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지우기 3년, 손 놓은 정부...큰일이다
[이병헌]
▲ 대통령 축사 도중 항의하다 제지 당하는 졸업생 지난 2월 16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한 졸업생이 윤석열 대통령이 축사를 할 때 R&D 예산과 관련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을 향해 항의를 하던 중 제지를 당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윤 정부 앞에 산업대전환이라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놓여있었다.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하여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주력산업을 대체할 신산업을 발굴 육성해야 했다.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디지털 전환도 중요한 과제였다. 동시에 저금리하에서 버텨온 한계기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했다. 공급망과 교역질서의 재편에 대응하여 원부자재의 안정적 조달과 수출시장 확대방안도 마련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가 어렵게 살려놓은 제2의 벤처 붐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윤 정부의 책무였다.
하지만 윤 정부는 이전 정부 정책 지우기에 몰두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외면했다. 2022년 10월, 추경호 부총리는 뉴욕을 방문하여 글로벌 투자은행의 임원들에게 '재정 건전성과 민간 주도 성장'이 새 정부의 경제운용 방향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입안하는 등 세계 여러 나라가 자국 산업 보호와 육성을 위한 신산업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산업 대전환기를 맞아 주도권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각국 정부가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윤 정부는 철 지난 신자유주의 산업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예산 편성에서 확인된 문제점
▲ 연도별 스마트팩토리 지원 예산과 모태펀드 출자 예산 |
ⓒ 사의재 |
특히 애플, 구글, 엔비디아 등 주요 반도체 수요기업들이 RE100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 없이 화석을 연료로 전력을 공급할 경우, 클러스터의 경쟁력은 없을 것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인공지능, 바이오의료, 2차전지, 첨단소재, 청정에너지 등 여타 신산업에 관해서는 주목할 만한 정책이 없다. 수도권 이외의 지방에 신산업을 육성할 구체적인 계획도 내놓지 않고 있다. 수익성 없는 원자력 발전설비 수출 이외의 이렇다 할 산업정책이 안 보인다.
▲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4일 전남 무안군 전남도청에서 '미래산업과 문화로 힘차게 도약하는 전남'을 주제로 열린 스무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 뒤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2024.3.14 |
ⓒ 연합뉴스 |
위기 대응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경영난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중소기업 중앙회가 조사하는 경기체감지수(SBHI)는 '22년 78.8에서 '23년 76.6으로 낮아졌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75 밑으로 떨어졌다. 중소기업의 대출연체율은 '21년 0.36%에서 '24년 6월 0.58%로 증가하였으며, '23년 파산 및 회생 접수 건수가 각 각 1657건, 1024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였다. 대부분의 통계지표에서 중소기업의 수익성과 자금 사정이 크게 악화되고 있으며, 구조조정이 시급함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울산과 포항 등 동남권과 여수에서 창원에 이르는 서남권에 있는 기계와 석유화학 분야 중소기업에는 탈탄소 에너지 전환이 시급한 과제이다.
중소기업의 사업전환과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예산은 '24년 총 4000억 원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융자방식으로 지원되고 있다. 이러한 지원 방식으로는 기존 사업을 정리하거나 신규사업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많은 투자가 필요한 중소기업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 적어도 1조 원 이상의 중소시업 구조조정 투자기금을 민관 공동으로 조성하여 산업 전환기를 맞은 한계 중소기업의 M&A와 신산업 진출에 필요한 자금을 직접투자 방식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공동화가 진행 중인 지방산업 단지를 첨단 신산업클러스터로 탈바꿈하기 위해, 지역 중소기업과 대학의 첨단기술 R&D 지원과 국내외 첨단기업 유치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고금리가 지속될수록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대한 민간 벤처캐피털의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민간 조사업체 THE VC에 따르면, '23년에 투자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은 95개로 '22년 322개에 비해 70% 가까이 줄어들었다. 또한 그 이전에 투자유치에 성공했던 스타트업 중에서 146개 기업이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하고 폐업했다.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의 자금 사정이 크게 악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청년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다. THE VC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의 신규 고용인력은 '23년 9만 2809명으로 전년 대비 19.4% 감소한 반면 퇴사자 수는 9만 2676명으로 전년 대비 8.4% 증가하였다.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의 자금 사정이 크게 악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청년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다. THE VC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의 신규 고용인력은 '23년 9만2809명으로 전년 대비 19.4% 감소한 반면 퇴사자 수는 9만2676명으로 전년 대비 8.4% 증가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 '창업과 벤처투자는 민간이 알아서 해야 한다'면서 모태펀드 출자예산을 대폭 줄임으로써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로 인해 '21년 17만8603억 원, '22년 17만6603억 원이었던 벤처투자펀드 결성금액은 '23년 12만7627억 원으로 줄었고, 올해 상반기에도 5만1002억 원에 불과하다.
산업정책, 정부 바뀌어도 일관되게 추진해야
장기간의 고위험 투자가 요구되는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 민간 자본에 맡기겠다는 생각은 벤처생태계에서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을 외면하는 것이다. 벤처생태계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민간 자본이 투자를 꺼리는 창업 초기 단계나 첨단기술 분야의 벤처기업에 대해 정부가 조성하는 공공 벤처캐피털이 선도적인 투자를 해야 함을 이스라엘의 요즈마펀드, 독일의 HTGF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태펀드가 그러한 역할을 하는데, 민간의 모험자본 시장이 최고로 발달된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정부가 조성한 공공 투자자금이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투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최근의 고금리 상황과 같이, 민간의 투자가 줄어들수록 정부는 모태펀드에 대한 출자금을 대폭 늘려야 하며, 이를 통해 창업초기 단계나 지방의 스타트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확충해야 한다.
▲ 이병헌 광운대 교수 |
ⓒ 이병헌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김영선 좀 해줘라"...대통령·명태균 통화음성 공개
- '신원식·김용현', 왜 위험한가
- 윤 대통령만 모르는 '100일의 기적'...국제적 망신
- 나토에 탄약관리관 안 보냈다더니... 대통령실 해명 번복
- 체코 당국, 한국 원전계약 일시보류... "경쟁사 이의제기"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명태균 "내가 '사모님' 그래갖고... 김진태 살렸어"
- 온통 하얗게 빛나는 산, 이 바다에 있습니다
- 합참 "북한, 신형 고체추진 ICBM 시험 발사 가능성 있어"
- [오마이포토2024]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다" 윤 대통령 공천개입 정황 녹취 공개
- '규명'보다 '예방' 재차 강조한 한동훈 "특별감찰관 지금 임명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