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수의 카운터어택] 해영이 아빠, 정회열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가 지난달 28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7-5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V12(12번째 우승, 옛 해태 포함)를 달성했다. 그로부터 8시간쯤 지난 29일 새벽,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한 KIA 팬(@rainb5w)이 합성한 사진 한장이 올라왔다. 사진 속 두 사람 중 한쪽은 전날 우승 확정 순간의 KIA 마무리 투수 정해영이었다. 다소 빛바랜 다른 한쪽 등에는 숫자 25와 가슴보호대 줄에 한 글자가 가려진 ‘정O열’이란 이름이 보였다. 팬은 친절하게도 그가 어느 순간의 누군지 적어 놓았다. ‘1993년 V7의 순간 해태의 엔딩 포수 정회열’. 그 합성사진은 정해영이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면서 널리 퍼졌다. 정해영은 사진 옆에 이렇게 썼다. “아빠 우승이에요!” 정해영(23)은 정회열(56)의 차남이다.
옛 기사를 뒤적여 31년 전 그 밤을 복기했다. 1993년 10월 26일. 공교롭게도 그해 한국시리즈도 해태와 삼성의 대결이었다. 해태는 6차전까지 3승1무2패로 앞서, 1승만 더하면 우승이었다. 3-0으로 앞선 해태는 6회 초 일찌감치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을 마운드에 올렸다. 선동열은 1점을 내줬지만, 결국 4-1 승리를 지켰다. 9회 초 삼성 마지막 타자 이만수의 땅볼 타구를 해태 유격수 이종범이 잡아 1루에 송구하면서 우승을 확정했다. 그 순간 마운드에 주저앉은 선동열을 향해 포수 정회열이 달려나갔다. 합성사진 속 뒷모습이 바로 그 순간이다. 해태에는 7번째 한국시리즈이자 7번째 우승, 삼성에는 6번째 한국시리즈이자 6번째 준우승이었다.
많은 사람이 합성사진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콧날이 시큰했다” “목이 메었다”고들 했다. 시간(31년)과 공간(잠실과 광주)을 가로질러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정회열-해영 부자 모습에서, 시공간을 가로질러 딸에게 닿으려 했던 영화 ‘인터스텔라’ 속 5차원 도서관 장면의 주인공 쿠퍼를 떠올린 건 아닐는지. 우승 세리머니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정회열은 “1993년에는 주전 포수 장채근도 있고 해서 나는 조연으로 우승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해영이는 주연급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또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에 정해영은 “아버지는 조연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 마음속에는 항상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또 저에 대한 자부심으로 더 행복하실 수 있게 열심히 해서 효도 많이 하겠다”고 말했다.
빼놓을 뻔한 게 하나 있다. KIA 우승을 지켜본 소감을 묻자 정회열의 첫 대답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다른 아버지들께 미안할 따름”이었다. 부디 정회열 아들 해영이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해영이 아빠처럼 패한 상대를 배려하고 토닥일 줄 아는 승자가 되기를 바라본다.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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