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배터리 싸니까 쓴다고?…기술력 압도적 1위, 돈 쏟아붓는다 [전기차 혈투]
중국산 전기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질주하며 유럽연합(EU) 등이 관세로 대응하는 가운데, 그 경쟁력의 배경에는 중국의 배터리 기술이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40%를 차지하는데,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원료부터 완성품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뤄 가격을 낮췄다. BYD가 대표적이다. 배터리 제조사로 출발한 BYD는 완성차 기업을 인수하며 자동차산업에 진출했고, 배터리 등 차량 핵심 부품부터 완성차까지 직접 제조하며 생산단가를 크게 낮췄다. 중국을 넘어 글로벌 확장을 노리는 BYD는 한국 승용차 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최근 중국 배터리는 이런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기술력에서도 앞서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K배터리가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지난 뒤에도 중국을 넘지 못하면 시장을 선도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진다.
전문가들은 이미 중국의 배터리 기술을 압도적인 세계 1위로 평가하고 있다. 호주의 국책연구기관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지난 8월 발표한 ‘20년간 핵심기술 추적지표’를 분석하니 지난해 배터리 기술 연구 역량에서 중국은 86개국 중 1위(76.1%)를 차지했다. 전 세계 배터리 분야 논문 중 인용 수가 많은 상위 10% 논문 중 76.1%가 중국 연구자들이 쓴 논문이었다는 의미다. 이어 미국(5.6%), 한국(3.9%), 독일(1.9%), 호주(1.5%)가 뒤를 이었다.
같은 평가에서 2003년만 해도 미국이 1위(30.1%)였고 다음으로 한국(9.5%), 중국(6.4%) 순이었지만 20년 새 중국이 완전히 장악했다. 중국은 2014년 미국을 꺾은 이후 줄곧 1위다. 최재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뛰어난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중국 CATL은 (한국이 앞선)하이니켈 빼고는 대부분 다 한국보다 우위라는 평가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전기차·배터리 기업은 혁신 역량과 제품 품질 면에서 적어도 서구 기업과 동등하거나, 때로는 더 앞선다”며 “중국은 2009~2023년 전기차 산업에 구매 인센티브와 세금 혜택을 포함해 2300억 달러(약 300조원) 이상의 보조금을 썼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중국산 배터리를 저가로 매도할 때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의 김광주 대표는 “한국은 이제 가격경쟁력과 기술력을 다 갖춘 중국을 벤치마킹할 때”라고 말했다. 이미 세계 1위 CATL은 벤츠 등 글로벌 자동차들에 납품할 만큼 기술력 검증을 마쳤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점유율도 지난해 35.1%에서 올 상반기 38.9%까지 올랐다. 중국이 주도하는 값싼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배터리 업체들엔 캐즘이 없다”라는 말도 나온다.
중국의 LFP 배터리는 싸고 안전한 대신 한국이 주도하는 삼원계(NCM) 배터리보다 주행거리가 짧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상황은 다르다. CATL은 지난 4월 새 LFP 배터리 ‘센싱 플러스’를 출시하며 1회 충전시 주행거리가 1000㎞(10분 충전시 600㎞)라고 발표했다.
중국은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로 가는 징검다리인 반고체 기술에서도 앞서 있다. ‘젤 전해질’을 넣은 반고체 배터리는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에서 기존 제품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중국에선 이미 칭다오에너지·웨이란에너지 등이 반고체 배터리 양산을 시작했으며, 니오 등 일부 완성차 업체도 시범 적용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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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L의 R&D ‘인해전술’
중국의 기술력은 대규모 R&D 투자에서 나온다. CATL은 차세대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해 반고체·전고체, 나트륨 이온 배터리 등의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CATL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R&D 인력만 1만9758명에 달했다. 상반기 R&D 비용은 85억9000만 위안(약 1조6000억원)으로 국내 배터리 3사 합계(1조3618억원)보다 많았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CATL의 R&D 비용은 2020년 35억6900만 위안(약 6700억원)에서 지난해 183억5600만 위안(약 3조4000억원)으로 3년 새 5배 이상 급증했다.
중국 정부는 R&D 투자에 세제 혜택을 과감하게 제공해 산업을 키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12~2022년 중국 정부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36조2000억원으로 한국(3조2000억원)의 11배가 넘었고, R&D 국책과제 지원금은 중국(2조4000억원)이 한국(3000억원)의 8배였다.
기업을 중심으로 기술 인재도 육성하고 있다. CATL은 상하이교통대와 미래기술대학을 공동 설립해 연구 협력 중이다. 이상영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중국 대학들은 기업체와 견줄만한 수준의 배터리 제조 장비를 갖추고 미래 기술을 연구하고 있어, 한국과 기술 격차가 더 커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배터리 산학계가 캐즘 이후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두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PD(프로그램 디렉터)는 “결국에는 기술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며 “제조에서 얼마나 생산성을 높이고, 에너지를 줄이고, 또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느냐에 따라 향후 경쟁력이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준 성균나노과학기술원 교수는 “반도체의 ASML 같은 기업을 한국이 배출해 제품 자체보다도 제조·공정 단계의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ASML은 반도체 생산하기 위해 필수적인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조하는 회사다. 김 교수는 “배터리 기술력은 점차 비슷해질 것이라 점차 제조·공정 단계의 혁신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핵심 장비를 만들 수 있는 회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선을·박해리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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