태우는 그 후로 13년간 바통을 이어받으며 최고 권력자에 올랐다 한마디 사과도 없이 숨을 거뒀다. 1996년 5·18 관련 수사로 최종적으로 6명만이 기소됐으며, 전두환과 노태우는 채 2년이 안 되는 수감생활을 마치고 모두 사면·복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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