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괄호 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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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택시 안에서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니, 코가 시큰했다.
나는 그제야 마음의 괄호 안에 꾹 눌러 담았던 눈물샘을 열었다.
시절 출판사에서 펴낸 '괄호 안 하트'도 우리의 마음이 무수히 여닫았을 '괄호'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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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선생님 집으로 가려면 서울 후암동 종점에서 내려야 했다. 108계단을 올라 교회 옆 붉은 벽돌로 지은 구옥 빌라를 찾아갔다. 5층까지 가파른 철제 계단이 이어졌다. 남산타워가 파르페에 꽂은 종이우산만 하게 보이는 곳. 그곳이 선생님 댁이다. 선생님은 하늘과 가까운 곳에 살지만, 집 밖으로 나와서는 땅 가까이 몸을 낮추고 다닌다. 차 밑이나 후미진 골목에 길고양이 밥을 놓아두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따뜻하게 데운 물과 사료를 내놓고, 나는 옆에서 우산을 들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하루쯤 길고양이가 끼니를 거른다고 무슨 큰일이 일어나겠는가. 선생님의 건강도 염려되고, 이런 푸념이나 속에 담는 자신이 못마땅했다. 만약 배급을 거른다면 춥고 배고픈 길고양이들을 외면했다는 가책 때문에, 선생님은 더욱 상심했을 것이다. 배급을 마치고 나니, 막차가 끊긴 시각이었다. 선생님은 쓰러질 듯이 지쳐 보였다. 하지만 피곤한 내색 없이 배웅해 주셨다. 나를 향해 선생님이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택시 안에서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니, 코가 시큰했다. 백여 마리나 되는 생명을 하루도 빠짐없이 돌보는 것.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는 일은 얼마나 고된가. 나는 그제야 마음의 괄호 안에 꾹 눌러 담았던 눈물샘을 열었다.
시절 출판사에서 펴낸 ‘괄호 안 하트’도 우리의 마음이 무수히 여닫았을 ‘괄호’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숨기는 용도로 마음에 괄호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오종길 작가는 괄호의 의미를 확장한다. “괄호가 나의 감정을 감추는 용도가 아니라, 누군가를 감싸는 일에 유용하게 쓰이길 바란다”라고. 그 다짐이 다부지고 미덥다. ‘감추다’와 ‘감싼다’. 그 한 글자에 따라 마음가짐이 내부에서 외부로 넓어진다. 종이 위에 괄호를 그려 본다. 누군가 안을 때 우리는 양팔을 넓게 벌린다. 괄호처럼.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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