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오던 날 찾아온 친구, 알고보니 귀인이었다
연재 <베이비부머의 집수리>는 오래된 집을 수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한 기록이다. 노후를 위해 집을 수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여러 생각과 시행착오들이, 베이비부머 등 고령자와 그 가족들에게 공감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 <기자말>
[이혁진 기자]
▲ 새롭게 단장된 화장실, 화장실에는 낙상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바가 설치됐다 |
ⓒ 이혁진 |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전에 친구와 산행을 하면서 내가 집수리를 조만간 할 계획이라는 말을 지나가며 건넸는데, 용하게도 친구가 그걸 기억하고 전화를 한 것이다.
현역서 일하는 친구의 조언
▲ 최종 공사계약을 앞두고 새로 작성한 공사내역서를 친구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친구는 내역을 일일이 살핀 후 현장을 찾아 업자에게도 세밀하게 작업을 지시했다. |
ⓒ 이혁진 |
친구는 "이번에 집을 고칠 때 몇 군데 더 손을 보더라도 제대로 공사를 해야지, 그렇지 않고 넘어가면 나중에 돈은 돈대로 더 들고 후회만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내게 신중한 판단을 요구했다.
그래서 당초 방 2개와 화장실, 건물 외벽 방수공사만 하려던 공사를 애들 방과 주방, 거실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친구는 "무엇보다 이번 리모델링은 노인들의 동선과 안전을 고려하는 것이니, 쾌적한 공간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둬서 나중에 더 이상 대수선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구는 여러 아이디어를 냈다. 예컨대 발에 걸리는 방문턱을 없앤다거나, 냉난방 효율을 높이는 배관 연장을 하자는 등 말이다. 친구 말에 일리가 있었기에, 리모델링을 하기로 한 시공업자도 그 말을 듣고는 오래된 집에 요구되는 기술적인 사항들에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다.
▲ 거실 공사, 신발장 등 수납공간을 확대했다. |
ⓒ 이혁진 |
최종 공사내역도 친구가 일러준 대로 바뀌어 체결됐음은 물론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부탁한 것은 결코 아닌데 친구는 공사에 필요한 모든 걸 세심하게 일러주었다.
친구가 현장을 다녀가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며칠 후 철거가 시작됐는데 친구는 현장에 또 나타났다. 철거하면서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벽과 천정의 도배지를 뜯어내면서 그간 골치를 썩인 누수의 원인과 범위를 확인하고 친구는 습기가 특히 심한 벽쪽에 방수 석고보드를 추가해 줄 것을 업자에게 요청했다.
▲ 습기가 심한 방벽에는 친구 조언대로 결로를 막는 방수석고보드를 추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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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대신 친구가 이런저런 시정을 계속 요구하자, 업자는 점차 짜증과 화가 치솟는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앞으로는 집주인하고만 대화를 하겠습니다."
그 말인즉슨, 전문가인 당신은 더 이상 공사에 참견하지 말라는 것이다. 업자로서는 물정 모르는 숙맥인 나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편할 텐데, 현장을 잘 아는 이가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 주방 철거작업, 거실을 터 주방을 확대하는 공간구성을 했다. |
ⓒ 이혁진 |
사실 현역에서 뛰는 이 친구가 하는 말은 틀린 것이 1도 없었다. 업자는 친구의 설득력 있는 여러 지적에, 어떨 때는 아무말 않고 수긍했지만 어느 날에는 자존심이 상한 듯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돌아보면 정말 귀인을 만났다고 해야 할까. 친구는 막막한 안갯 속에서 햇볕처럼 빛이 나는 존재였다. 업자는 나중엔 노골적으로 친구의 방문을 꺼렸지만, 나는 친구와 업자 중간에서 표정관리하기 바빴다.
친구는 공사책임자와 대화를 하던 중에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사장님, 이 친구가 공사를 전혀 모르는 서생인데요. 그나마 친구인 내가 현장을 좀 알고 있으니, 친구를 대신해서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서생은 나를 말한다. 그러자그 말은 들은 업자는, 진심을 다하려는 친구가 부러운 듯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리모델링 현장에서 집주인이 전문가 못지않게 정통하면, 업자들이 상대를 무시하거나 수리 비용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못한다. 사람들이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리모델링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새 집 고친 것도 좋지만... 둘도 없는 친구를 알게 돼 더욱 기쁘다
친구는 공사현장을 지키는 내가 미덥지 못하고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사실 나로서는 집 수리가 처음이니, 모든 게 어렵고 자신이 없었기도 했다.
어느 날은 비가 종일 억수같이 퍼붓고 있는데 친구가 느닷없이 찾아왔다. 내가 당황스러워 연유를 물으니, 친구는 "이렇게 비가 많이 올 때 누수 문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간 우리 집을 오가면서 공사 현장의 설계도를 직접 그리고 각종 인테리어 배치와 구조, 제원 등을 적확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정성과 치밀함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친구는 내 고교동창이다. 학창 시절엔 농구선수였다. 그랬던 그가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농구를 그만두고 인테리어와 건축업계에 뛰어든 것은 직장생활까지 포함하면 30년이 넘는다. 운동했던 센스에다 남못지 않은 열정은, 70이 다 된 나이에도 현장에서 치열하게 일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더라도 남을 돕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 인생을 살면서 친구를 도운 적이 있긴 했어도 지금 이렇게까지, 내 일처럼 소매를 걷고 도와준 기억은 별로 없었다.
▲ 거실 철거작업, 방문에서 문턱을 없애 낙상사고를 방지하는 조치를 했다. |
ⓒ 이혁진 |
친구는 노인들이 오래 편히 살 집을 매일 고민하는 것 같아 신기해도 했다.
친구는 멀기도 먼 집수리 현장을 7~8번이나 찾아와 주었다. 공사를 마친 지금도, 집에 하자가 없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자주 묻는다. 친구를 도우려면 인정(人情)만으로는 부족하고, 실력도 갖추어야 한다는 옛말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 친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것 같다.
나는 이번 집수리를 하면서 새 집 못지않게 둘도 없는 친구도 새삼 다시 얻은 기분이다. 앞으로 새 단장한 집에 사는 동안 우리집 식구들은 친구의 세심한 배려와 정성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친구야 정말 고마웠다. 집수리가 무사히 끝난 건 반은 네 덕이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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