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로 드러난 삼성 반도체 위기론
삼성전자 위기론이 수치로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준 가운데, 올 3분기 ‘어닝쇼크’를 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올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으로 삼성전자를 또 제쳤다. 과거 삼성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풍경이 연달아 펼쳐지는 중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DS) 위기론은 모바일경험(MX)사업부까지 확산 중이다. 삼성전자가 내년 초 출시할 신작 ‘갤럭시 S25’에 자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탑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져 MX사업부 원가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잇따른다. AP는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으로 MX사업부 손익 구조를 좌우한다. 삼성은 시스템LSI(설계)·파운드리(공정)사업부 주도로 AP 내재화에 자원을 쏟아부었지만, 낮은 수율(생산품 중 양품 비율) 문제로 번번이 ‘AP 독립’에 차질을 빚었다. AI 스마트폰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삼성 MX사업부의 AP 관련 원가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다.
반도체 부진 여파 MX사업부로
삼성전자가 만년 2위로 평가받던 SK하이닉스에 제대로 자존심을 구겼다. 최근 SK하이닉스는 연결 기준 올 3분기 영업이익이 7조3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전분기 5조4685억원보다 28.6% 늘어난 수준이다.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치였던 6조8000억원대를 큰 폭 웃돌아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새로 썼다. 특히 이번 영업이익은 경쟁사이자 세계 메모리 1위 삼성 반도체사업부를 추월했을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에서 삼성 DS 부문을 앞선 것은 양측 모두 흑자를 낸 분기 기준 올 1분기(SK하이닉스 2조8860억원·삼성전자 1조91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다.
반도체발 삼성 위기론은 다른 사업부 실적에도 실질적인 악영향을 끼칠 조짐이다. 시스템LSI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 부진으로 AP 적기 공급이 차질을 빚자 MX사업부 손익 통제력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단 진단이다. IT업계에 따르면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5에는 현재 개발 중인 자체 AP ‘엑시노스 2500’보다 미국 퀄컴 ‘스냅드래곤8 4세대’를 채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의 AP 엑시노스는 CPU(중앙처리장치), GPU(그래픽처리장치), 모뎀 등 시스템 블록을 하나의 칩으로 구현한 SoC(시스템온칩)다. 시스템LSI가 SoC 설계를, 파운드리가 공정을 맡는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시장 상황에 따라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을 병행했지만, 이번에는 스냅드래곤을 전량 적용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당초 엑시노스 2500은 삼성전자의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파운드리 공정에서 양산 예정이었다. AI 기능 고도화로 AP 공정 난도가 뛰면서 양산 수율 확보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다.
갤럭시 S25에 스냅드래곤이 전량 탑재되는 시나리오는 삼성 MX사업부에는 적잖은 부담이다. 엑시노스를 탑재 못하면 퀄컴을 상대로 한 가격 협상력에서 열위에 처해 이익률 확보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삼성이 갤럭시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AP 성능을 두고 크고 작은 논란에 휘말렸음에도 스냅드래곤과 엑시노스를 병행했던 이유다. 삼성전자는 최근 10년간 신형 갤럭시 시리즈에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 제품을 혼용 탑재하는 ‘듀얼칩’ 전략을 폈다. 예컨대 갤럭시 S시리즈 중 프리미엄 ‘울트라’ 모델에는 퀄컴 스냅드래곤을, 비교적 저사양인 ‘베이직’ ‘플러스’ 모델에는 엑시노스를 탑재하는 식이다.
MX사업부 실적 ‘경고등’
원가 부담 갈수록 커져
삼성의 ‘AP 독립’ 스텝이 자꾸만 꼬이면서 MX사업부는 실적 경고등이 켜졌다. 손익을 좌우하는 AP 관련 원가 부담이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MX사업부는 모바일 AP 매입에 2021년 6조211억원, 2022년 9조3138억원, 지난해 11조7320억원을 썼다. 삼성 엑시노스 시리즈가 퀄컴 스냅드래곤과 병행되던 2018~2019년에는 모바일 AP 연간 구매 비용이 2조7000억~2조9000억원대였다. 5년 사이 AP 매입 비용이 4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삼성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퀄컴 스냅드래곤이 전량 탑재되는 등 AP 내재화가 차질을 빚은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산업계 시각이다.
이 여파로 삼성 모바일(MX·NW)사업 부문은 매출은 상승세지만, 영업이익이 추락하는 구조적인 문제에 노출됐다. 지난해 2분기 삼성 MX·NW 부문은 매출 25조5000억원, 영업이익 3조400억원을, 같은 해 3분기에는 매출 30조원, 영업이익 3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 2분기에는 매출 27조4000억원, 영업이익 2조2300억원에 그쳤고 3분기에는 전분기보다 매출이 소폭 늘었지만 2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김형태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원가 부담 가중으로 전년 대비 영업이익 규모가 20.5%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삼성이 독자 AP 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무엇보다 삼성이 엑시노스를 포기하고 퀄컴에 AP 전량을 의존할 경우, 갤럭시 S25 출고가는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판매량 등 실적에도 큰 부담이다. 지난 9월 IT 매체 WCCF는 삼성전자가 갤럭시 S25 시리즈에 스냅드래곤만 탑재한다면 AP 가격 인상으로 갤럭시 가격이 많게는 30%가량 오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애플, 화웨이 등과 피 말리는 점유율 전쟁을 벌이는 것에 비춰, 삼성에는 만만찮은 악재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삼성이 엑시노스 대신 대만 미디어텍 AP를 갤럭시 S25에 채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미국 IT 전문 매체 폰아레나는 “미디어텍 AP ‘디멘시티 9400’이 갤럭시 S25 베이직·플러스 모델에 탑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AP 내재화를 달성할 묘책 달성이 단기간 난망하다는 데 있다. 삼성 AP 내재화의 걸림돌은 결국 수율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 지적이다. 삼성은 갤럭시 S25에 엑시노스를 적용해 시스템 반도체 기술력은 물론, 파운드리 3나노 양산 경쟁력을 대내외에 알리려 했지만 수율 문제가 발목을 잡아 사실상 계획이 틀어졌다.
삼성 내부에서도 파운드리사업부를 미덥지 않게 보는 시선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전자는 2022년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 기반 공정의 초도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공정별 매출을 전혀 발표하지 않는 데다 수율 개선 정도에 대해서도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수율 때문에 엑시노스를 삼성 파운드리가 아닌 TSMC에 맡기더라도 공정 비용 때문에 손익 개선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AP가 초고성능, 초미세 공정 단계로 접어들어 개발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2호 (2024.10.30~2024.1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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