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장밋빛 회상과 강요된 낭만

2024. 11. 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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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젊은 세대 ‘공업’축제 거부감
미래 염두에 둔 정책 세울 때
흘러간 과거 미련 버려야

울산에서는 지난 10월 10일부터 나흘간 ‘울산공업축제’가 열렸다. 공업축제는 박정희 정권 시기인 1967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끝난 것을 기념해 시작됐으며, 작년에 울산시가 이 축제의 부활을 결정하면서 지역사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특히 ‘공업’이라는 축제 이름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과거 관주도로 진행됐던 공업축제는 당시로서는 주민들이 대규모로 동원되는 지역 최대의 문화 행사였다. 그러나 공단 조성에 따른 환경문제와 공해가 심해지면서 ‘공업’에 대한 이미지는 점차 부정적으로 변했다. 더불어, 민주화 흐름 속에서 권위주의적 동원 행사에 대한 거부감도 강해졌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89년 축제의 명칭은 ‘울산시민대축제’로 변경됐고, 이후 91년부터는 ‘처용문화제’로 이름을 바꿔 30여년 동안 이어져 왔다.

이번 ‘공업축제’의 부활은 울산 지역의 역사, 특히 60년대 이래 집중적으로 이뤄진 공업 발전에 대한 인식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울산시장은 ‘울산에서 공업은 더 이상 공해가 아니다’ ‘울산 제조업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되찾고자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공업’을 현대 도시의 상징으로 되살리는 데 대한 의문과 비판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 반면 일부에서는 ‘예전 공업축제의 재미를 알지 못해서 나오는 말’이라는 향수 어린 지지의 목소리도 있었다.

50, 60년대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다. 절대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와 개인이 쏟아부은 노력으로 이뤄낸 경제성장의 역사에서, 62년 ‘공업센터’로 지정된 울산은 그 ‘국가적 기적’의 상징이었다. 이렇듯 극적인 발전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대중적 이벤트가 바로 공업축제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낭만적으로 회상하는 경향이 있으며,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 복고가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성세대가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고 그리움이나 향수를 느끼는 현상을 ‘장밋빛 회상’이라 한다. 이는 마치 장밋빛 렌즈를 낀 것처럼 실제보다 훨씬 멋지고 긍정적으로 과거를 기억하는 현상으로, 자기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었던 시기를 특별히 의미 있게 여기는 심리와도 연결돼 있다. 동시에 이는 현재의 불안이나 괴로움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를 낭만적으로 보는 것은 자칫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이는 다음세대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줄 수 있고, 과거의 실제 상황과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게 만들 수 있다. 또 발전 과정에서 누적된 경제적 불평등이나 사회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간과하거나 현재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평가절하하게 만들 우려도 있다.

장밋빛 회상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 것을 전적으로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를 미화하거나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특히 오늘날의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과거 인식을 그대로 공유하기 어렵다. 그들이 당면한 문제와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완전히 달라졌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공업축제의 부활과 같은 결정은 ‘강요된 낭만’으로 비칠 수 있다. 기성세대가 장밋빛 회상을 통해 당시의 열정과 성취를 강조할수록, 젊은세대는 자신이 처한 현실과 그들의 낭만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의 젊은세대에게 굴뚝은 자랑이 아니며 검은 연기 역시 희망을 상징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들은 안전하고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기를 원한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는 말처럼 강은 변함없는 듯 보이지만 어제의 강물은 이미 바다로 흘러가 버렸다. 적어도 미래를 염두에 둔 계획과 정책을 세울 때는 어제 흘러가 버린 강물에 대해서는 미련을 버리고, 지금 앞에 펼쳐진 물결을 바라봐야 한다.

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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