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책과 길] 세종시대 꽃 핀 과학문명… 장영실만 있었을까
송성수 지음
이음, 352쪽, 2만3000원
인물로 보는 한국 기술의 역사다. 저자는 부산대에서 ‘인물로 보는 기술의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주로 서양 기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강의에 한국의 사례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쌓였다. 저자는 자료를 찾고 연구를 하며 원고를 하나씩 만들어 갔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이번 책이다. 제목에는 ‘발명’이 들어 있지만 사실 외국의 발명품을 들여와 우리식으로 ‘혁신’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 ‘화약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려말 무인 최무선으로 시작된다. 화약은 중국의 발명품이다. 사실 최무선 이전에도 고려에는 화약이 들어와 있었다. 주로 ‘화산(火山)’으로 불리던 불꽃놀이에 쓰였고 중국제 화포의 위력도 알고는 있었다. 왜구의 출몰로 골치를 앓던 당시 최무선은 ‘왜구를 제어하려면 화약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화약을 전술적 무기로 판단한 것이다. 화약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중국 상인을 집에 들여 수십 일을 먹였고, 화포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직접 원나라에 들어갔다. 주변의 무관심 속에도 화약과 화약 무기 개발을 주도할 관청의 필요성을 역설해 드디어 ‘화통도감’이 설치됐다. 이곳에서 개발된 화약 무기는 18종에 이른다.
‘진포 대첩’에서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왜구를 전멸시키는 성과를 냈다. 진포 대첩은 자체적으로 생산한 화약과 화포로 치른 최초의 해전이었다. 최무선 이후 화약과 화약 무기의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 1600년경에는 세계 최고 수준까지 이르지만 이후에는 정체 내지 침체기로 들어선다. 조선 후기 평화기가 지속되면서 무기 개발에 소홀했고, 왕권이 불안정해지면서 국가 주도의 무기 개발 체제가 구축되기 힘들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조선 세종 때 활약했던 장영실은 오늘날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이자 기술자로 추앙받고 있다. 저자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낸다. 장영실은 세종 시대 과학 문명을 꽃피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장영실이 천문관측 기구와 해시계와 측우기 등을 모두 만들었다는 ‘신화’가 펴져 있다. 실상은 장영실이 만든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계식 시계인 ‘자격루’(물시계)와 함께 물시계와 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혼천의를 결합한 ‘옥루’ 정도였다. 측우기는 장영실이 아니라 훗날 문종이 되는 이향이 만들었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제작 과정에서 장영실과 같은 기술자의 도움을 받았을 수는 있다.
장영실에 가려진 조선의 과학기술자들도 많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혼천의 등 천체관측 기구 제작을 책임졌고 금속 활자 제작에도 큰 공을 세운 무관 출신 이천과 조선의 역법을 정립한 ‘칠정산’을 쓴 이순지가 꼽힌다. 저자는 “한 개인이 모든 것을 다 했다는 식의 신화를 넘어서야 한다”면서 “그렇다고 장영실이 ‘조선 최고의 기술자’였다는 명성에 흠이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 사람에 의해 과학 기술이 발전했다는 ‘영웅 신화’에 대한 경계는 우두법 보급으로 천연두 퇴치에 공을 세운 지석영 편에서도 유지된다.
일제는 “지석영이 일본의 도움을 받아 조선인의 무지와 조선 정부의 무능을 무릅쓰고 홀로 우두법을 보급했다”는 주장을 퍼트렸다. 지석영이 조선 우두법 역사에서 두드러졌던 인물인 점은 분명하고, 일본인으로부터 우두법을 배운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두법은 이미 19세기 초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에 의해 조선에 소개됐고, 조선 정부는 일제 강점기 전 1885년에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우두법을 전국적으로 시행했다. 저자는 “여러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한 개인의 업적을 칭송하면 영웅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책은 한국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 개발을 이끈 최순달, 한국 철강 산업의 기초를 닦은 박태준도 소개된다. 현재 한국 경제의 기반인 반도체(삼성), 자동차(현대차) 등의 혁신 역사도 살핀다. 냉정한 평가와 비판적인 시각이 끝까지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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