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의 직격인터뷰] “미 대선 결과 본 뒤 미국·유럽과 보조 맞춰 대응을”

정용수 2024. 11. 1. 00: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크라·러 양국 대사 역임한 박노벽 - 북한 참전으로 새 국면 맞는 우크라 전쟁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반도와 유럽의 안보 지형이 흔들리고 있다.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미국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 주검이 돼 돌아갈 것”(로버트 우드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이라며 경고 수위를 높였다. 북한과 러시아는 “양국의 관계 발전은 정당한 권리”라고 맞받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러시아가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한 직후, 북한도 31일 역대급 비행 시간을 기록한 신형 ICBM을 발사하며 핵카드를 통한 긴장 고조에 나서고 있다.

「 북한 끌어들이며 러 위상 추락
낯선 환경서 북 큰 피해 가능성
미 대선 결과에 전쟁판도 격변
살상무기 성급 지원 자제해야

박노벽 전 우크라이나·러시아 대사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북한의 참전에 미국이나 유럽, 서방이 병력 파병 등으로 맞대응할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군이 드론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한 현대전 경험을 쌓을 경우 한국군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참여 명분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의 나라’ 전쟁만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각각 대사를 역임한 박노벽 전 대사는 “북한군의 참전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국제화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도발”이라며 “한국은 오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움직임과 보조를 맞추면서 대응 전략을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전 대사와 일문일답.

안보지형 흔드는 북·러 밀착

Q : 우크라이나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A :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한정돼 있었다. 북한군이 전장에 투입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 전쟁이 국제적인 갈등을 고조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유럽과 한반도 안보에 위협이 되는 위험한 단계라 할 수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Q : 러시아의 군사력은 세계 2위다. 북한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인가.
A : “러시아는 북한군을 끌어들이며 국제적 위상의 추락을 자초했다.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 루카센코 대통령마저 ‘말도 안 된다. 사실이라면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쟁이 32개월 동안 이어지며 러시아군은 60만명 가까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 현재도 50만명 가까이 참전하고 있다. 러시아에 예비군이 있지만 국내 반발을 우려한 푸틴 대통령이 자국의 추가 병력 동원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군사적으로 북한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Q : 확전 우려가 있다.
A : “그것이 러시아가 노리는 부분이다. 우크라이나가 지난 8월 러시아 본토인 쿠르스크를 공격했을 때 서방 국가들이 말리지 않은 것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그렇다면 나도 이 전쟁을 국제전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식으로 긴장을 고조하고,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도울 경우 ‘북한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지원받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다.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다. 여기에 북한이 동조하면서 한국의 안보에도 위험한 게임이 되고 있다.”
북한군, 러의 인해전술에 희생 커질 듯

Q : 북한군을 쿠르스크 탈환에 투입하겠다는 것인지.
A : “러시아는 향후 휴전 협상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쿠르스크 탈환이 시급하다. 러시아는 대대적인 포격 후 병력을 투입하는 인해 전술을 펼치는데, 여기에 북한군을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8월 6일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 러시아도 영토를 침범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판단으로 쿠르스크를 공격했다. 러시아가 돈바스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을 쿠르스크로 이동시킬 것으로 우크라이나가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러시아는 오히려 돈바스 지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쿠르스크는 그대로 뒀다. 그러다 북한 병력을 투입해 탈환을 시도하겠다는 전략인듯하다.”
미국 CNN방송은 미 정보 당국자를 인용해 “북한군이 이미 우크라이나에 진입했다”고 보도했고, 현지에선 이미 북한군이 전투에 참여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Q : 북한군의 대규모 피해가 불가피할 텐데.
A : “쿠르스크는 한반도 북단보다 위도 8도가량 북쪽이다. 벌써 한겨울이다. 더구나 그곳은 평야다.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처럼 독일군과 소련군이 쿠르스크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100만 이상, 독일군은 4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다. 쿠르스크가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노출된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북한군의 대규모 피해가 예상된다.”

Q : 그럼에도 북한이 파병한 이유는.
A : “우리 정보 당국이 이미 공개한대로 군사 기술과 금전적 지원 때문이다. ICBM 재진입 기술이나 1인당 월 2000달러의 보상은 북한에 적지 않은 대가다. 식량, 에너지, 군사 기술,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전략적 지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6월 새로운 조약을 맺어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참전’을 약속했다. 다만 이런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는 약속 어음과 같은 것이다. 북한이 요청한 ‘쇼핑 리스트’를 러시아가 다 줄 것인지는 북한의 추가 파병이나 전쟁 진행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Q : 북한군의 파병이 러시아에 도움이 될까.
A : “그건 실제 전투를 해 봐야 검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3000명이든 1만명이든 쿠르스크에 북한군이 투입된다면 인해 전술을 구사하는 러시아엔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안 그래도 지금 밀리는 분위기인 우크라이나는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

Q : 미국의 분위기가 강경해 졌다.
A :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신중한 입장이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서도 확전 가능성을 우려해 러시아와 직접적인 충돌을 꺼렸다. 북한군 투입으로 상황이 변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우크라이나가 희망하는 미사일의 러시아 본토 공격 허용이나 나토의 개입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10월 초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을 찾아 지원을 요청했지만 여의치 않은 것 같다. 오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대응 수위가 결정될 것 같다.”
러시아는 스윙스테이트

Q : 북한군을 철수시킬 수 있는 방법은.
A :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현재 상황에선 쉽지 않다. 최근 최선희 외무상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세르게이 쇼이쿠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비서가 평양을 찾았다. 오히려 양국의 공동 대응과 추가 파병을 논의했을 수 있다. 현재 대선을 치르는 미국의 여력이 없는 상황을 북·러가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단, 미 대선 이후 양측이 휴전 논의를 한다면 북한군의 러시아 주둔 이유는 사라진다. 휴전 분위기 조성을 위한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러시아는 2010년대 중반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에 찬성하는 등 북한과 소원한 관계를 보였다. 북한도 옛 소련을 사회주의를 버린 변절자라며 거리를 두기도 했다.

Q : 한때 소원했던 북·러 관계가 혈맹 수준으로 바뀐 계기가 뭔가.
A : “2016년 초의 일이다. 러시아 외교부에서 음력설을 지내는 아시아 국가 대사들을 불러 행사를 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러시아 차관급 인사가 북한 대사를 불러 구석으로 데려가더니 둘이 논쟁을 벌이더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해 러시아가 경고하는 듯 했다. 북한 대사는 ‘우리(북)의 필요 때문에 하는 것’이라며 맞받으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때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찬성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 관계가 완전히 바뀌었다.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러시아다. 러시아는 전략적 이익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스윙 스테이트’처럼 행동한다.”

Q : 현재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대사에 재임 중이라면 정부에 뭐라고 건의할 건가.
A : “자칫 현직 대사들을 압박할 수 있어 말을 아끼고 싶다. 다만, 북한군의 파병은 한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북한군의 움직임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한발 앞서서 살상 무기를 지원할 경우 국내외적으로 논란만 야기할 수 있다. 정부는 관련 국가들과 다각도로 접촉하고 협의하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 냉철한 상황 인식과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한·미 간 조율이 필수다. 동시에 러시아의 전략적인 입장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상황 관리를 해야 한다.”
◆박노벽 전 대사=1979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스위스, 러시아, 미국 등에서 서기관·참사관으로 근무했다. 북미 2·3과장을 거쳐 장관보좌관, 구주국장을 역임해 미국통 및 유럽통으로 꼽힌다. 노무현 정부 때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조정실 국장을 한 뒤 2008년 주우크라이나 대사, 2015년 주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