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국제협약은 '논의'의 출발점"

그리니엄 2024. 10. 3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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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한국 정부·산업계에 생각의 전환 주문"

오는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한국 부산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를 위한 마지막 회의(INC-5·이하 5차 회의)가 열립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목표로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국제협약의 최종안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현재 국제사회는 개최국으로서 한국에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습니다.정작 한국에서는 '산업 피해 대 환경 피해'·'재활용 대 감축' 등 플라스틱을 두고 날 선 대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일부 쟁점에 매몰돼 플라스틱으로부터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그리니엄에서는 한국 사회의 이러한 대립 구조를 해소하고, 합리적이며 생산적인 대안을 도출하기 위해 다양한 인터뷰를 기획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각계의 목소리를 듣고, 보다 나은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그리니엄]

 플라스틱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마지막 회의가 다가온 가운데 그리니엄은 지난 14일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 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 그리니엄
"협약의 마지노선은 '생산감축이 포함되느냐'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성패는 무엇이라 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홍 소장은 20년 이상 폐기물 관련 연구 활동을 이어온 전문가입니다. 통칭 '쓰레기 박사'로 불립니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에서 그리니엄과 인터뷰를 나눈 홍 소장은 플라스틱 국제협약문 내 핵심 문구로 '감량'이 포함돼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당장은 목표를 정할 수 없더라도 플라스틱 생산감축과 관련된 문구가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이는 각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제입니다. 유럽연합(EU) 등은 생산감축 목표를 명시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중국·인도·러시아 등 산유국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홍 소장은 생산감축 관련 갈등을 당장 풀기 어려운 이유로 "리스크(위험)의 명확성과 대안의 명확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플라스틱의 유해성에 대한 현재의 연구가 산유국 등 반대 측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이 그 이유로 제시됐습니다. "강제적인 수단으로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게 할 만큼 유해하다고 설득할 근거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 홍 소장의 말입니다.

수은 등 중금속이나 화학물질을 반례로 들었습니다. 반면, 플라스틱에 대해서는 인체 유해성의 기준치가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미세플라스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홍 소장은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측정 방법도 아직 합의가 안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를 파악하는 방법론에 대한 합의도 없는 상황에서 유해성 관련 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안이 확실하지 않은 점도 문제입니다. 홍 소장은 기후위기에 빗대 설명했습니다. 기후위기는 화석연료 설비를 재생에너지 시설로 전환하는 식의 대응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다릅니다. 생분해 플라스틱, 재활용 플라스틱, 재생 플라스틱 등 대체재가 상용화까지는 아직은 한계가 뚜렷하다고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국제협약은 수단이다. 협약 자체에 매몰되면 안 된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에서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홍 소장은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협약은 플라스틱 오염 논의를 위한 출발점이란 설명입니다.

그는 "협약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과제는 사실 협약과 관계없이 원래 해야 할 일들"이라고 말했습니다.

협약과 별개로 한국의 '탈(脫)플라스틱 로드맵' 자체가 의미 있게 진전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홍 소장은 강조했습니다.

로드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2022년 정부는 '전(全)주기 탈플라스틱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대책에는 플라스틱 감축 정책을 규제 중심에서 민간주도로 전환한단 내용이 포함돼 환경단체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홍 소장은 "한국의 로드맵과 국제협약의 흐름이 같은 흐름으로 가는 게 최선"이라며 "조금 괴리가 있더라도 일관된 로드맵을 가져가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했습니다.

단, 그는 한국이 선진국인 만큼 선제적으로 모델을 만들고 끌고 나가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한국의 로드맵은 좀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한국의 자원재활용법은 낡았다"

정부는 플라스틱 순환경제 전환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전환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 이유에 대해 홍 소장은 '자원재활용법'의 접근 방식이 시대 흐름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원재활용법은 폐기물 ①억제 ②분리 ③수거 ④재활용을 관리해 자원의 순환적 이용을 목적으로 합니다.

단, 현재 정책은 일회용품의 사용 억제와 폐기물의 분리·수거·재활용으로 구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홍 소장은 감량과 재활용의 대상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다 보니 정책 역시 이분법적으로 적용되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회용품은 보증금제로 감량하고, 제품·포장재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로 재활용을 활성화하는 식입니다.

이같은 이분법적 접근법이 플라스틱에 대한 감량·재사용·재활용 정책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해요소가 되고 있다고 홍 소장은 말했습니다.
 EU는 일회용품부터 포장재까지 다양한 플라스틱을 모두 '일회용 플라스틱'이란 범주로 묶어 관리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감량과 재활용의 대상이 이분법적으로 구분해 관리한다.
ⓒ 그리니엄
이로 인한 문제점은 크게 2가지입니다.

먼저 일회용컵의 재사용·재활용 정책에 공백이 생깁니다. 다른 하나는 포장재 폐기물에 강력한 규제가 어렵습니다. 현재는 제품과 포장재가 묶여서 EPR 부담금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홍 소장은 이와 대비되는 사례로 2022년 유럽연합(EU)의 '포장·포장재 폐기물 지침 강화 개정안(PPWR)'을 들었습니다. 이 개정안은 일회용품부터 포장재까지 다양한 플라스틱을 '일회용 플라스틱'이란 범주로 정의했단 것이 특징입니다.

그는 EU가 일회용과 포장재에 집중한 덕분에 높은 플라스틱세를 부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EU의 플라스틱세는 1㎏당 0.8유로(약 1200원)에 달합니다.

2024년 한국의 플라스틱 재활용 분담금이 1㎏당 100원~300원대에 불과한 것과 비교됩니다.

이에 대해 홍 소장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을 확실하게 줄여야 한다는 새로운 요구에 대응하기에는 현재 한국의 정책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따라서 "(한국도) '일회용 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통해서 감량·재사용·재활용 정책을 다시 한번 펼쳐놓을 필요가 있다"고 홍 소장은 제언했습니다.
 홍수열 소장은 1차 플라스틱 생산감축에 대해 국내 기업들이 전향적인 생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그리니엄
"기업의 오해... 1차 플라스틱 생산감축은 산업 체질 바꾸자는 것"

한편, 홍 소장은 협약의 주요 의제인 플라스틱 생산감축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를 일축했습니다. 해당 의제는 플라스틱의 절대적 사용량 감축이 아니라 재생원료 사용 확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홍 소장은 국내 기업들이 해당 의제에 전향적인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우선 중국산 저가 플라스틱 제품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필요합니다. 그 일환으로 재생원료 중심의 산업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홍 소장의 주장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협약 같은 규제를 산업 체질 전환을 가속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좋지 않냐"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홍 소장은 국내 기업들이 정부에 더 강한 규제를 요구하는 것이 한국 산업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플라스틱 제품 내 국내 재생원료 의무화를 예시로 들었습니다.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에 국내 원료 사용을 조건으로 달자는 아이디어입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배터리에 북매 재활용 원료 사용을 전제로 해 자국 산업 육성에 나선 것과 유사합니다.

그는 이처럼 한국도 산업 이익과 환경보호를 같이 달성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습니다.

"재활용의 어두운 면도... 논의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홍 소장은 플라스틱 문제에 처음부터 완벽하게 대응하기 어렵단 점을 인정했습니다. 대안으로 꼽히는 재사용·재활용에도 '불편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일례로 플라스틱 재활용 공정에서는 다량의 물이 소비됩니다. 폐플라스틱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된 폐수가 나옵니다.

홍 소장은 "시간이 지나면 이런 불편한 문제들도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문제도 있다는 것을 유념하되, 우선순위를 정해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언입니다.

그는 이같은 논의가 이뤄질 정책 플랫폼이 한국에 부재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정부가 시민 참여 플랫폼을 토론의 장이 아닌 '서명받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홍 소장은 "(우리 모두) 결국 한쪽 면만 볼 수 있다"며 "공론장에서 논의하며 (해답을) 수정하고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후테크 전문매체 그리니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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