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파괴, 누구에게도 없는 권리
[황융하 기자]
영화 <크리에이터>(2023)는 기술과 인간성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서사로, 주인공 조슈아(John David Washington)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대치하는 전쟁에 휘말린 전직 군인이다. 그는 AI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임무를 맡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AI의 실체를 마주하며 혼란스러운 감정의 파도에 휩쓸린다. 임무에 대한 사명감은 여전하지만, 인공지능의 파괴가 곧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또한 점차 깊어진다. 기술적 혁신의 파장을 담아낸 AI의 창조자 '넌(Nun)'과의 대립은 인간성과 기술의 본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 The Creator Poster(2023) |
ⓒ 20th Century Studios |
영화는 비주얼과 음악에서 찬사를 받았고 특히 미래 세계를 묘사하는 압도적인 영상미와 강렬한 음악이 관객을 단숨에 매료시킨다. 세밀하게 설계된 디지털 아바타와 도시 풍경은 미래에 대한 예언처럼 선명하다. 긴장감 넘치는 음악은 순간의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적·청각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서사의 깊이는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크리에이터>가 던지는 철학적 물음들은 매혹적이지만, 감정의 파고와 인물의 내면까지 온전히 닿지는 못한 채 피상적으로 머문다. 결국,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의 무게감이 영상미와 음악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이 영화의 본질은 인간이 창조한 기술이 단순한 도구에서 벗어나 위협으로 다가설 때,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영화는 창조자로서의 인간이 마주하는 위험과 의무를 묵직하게 되묻는다. 결국, 기술의 진보가 가져올 유익함과 동시에 피할 수 없는 부작용, 경계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태도와 책임감에 대한 통감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영화에서 감정적 공감의 부족은 몇몇 주요 장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조슈아가 AI의 실체를 마주하며 갈등하는 장면에서 그의 내면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 관객이 감정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이 장면에서 조슈아는 임무와 윤리적 갈등 사이에서 고뇌하지만, 대사와 연출이 내면의 변화를 깊이 있게 전달하지 못해, 그의 선택에 대한 감정적 몰입이 제한된다.
▲ The Creator 노마드(Nomad): 군사 우주선, 지구 궤도에서 AI의 거점을 정밀 타격한다. |
ⓒ 20th Century Studios |
그러나 이러한 시각적 황홀경 속에서도 감정의 줄기는 미약하다. 예를 들어, 디지털 아바타와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장면들-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고독감이 피어오르는 순간들에서-그 감정은 표면을 스쳐 갈 뿐이다. 관계의 본질을 묻는 장면에서도 캐릭터의 내면은 닿을 듯 멀어져, 관객은 감정의 깊이에 진입하지 못한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낸다"라며, 인간이 창조를 통해 자신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영화 <크리에이터>의 질문, '우리는 창조를 통해 어디로 나아가며,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와 맞닿아 있다. 조슈아의 갈등은 창조가 해방으로 나아갈지, 억압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아렌트의 일갈처럼 창조의 무게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필연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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