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아관파천 고종, 30대 독일 여성 손탁에게서 첫 커피 맛 음미
손탁의 정동화옥과 고종의 커피
서양 근대의 멋과 커피를 비롯한 근대의 맛도 여기로 들어와 조선 각지로 퍼져나갔으니 문화의 거리 역할도 담당했다. 또 이곳에는 미국공사관을 위시해 러시아공사관, 프랑스공사관, 벨기에공사관, 영국공사관 등 구미 공관들이 대거 들어선 외교의 거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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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양 갖춘 손탁, 경성 외교가의 꽃
러시아공사관서 만난 고종과 친분
고종 하사한 기와집, 호텔로 개조
정동구락부 사랑방으로도 활용
숱한 근대사의 비화 간직한 공간
건너편 첫 서양식 호텔은 사라져
」
그런데 이 길은 만추(晩秋)에 걸어야 제격이다. 단풍이 우수수 떨어지고 나면 고즈넉하면서도 우수에 젖은 분위기가 흠뻑 배어나서다. 고종은 세자와 함께 1896년 2월 칼바람이 쌩쌩 부는 어느 날 새벽에 궁녀의 가마를 타고 경복궁을 몰래 빠져나와 이 길 초입에 있는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을 의식하고 만추에 이 길을 걸으면 망해가는 조선의 비운과 어우러져 마음이 더욱 스산해진다. 러시아공사관 자리는 조선 초에 숲 정원인 상림원(上林園) 자리였는데 나무가 모두 베어져서인지 백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을씨년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청나라 지원한 고종과 민씨 정권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한 건 1895년 10월에 발생한 을미사변, 즉 민왕후 시해 사건 이후 신변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1895년 4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나라를 제치고 조선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자 청을 암암리에 지원한 고종과 민씨 정권 인사들의 입장이 난감해졌다.
이때 청일전쟁의 승리로 획득한 랴오둥(遼東)반도를 일본이 러시아의 압력으로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민씨 정권은 러시아를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새로운 희망으로 보고 러시아로 기울어졌다. 이에 격분한 일본 극우파 집단이 민왕후를 시해하자 이때부터 고종은 공포에 휩싸였고, 이를 눈치챈 신하들에 의해 아관파천이 이뤄졌다. 그러자 일본은 조선에서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그러나 아관파천을 계기로 칼 이바노비치 베베르 주한 러시아 공사에게는 전성기가 도래했다. 주재국 왕이 자진해서 자신의 집무실로 피신해 왔으니까 말이다. 베베르는 아관파천이 있기 넉 달 전인 1885년 10월에 부임했으니 행운도 따랐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인아거일(引俄拒日), 즉 조선이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일본을 배척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4개월 만에 그 꿈을 실현한 셈이었다.
불과 5년여 전만 해도 고종은 러시아를 경계해 “러시아가 요즘 천하에 횡행해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 찬 것처럼 분분하다”고 거부감을 토로했다. 이는 러시아를 견제해 작성한 청나라 관리 황쭌셴(黃遵憲)의 『조선책략』에 따른 영향 탓이다.
고종은 아관파천이 있기 전부터 경복궁에 베베르 공사를 수시로 불러들여서 국정을 상담했다. 이에 이완용·이범진·박정양·서광범 등은 아예 친러파임을 선언했다. 고종은 베베르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서구 외교관들을 통해 서양인에게 각종 이권을 나눠줬다. 이는 베베르가 서구 외교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공작의 일환이었다.
‘손대지 말라’는 노터치가 노다지로
이에 따라 호러스 알렌 미국공사관 서기관을 통해선 평안도 운산금광이란 엄청난 이권이 미국인에게 제공됐다. 아니나 다를까 알렌은 베베르가 주도하는 반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당시 조선 노무자에게 금에 손대지 말라는 ‘노 터치(no touch)’란 말이 변해 운산금광이 노다지 금광이라 불렸다.
베베르 공사 못지않게 고종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또 한 명의 서양인이 있었는데 프랑스 알자스 지역 출신의 독일 여성 앙투아네트 손탁(1854~1922)이다. 당시 32세였던 그녀는 베베르 공사 부인의 올케로 베베르 공사가 조선에 부임할 때 친인척 자격으로 함께 들어왔다.
그녀는 프랑스어·독일어·영어에 능통했고, 온화한 풍모와 단아하고 우아한 용모까지 갖춰 단연 ‘경성(京城) 외교가의 꽃’이었다. 당시 조선 왕실은 개항을 맞아 대외교섭을 위해 외국어에 능통하고 교양을 갖춘 인물을 절실히 필요로 했는데 손탁이 이에 딱 맞아떨어졌다.
손탁은 베베르의 추천을 받아 처음에는 왕실 업무를 총괄하는 궁내부(宮內府)에서 통역 일을 담당했다. 그 후 한국어를 빠르게 습득하자 조선 외교에 귀와 입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음식 솜씨도 뛰어나 그녀가 만든 음식으로 고종이 자주 식사하자 왕실 조리부터 연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책임지는 으뜸 시녀의 지위에 올랐다.
그녀는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라 불릴 만해서인지 고종에게 처음 가비(咖啡), 즉 커피를 맛보게 하고 이후 수시로 대접하면서 고종과 늘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손탁이 이런 식으로 고종과 러시아공사관을 연결하자 조선 조정은 잠시나마 일본을 견제할 수 있었다.
손탁호텔, 이토 히로부미도 여장 풀어
1895년 베베르 공사가 이임해 손탁이 러시아공사관에 더 머물 수 없게 되자 고종은 그녀에게 러시아공사관 입구의 기와집 한 채를 선물했다. 그녀는 3년 후 여기를 방 다섯칸짜리 서양식 건물로 개조해 호텔로 만들었다. 건물이 너무나 아름다워 사람들은 정동화옥(貞洞華屋)이라 불렀다.
서구 열강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하려는 조선의 뜻있는 인사들이 이 호텔에 모여 구성한 정동구락부의 사랑방으로도 활용됐다. 아름다운 집 이상의 역할을 한 것이다. 정동구락부의 주요 구성원은 이완용·서재필·윤치호·이상재 등이었고, 이들을 포함해 정동구락부 구성원의 상당수가 나중에 독립협회로 옮겨가 활동했다.
손탁은 경인철도 개통(1899년) 3년 후인 1902년 정동화옥 건너편에 러시아풍의 2층짜리 빨간 벽돌로 된 손탁호텔을 새로 지었다. 조선을 둘러싼 외교 환경이 급변한 데다 경인철도를 통해 몰려드는 외국 귀빈을 정동화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손탁호텔은 객실이 30개 규모였는데 2층에는 귀빈실, 1층에는 일반 객실과 레스토랑이 있었다.
손탁호텔은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기록된다. 1905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하기 위해 한성에 와서 여장을 푼 곳도 손탁호텔이다. 그는 여기서 조선 대신들을 불러 놓고 조약체결을 위해 회유하고 협박했다.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 세력이 조선에서 크게 퇴조하자 손탁호텔도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한일강제병합(1910년)을 1년 앞둔 1909년 9월 손탁이 일본에 의해 사실상 추방됨으로써 손탁호텔을 어쩔 수 없이 매각해야 했다. 1917년 이 호텔은 다시 이화학당에 팔려 기숙사로 활용됐으니 류관순 열사도 여기를 거쳐 간 셈이다. 1922년에는 이 호텔 자리에 프라이 홀(Frey Hall)이 신축되면서 근대사의 숱한 비화를 간직한 곳이 흔적없이 사라졌다. 지금 여기에는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손탁, 변절한 이완용과의 악수 외면
손탁이 처음에는 러시아 국익을 위해서 활동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의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서 조선을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애썼다. 당시 조선 외교가의 평가처럼 자애롭고 맑은 사람이라 이처럼 처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강제 출국에 앞서 상당한 재산을 교회와 자선기관에 기부하고, 프랑스 남부 휴양지 칸에 아담하고 깔끔한 별장을 지어 말년을 유유하게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베베르 공사 부인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에 예치했던 재산 대부분을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제정러시아가 몰락하면서 잃었다. 1925년 러시아에서 객사했는데 그때 71세였다.
구한말 조선 외교의 한가운데 있었고, 당시 궁중 역사를 훤히 꿰뚫던 그녀가 이렇게 죽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여생을 편히 보내면서 기록이라도 남겼으면 구한말 외교사를 훨씬 실감 나게 들여다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손탁은 그녀의 환송연에 찾아온 이완용과 마주했을 때 악수조차 하지 않고 외면했다. 정동구락부의 거두이자 정동화옥 사랑방의 좌장이던 이완용이 10년 만에 친러파 수장에서 친일파 수장으로 변신해서다. 그녀의 눈에도 이런 변신이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만추의 계절에 마주한 정동길 낙엽이 오늘따라 더 선명한데 혹시 순수하고 맑은 손탁의 마음으로 읽혀서인가?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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