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레드라인 수위 고심 "북한군 전선 투입 여부로 결정 못해"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수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 '레드라인'을 놓고 "북한군이 전선에 투입되느냐, 안 되느냐로 정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 내에서 러시아의 핵심 군사기술 지원 여부가 관련 기준점으로 거론된 것보다 모호성을 더 키운 것이다. 전략적 선택의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정부의 고심도 함께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체 전황 살펴야”…러시아의 대북 ‘보상’, 레드라인 기준 역할 희미해졌다
김 장관은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펜타곤(미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후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의 레드라인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북한군이 투입되느냐, 안 되느냐로 결정하는 건 아니다”며 “전체적인 우크라이나 전황의 문제에 더해 국제사회와 연대를 통해 보조를 맞춰 나가는 차원에서 ‘단계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북·러 협력 수준에 따라 방어용 무기지원부터 공격용 무기지원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대응이 가능하다고 공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러·북 군사협력의 진전에 따른 단계별 조치를 적극 취해 나가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때 정부 내에선 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부문 등에 북한이 확보하지 못한 기술을 러시아가 지원하는 상황을 레드라인으로 삼아야 한다는 기조가 힘을 얻은 것으로 보였지만 현 시점에서 다시 경우의 수를 들여다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군의 러시아 전장 투입과 러시아의 대북 보상이 현실로 다가오자 보다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군 안팎에선 나온다.
김 장관이 북한 ICBM 미확보 기술에 대한 러시아 기술 이전을 “특별한 게 아니다”고 평가한 점 역시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김 장관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군사 과학기술로 ICBM, 전술핵, 원자력추진 잠수함, 정찰위성 등 4가지를 꼽고 “ICBM의 경우 재진입 기술은 거의 완성에 가깝다고 본다”며 “(완성은) 시기의 문제로 러시아가 지원을 해준다고 특별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군사 정찰위성도 수차례 발사에 실패했지만 성공 직전까지 와있다고 김 장관은 봤다. “러시아의 대북 군사기술 지원이 과대평가돼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전력을 지원해도 우리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러시아가 ICBM 기술을 지원하는 경우에도 곧바로 살상무기 지원 결정을 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트럼프 당선 대비해 레드라인 수위 조정 가능성도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염두에 두고 레드라인의 수위를 의도적으로 조정하고 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에는 전쟁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입장에선 북·러 밀착에 바이든 행정부와 규탄 목소리를 함께 하면서 압박 수위를 지나치게 높이다가 자칫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실제 김 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 태도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 입장도 달라지는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충분히 우려될 만하다”고 답했다. 이어 “가정을 전제로 해 말하기 제한되지만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혹시 나중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거기에 맞춰서 대응해나가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트럼프 당선 시 준비가 돼있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준비가) 있어야 한다”며 “그걸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모니터링단 파견, 안 하는 게 직무유기”
다만 김 장관은 우크라이나에 정부 모니터링단을 파견하는 방안에 대해선 “당연한 임무”라는 입장이다. 김 장관은 이날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후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모니터링단이나 전황 분석단을 보내지 않는 게 오히려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해당 사안을 놓고 야당 등의 반대 여론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김 장관은 또 “파병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서도 “그외 모니터링단이나 전황분석단 파견 등은 군 또는 정부가 앞으로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어떤 비상 상황에 대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러·우 전쟁이 드론전 등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는 데다 러시아의 무기체계가 북한 무기체계와 연계성이 있기 때문에 분석과 준비가 필수적”이라는 게 김 장관의 생각이다.
워싱턴=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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