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위성 아닌 신형 ICBM 발사…美대선 전 '레드라인' 넘나든다
북한이 미 대선을 닷새 앞둔 31일 파괴력을 높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를 꺼내 들며 미국을 향한 무력시위를 재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ICBM 발사 현장을 찾아 "핵무력 강화 노선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임을 확언한다"며 노골적 대미 메시지를 발신했다. 러시아의 기술 지원 여부가 확인될 수 있는 군사정찰위성 대신 신형 ICBM을 도발 수단으로 택한 건 ‘레드 라인’을 넘나들며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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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경험 있는 고체 ICBM 선택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이 오전 7시 10분쯤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고각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 한 발을 발사했다"며 "현재까지 분석으로 신형 고체추진 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의 '도발 택일'은 11월 5일 치러지는 미 대선을 의식한 측면이 다분하다. 한·미 연합훈련 작전계획을 '핵전쟁' 기반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힌 30일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결과 등도 고려했을 수 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는 것과 관련,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측면에서 타이밍을 재온 김정은이 선택한 카드가 신형 ICBM이라는 점에 전문가들은 주목한다.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올해 중 3기 추가 발사를 공언한 데다 지난 5월 한 차례 실패한 적 있는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전략적 시급성은 더 크기 때문이다. 이는 위성 발사 성공 시 역으로 러시아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았다는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대신 김정은은 미 본토를 노려 파괴력과 살상력을 키운 신형 ICBM을 선보였다. 군은 북한이 이번에 기존보다 길어진 12축(24륜) 신형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미사일을 발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화성-18형은 9축(18륜) TEL, 화성-17형은 11축(22륜) TEL을 사용했다. 비행 시간도 지난해 12월 화성-18형 발사 때보다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74분→86분) 미사일 크기를 키우고, 탄두 무게도 증량한 화성-18형의 개량형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미사일의 '몸집'을 키운 걸 획기적 기술 진전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신형이라고는 해도 고체연료 기반 ICBM은 이미 수차례 '성공한 도발 메뉴'다.
또 정보 당국은 북한이 ICBM 재진입 기술 완성을 위해 정상각(30~45도) 발사실험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는데, 북한은 이전과 같은 고각 발사를 택했다. 앞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022년 12월 '북한의 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곧 해보면 될 일이고, 곧 보면 알게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또 고각으로 발사한 건 기술적인 진보보다는 정치적인 메시지 발신에 더 큰 목적이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 대선을 앞두고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감행한 계산된 도발"이라며 "핵 능력 과시를 통해 차기 미국 정부가 북핵 문제 타협을 위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필수 공정" 이례적 빠른 입장 발표
북한이 이례적으로 빨리 ICBM 발사 사실과 김정은의 발언을 전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중앙통신은 발사 채 다섯 시간도 되지 않은 낮 12시 무렵 이를 공개했다.
김정은은 시험발사 현장에서 "이번 발사는 최근 들어 의도적으로 지역정세를 격화시키고 공화국의 안전을 위협해온 적수들에게 우리의 대응의지를 알리는 데 철저히 부합되는 적절한 군사활동"이라며 " 핵무력 강화 노선을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임을 확언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어 "우리가 최근에 목격하고 있는 적수들의 위험한 핵동맹 강화책동과 각양각태의 모험주의적인 군사활동들은 우리의 핵무력 강화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켜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발사를 "우리 국가의 전략공격무력을 부단히 고도화해 나가는 노정에서 필수적 공정"이라고도 표현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전형적인 미 대선용 도발"이라며 "북핵 문제가 시급하다는 메시지를 직접 발신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러가 '핵동맹'이란 걸 부각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가 최근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한 데 대한 맞대응이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30일(현지시간)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극동 캄차카 반도로 야르스 ICBM을 발사한 이튿날 북한이 신형 ICBM을 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와 북한이 핵보유 국가이며 미국에 대항한 전략핵무기 운용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는 모습"이라며 "한·미 핵동맹에 대응하는 북·러 핵동맹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러시아 파병 사실을 숨기는 가운데 신형 ICBM을 등장시켜 핵무력을 과시한 건 내부적인 포석도 있어 보인다. 어린 청년들을 사지로 내몬 데 따른 민심 동요가 우려되자 이를 내부 결속용으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 방러 중 ICBM 도발…사전 조율 있었나
최선희 외무상이 방러 중에 도발을 감행한 건 북·러 간 사전 조율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국제사회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한 반대급부로 러시아 측이 핵추진 잠수함이나 군사정찰위성 기술을 이전할지 여부를 주목하는 가운데 양측이 도발 수위를 논의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직결되는 기술을 러시아가 이전할 경우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응도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
한편 숀 사벳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도 30일(현지시간) 관련 성명에서 "미국은 북한의 ICBM 시험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 발사는 다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의 노골적인 위반"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발사는 북한이 계속해서 자국민의 안녕보다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다.
정영교·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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