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 뺀 한·미 공동성명…북에 잘못된 신호 줄 우려
한·미가 올해 제56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내용을 빼 비판받고 있다. 양국 국방 수장의 고위급 정례 회의체에서 가장 중요한 대북 목표가 누락된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SCM에서 다른 중요 사안을 우선 다룬 것일 뿐 비핵화 목표는 견고하다”는 게 국방부의 해명이지만, 비핵화보다는 핵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보는 미 워싱턴 조야의 분위기가 작용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펜타곤(미 국방부 청사)에서 SCM을 개최하고 내놓은 공동성명을 보면 비핵화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SCM에서 꾸준히 명시한 비핵화가 사라진 건 올해로 9년 만이다.
성명에는 “양측은 동맹의 압도적 힘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조율해 나가는 동시에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을 단념시키고 지연시키는 노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돼 있다. 지난해 성명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양측은 동맹의 압도적 힘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는 동시에 제재와 압박을 통해 핵 개발을 단념시키고, 대화와 외교를 추구하는 노력을 위한 공조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를 두고 미 정부 안팎에서 제기되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지난 3월 ‘중앙일보-CSIS 포럼 2024’에서 “북한과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의 조치’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통상 ‘중간 조치’는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북한의 핵 동결·감축에 상응해 대북제재 완화 등 대가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고위 당국자가 처음 이에 대한 논의 가능성을 공식화해 주목받았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견고히 견지하고 있다”면서 확대 해석하지 말아 달라는 입장이다. 비핵화 의제는 한·미 외교·국방장관 2+2 회담(31일)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 만큼 SCM에선 북한 핵 능력 고도화에 따른 대응 방안에 집중했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공동성명까지 나오는 제도화된 SCM은 2+2 못지않게 의미가 크다”며 “한·미 동맹에서 가장 중요한 핵 억제와 비핵화가 SCM에서 빠졌다면 지금 한·미 동맹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대북 대화를 강조하던 문재인 정부 시기 2018년 SCM 공동성명조차도 비핵화라는 단어를 세 차례나 넣고 한반도 평화의 목표만큼은 분명히 했다”며 “동맹의 목표가 훼손된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북한은 지난달 28일 유엔총회 제1위원회(군축·국제안보 담당) 회의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개념은 이제 이론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소멸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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