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바꿔볼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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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일본 자민당이 야당으로 밀려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어떻게든 정권을 지켜내려고 진땀을 빼게 된 지금 상황을 의외라고 하긴 어렵다.
일본 정치권 안팎의 기류가 전과 같지 않다는 건 당내 비주류 이시바 시게루가 차기 총리로 선택된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로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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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일본 자민당이 야당으로 밀려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어떻게든 정권을 지켜내려고 진땀을 빼게 된 지금 상황을 의외라고 하긴 어렵다. “이제 좀 바꾸자”는 여론은 쌓이고 쌓여서 이미 숨길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올해 5월 FNN(후지뉴스네트워크)·산케이신문 공동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를 원한다는 응답자는 거의 절반인 49%로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 유지를 원한다는 사람(40%)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많았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선 정권 교체 희망자가 54%로 유지 의견(33%)을 20% 포인트 넘게 웃돌았다. 아사히와 요미우리신문이 조사한 비례대표 투표 의향은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일본유신회 지지율 합계가 자민당에 맞먹었다.
일본 정치권 안팎의 기류가 전과 같지 않다는 건 당내 비주류 이시바 시게루가 차기 총리로 선택된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로도 알 수 있었다. 후보 9명이 경쟁한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에게 적잖은 표 차(특히 국회의원표)로 밀렸던 이시바는 1, 2위 양자 대결인 2차 투표에서 다른 7명 후보에게 분산됐던 표를 상당 부분 흡수하며 역전승했다. 선호와 셈법이 제각기 다른 의원들이 다카이치 대신 이시바에게 표를 던진 건 그가 더 매력적이거나 압도적인 리더라서가 아니라 자민당 정권에 대한 불만과 피로감을 증폭시킨 기성 지도부나 정치자금 스캔들 같은 논란과 선을 그을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베파나 아소파 같은 계파에 속하지 않고 독자 노선을 유지하며 개혁 성향을 보여온 이시바는 자민당 입장에서 이미지 쇄신을 위한 변화구였다.
유권자 신뢰 회복이 임무인 이시바 정부였지만 한 달 전 출범하면서 국민으로부터 받은 지지는 맥빠지는 수준이었다. 가장 먼저 공개된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새 내각 지지율은 간신히 절반을 넘긴 50.7%로 출범 초 기준 기존 최저였던 전임 기시다 후미오 정부(55.7%)보다 낮았다. 뒤이어 발표된 여러 조사에서도 50% 안팎 지지율로 ‘역대 최저’ 타이틀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총선을 2주가량 앞두고 실시된 NHK 조사에서는 44%로 미끄러졌고, 비슷한 시기 지지통신 설문으로 나온 지지율 28%는 “더 볼 것도 없으니 물러나라”는 여론이나 다름없었다. 앞서 기시다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재출마하지 않기로 하면서 총리직을 내려놓은 건 용단이 아니라 20%대 지지율에 떠밀린 결정이었다. 임기 말 기시다를 두고 ‘산송장’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었는데 이시바는 출발부터 산송장 같은 처지였다.
‘새로운 자민당’이라고 해봐야 사람들 눈엔 ‘결국 자민당’이다. 그런데 당 중진들마저 노골적으로 새 리더를 흔들어대니 유권자들은 더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당내 영향력 원톱인 아소 다로 전 총리는 총재 선거 후 다카이치에게 “이시바의 총리 수명이 1년도 안 될 수 있으니 다음을 준비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자민당 부총재에서 고문으로 밀려난 아소는 신임 집행부 출범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거부했고, 다카이치는 이시바가 제안한 총무회장직이 성에 안 찬다며 거절해 킥오프에 잡음을 냈다. 총선 과정에선 ‘뒷돈 의원’ 공천 배제 등을 놓고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불협화음은 자민당이 과연 제대로 해볼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위태로워진 자민당이지만 일본 정치로 보자면 어떻게든 체질을 바꿔볼 기회다. 한 정당이 지난 69년 중 65년을 장악한 일본 의회가 건강하다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원래 난리가 나야 마지못해라도 관성을 깨게 된다.
강창욱 온라인뉴스부 차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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